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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May 21. 2024

기억의 습작 : 전람회, 1994

내 대학시절이 끝나고 있었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국민 첫사랑 수지가 듣던 음악으로 쓰이면서

모두에게 더 널리 알려진 노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던 나는, 동기들보다 한 살 어린 상태였기 때문에

91학번이었지만 92학번에게 선배노릇을 하기가 좀 어려웠다.

게다가 92학번은 왜 그렇게 재수생 삼수생이 많았던지,

오히려 맘 속으로 '후배님, 제가 후배님을 오빠라고 부르게 생겼어요' 말하고 싶었으니까.


깍듯하게 선배 선배 하는 그들과는 친구로 지내는 게 속 편했다.

내가 진짜 후배로 대할 수 있는 무리들이 생긴 건, 93학번부터.

그 애들은 내가 태어나 처음 듣는 호칭, '누나~'로 나를 불러준 최초의 인류였다.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던 호칭, 누나~ 누나~


대학 4년간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말은,

- 우리 애들 봤어? 였다.

'우리 애들'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알아들었는데, 우리 동아리 애들 어딨냐는 질문이었다.

참 끈끈했지. 당연하게 "우리"였고.

깊은 연대감의 경험이었다.


대학 4년 동안, 하나의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남는 건, 동아리에서 보낸 추억과 그 동아리의 사람들뿐이더라.

그 사람들과 밤을 새우고 술잔을 기울이고 이야기하고,

방학마다 며칠씩 함께 묵으며 연습하던 게 일상이었으니...

그 시절엔 가족보다 그 사람들이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그냥 대놓고 친한 사이였다.


대학 4년, 그 안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났는데

93이 주축이 되자 91인 우리는 뒤로 한발 물러났다.

93학번 후배들은 열정도 순수함도 참 남달랐다.

선배가 되어보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2년 후배들을 보는 게 참 좋았다.


1994년. 대학 4학년이 되었다.

그 해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94년의 여름은 너무나 가혹한 폭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앞을 지날 때마다 느껴지던 그 뜨거운 해가 아직도 기억나.

여름 지나 가을이었나.

삼삼오오 모여있는 우리 애들 틈에서 낯선 한 아이가 노랠 불렀다.

- 이젠~ 버틸 수 없다고~~

와. 가창력보소.

- 어머, 쟤 누구야?

- 94학번이잖아요.

이미 모르겠더라. 94학번은 내 인식에 후배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94년이 되자 나는 한발 더 물러나졌는가 보았다.


좋은 방패가 되어주었던 대학생이라는 호칭을 내려놔야 하는 4학년.

사회로 나갈 채비가 안된 혼란스럽던 내가 빠져들었던 노래.

가요계에 또 다른 획을 긋던 전람회의 등장이 있었다.

가요계에도 세대교체가 오는가 싶었던 신선한 듀오의 등장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김동률 목소리는 왜 그렇게 고급진 것 같지?

가요인데 가요 이상의 느낌이 든다.

그 노래와 함께 94년이 지나갔다.




전람회 - 기억의 습작 (youtube.com)


기억의 습작    5:09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봐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마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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