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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Nov 28. 2023

어떤 약속 I

어김없이 봄은 다시 온다

 

 살다 보면 어떤 약속은 서로 주고받지 않았어도 반드시 지켜진다. 그런 약속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제법 묵직한 희망이 되어준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떤 이유 인가로 지쳐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약속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깨지지 않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 믿음이 있기에 희망이 되는 이야기. 누군가에겐 종교가 될 것이고, 낭만적인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보통의 우리가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터널에 반드시 끝이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


 ‘인생곡선’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평평한 평지가 아니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평지가 공존하는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겠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곡선을 알게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나의 인생곡선에 지난해는 유난히 저 밑으로 내려가 점을 찍어야 했던, 끝을 모르는 깜깜한 터널 안에 갇힌 듯한 시간이었다. 살면서 무릎이 꺾이는 일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고, 그보다 깊은 좌절을 만났을 때도 나는 일어섰다고 자부해 왔는데 지난해엔 도통 다시 일어날 의지라는 게 생기지 않았다.

 그때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수없이 생각해 보았다. 이 내리막길에 끝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그 암담한 터널에 반드시 끝이 있다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믿음은 다른 누가 주지 못했다. 나에게 목숨만큼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줄 수는 없는 믿음.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라고 혹시 물어봐 준다면, 끝내 지키려던 자존감이 무너졌고 마음이 무너지자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괴로운 밤들을 버텼다. 잠들지 못하는 밤들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몸과 마음이 괴로웠다. 괴로우니 외로웠다. 누구도 내 맘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


 지난해 겨울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봄은 유난히 더디게 찾아왔다. 심하게 앓고 난 후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고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기에 하루를 버티는 일이 고역이었다. 표정을 감추고 싶었지만 오히려 어떤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일상의 하루를 감사하며 지내는 일은 허공의 새를 쫓는 일처럼 공허했다.

 괜찮다, 괜찮다는 글씨를 빈 공책에 적어 채워보았다.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빽빽이 적은 내 이름 끝에 사랑해 사랑해라고도 써 주었다. 찬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나에게 온기를 주고 싶었다.

 갑갑함을 털어내려 산책을 나갔던 어느 늦은 밤. 아마도 4월이 다가오는 밤이었을 것이다. 터덜터덜 걷는 걸음에 훅 끼치는 꽃내음!! 매화였다. 동네 담장에 매화가 환하게 피어있었다.


 아,,,!! 봄이 왔네. 나 모르는 사이에 봄이 왔네. 내가 외면한 사이에 봄이 왔구나. 매화 앞에서 멈춰 서있던 발걸음이 잊히지 않는다.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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