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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22. 2024

무얼 해도 아깝지 않은 마음, 그리고 사람

여름에도 날 사랑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하루를 보내는 시공간 속에  무수한 온갖 것들의 영향으로 인해 주로 거절과 거부를 일삼거나,  굳이 애써서 하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 늘어만 가는 날들이다. 그야말로 '지랄 맞다'는 표현이 퍽 어울릴 만큼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마음도 같이 펄떡펄떡하다 이내 지쳐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잠잠해지는 기복을 반복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끝까지 들어주는 일조차 노동일뿐. 매 순간 어거지로 견디고 버티는 시간들이다. 마음의 쌀알만큼 남은 여유조차 아주 말끔하게 쓸어버리고 만다.


이야기가 나와 말하지만 나는 정말 날씨 영향을 온몸으로 받는다.


이십 대 후반즈음부터 느낀 거지만 한 해 중 여름만 조용히 넘어가도 나는 그 해를 잘살았노라 자평한다. 예전 어른들이 하는 말.


 "더우면 덥다고 지랄, 비 오면 비 온다고 지랄, 습하면 습하다고 지랄. 그야말로 지랄도 풍년이로세."가 딱이다. 그런 위태롭고 조잡스러운 마음줄을 갖고도 그 해 여름  누군가와 감정선의 충돌, 마찰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면? 응당 그 해 전체를 무난하게 잘 살았다고 보면 된다.


이젠 장마가 아닌 우기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서울땅 한복판에 매일아침 출근길 한 걸음씩 뗄 때마다 온몸에서 수증기와 물을 배출한다. 굵은 땀이 뚝뚝 떨어진다. 땀구멍을 거의 열어놓고 사는 기분이다. 그냥 서있거나 천천히 걷기만 해도 등골에 굵은 땀이 흘러내려가는 속도감마저 느껴진다. 결혼할 때 선물 받은 남편의 투박한 남성용 닥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40분 거리의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손수건은 축축하다. 땀냄새는 손수건 면조직에 얼얼이 엉켜있어 주변에 피해될까 싶어 펼쳐놓지도 못한다.


아침부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쾌적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 된다. 자리에서 옴짝달싹 하고 싶지 않다. 불쾌감과 찝찝함을 온몸으로 품고 있는 상태다. 내겐 여름이 그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  그런 내게 기후문제로 인해 점차 여름은 길어지고 봄, 가을의 경계는 점점 짧아진다는 예보는 마치 점쟁이가 내 어두운 미래를 점치는 일만큼이나 불안과 짜증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런 날엔, 아니 이런 삶은 누군가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부딪히고 싶지 않다. 그냥 오롯이 나 혼자 있고 싶다. 혼자여야만 한다. 혼자에 대한 철학이 있기에 갈망해서보다는 단지 그게 가장 편해서다. 가능한 감정 노동과 소모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매일의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나를 지킬 수 있는 내가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렇게 한해 한해 나이 들어가는 건가 싶다. 내 마음에의 불쾌감 조차 순순히 받아들일 여력도 없을 뿐더러 그냥 나하나 건사해서 버티고 살 수 있으면 개인주의일 망정 이기적이란 소린 안들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사회로부터 튀지 않고, 나 스스로 죄책감은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느다란 삶.  아, 그래도 곱게, 지적으로 완숙미를 더해 나이를 더해가는 분들까지 싸잡아 낮춰보는 것 같아 그저 나 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거라고 말해본다.


살면서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은 잠시 기분은 좋겠지만 그저 감사할 뿐 누군가와 원활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먼저 다가가 엮이고 싶지는 않은 것. 시간을 내어 만나고 교감하고 정을 트는 일들이 너무도 고되다. 이렇게 된 이유도 개선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도 온갖 매체를 통해 들어 알고 있다. 지금보다 젊었던 날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노력의 가중될 것을 알기에 애초에 그 싹마저 자르고 만다.


그렇게 사회에서의 나는 번거롭지 않은 혼자를 택했다. 이조차 쉽지 않은 삶이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런 내 인생에도 여건에 상관없이, 상황에 관계없이 온몸으로 정성과 사랑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 십여년이 다되는 시간동안 변함없이. 그런 이를 젊은 시절 알아본 나는 그와 결혼한 것이 세 손가락에 꼽는 인생에서 잘한 일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 보는 눈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남편을 만나 결혼하던 시기에는 내게도 하늘이 혜안을 선물해 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굳이 자신의 노력을 티내고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다. 굳이 자신의 수고로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지에 대해 애써 말하지 않는다.
많이 웃지 않지만 결코 찡그리거나 화내는 일이 거의 없다. 무던하다.

 내 마음줄이 피아노 건반 위 1옥타브에서 3옥타브까지  널뛰는 동안
그는 1옥타브 내에서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린다.
 내가 들쭉날쭉하는 하다 이내 안정을 찾을 때면 그와 주파수를 맞춘다.
 내가 안정을 찾으면 그때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삶이다.

남편은 늘 건반 위 1옥타브 내의 안정권에 쉬게 하려 애를 쓴다.
그러다 본인이 지칠 것 같으면 잠시 검은건반 위에 올라가 흰건반을
관망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조절한다.



그래서 고맙고 애틋하다. 그런 그로 인해 결단코 온전히 깨닫지 못해 접어두었던 마음 쓰는 법에 대한 나의 노력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여전히 내 노력은 진행 중이다. 더워도 추워도 힘들어도 그 어떤 시공간에서의 어려움이 그를 덮쳐도 그런 상황과 자신이 하고 싶은, 해야 하고 지켜야 하는 존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삶의 모습으로 증명해 낸다. 그 과정엔 어떤 말도 필요 없다. 그에 행동과 마음에서 나의 마음으로 곧바로 느낄 수 있다.  나는 늘 그처럼 살고 싶었다. 그의 사고방식, 마음씀씀이, 말씨 모든 것들을 동경하고 존경한다.


그를 알게 된 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아마 앞으로도 내게 있어 그는 무얼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될 것 같다. 나에게만큼은 통째로 사라져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을 지독한 여름에의 한가운데서 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가 내게 주는 힘은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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