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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21. 2024

마음 다해 한 끼 식사를 차려내는 일

간소화하고 낭비하지 않고 먹을 만큼만 적당히 차려내는 일. 요즈음의 식사 트렌드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야만 대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 모자란 것보다는 차라리 남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문화를 아직은 버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식사 트렌드는 적당히, 조금 부족한 듯싶게 바뀌어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꼭 회사일을 대하듯 나에게 있어 요리는 생각한 대로의 정확한 맛을 구현해 내야 하며, 레시피대로 조리했다면 응당 그 맛을 낼 수 있어야 하는 절댓값 같은 기준이 있다.


"하란대로 했는데 왜 맛이 이런 거야.?"라는 투정을 들을 때면 남편은 이야기한다.

"아닐 거야. 중간에 뭔가를 바꾸었을 거야. 미원이 없으니 소주 붓고, 설탕이 부족해 덜 넣는다거나.. 크큭.."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 내게는 암만 노력해도 늘지 않는, 어쩌면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운전이요 하나는 요리다.

운전은 내가 극도로 겁이 많아 면허가 있음에도 운전대를 내려놓고 포기하다시피 한 것이다.

하지만 요리는 나름대로 주부로써 산 인생이 만 9년이지만 여전히 10가지 이내의 요리로 돌려 막기하고 있는 처지다. 아이들과 함께 살 때는 괜찮은데 (남편아, 아이들아 미안해!)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며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반찬 하나를 만들더라도 손맛이 들어가야 할 것. 조미료의 도움을 받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을 것.

애초에 나는 시어머님의 요리실력을 이기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입맛 까다로운 아버님이 내 성의를 봐서라도 '척'이나마 드실 수 있는 반찬을 만들고 싶었다.


나름 어릴 때의 되살리기도 했고, 내 입맛에 이만하면 괜찮다고 느끼는 요리를 하면 아버님은 주로 숟가락도 대지 않으신다거나 옆으로 치워버리는 일의 연속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가부장적이고 경우 없는 어른은 아니시지만 비위가 약하신 건지 어머님이 해주신 자연식에 익숙하셔서 인지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정확하신 분이시다.

나조차도 억지로 드시라고 할 수는 없고 하루에 두세 끼 정도 먹는 식사마저 억지로 먹으면 무엇하랴 싶어 아버님을 이해하려다가도 그렇게 만든 반찬 결국 내가 다 먹어치우는 하마가 된 것 같아 여전히 나는 속상하다.


무튼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니까.

일단 나의 딜레마 첫째는 냉장고에 무언가 꽉 들여 차 있는 것을 싫어한다. 한창 입덧하던 시절에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냉장고에서 나는 묵은 냄새를 싫어한다. 가끔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둘째는 모자란 한두 가지의 맛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 첨가는 소금 아니면 간장일터인데 그것으로도 안 채워지는 것이 있다. 이왕 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싶지만 자연주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다시다, 최소한의 치킨스톡, 최소한의 연두를  사용하려 하니 부족한 맛을 잡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게 핵가족으로 살 때는 아무 고민이 되지 않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반찬 가짓수도 고민, 재료도 고민, 맛도 고민이다.


요리에 썩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매 끼니 (정정: 주말끼니) 반찬을 차릴 때마다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어머님아버님이 여러 번 젓가락질을 하시는 반찬은 식탁에 올리는 횟수를 늘이고 그렇지 않은 반찬은 고민을 시작한다.


두 분도 안 드시는데 아이들까지 편식하느라 안 먹는 반찬이 많은 날이면 나는 거의 울상이 된다. 일희일비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꼭 회사업무를 망친 것처럼, 공들인 일을 엎은 것처럼 속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다 화도 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에휴 그깟 요리가 뭐라고..'


사실 그깟 요리이겠는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 요리고, 손맛을 앞세우는 옛 엄마들의 장인정신(?)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데 말이다. 엄청난 부지런함과 연습과 끈기가 필요로 하는 일일테다.


두 분의 생신이 되어 큰맘 먹고 차근차근 요리를 해낸 뒤에는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이 밀려온다. 그 기분하나로 며칠을 이어가기도 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즐기지 않지만, 더더욱 소질도 없지만, 그럼에도 정성 들인 밥상에 대한 성과보상(?)을 받으면 기뻐하는 날 보면 요리로써, 음식으로써 누군가를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여전히 10개 내외의 익숙한 반찬, 찌개로 돌려 막기하고 있지만 이제는 한걸음 더 용기내고자 한다.


한 끼 식사 정성 들여 차려내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인간이 누리는 것 중 그나마 아무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먹는 일인데 그 먹는 일에 관여해 잠시나마 웃음 줄 수 있는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노력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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