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물안궁의 삶 Sep 08. 2024

온전히 나를 고민하는 것은 꽤 행복한 일

어떤 것에 대해 끝까지 파헤치고 궁금해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정답을 내리는 걸 좋아한다. 사실은 대부분의 것에서 그런 것들과 반대로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나에 대한 관심, 나에 대한 고민, 나에 대한 생각은 끼니를 잊어가면서도 할 수 있다. 그런 행위가 좋다. 단순한 단답형 문제가 아니라서 더 좋다. 여러 생각에의  치열함 끝에 최종목적지에 다다르진 못했어도 치이고 지치고 쓰러지면서도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일이 매일 있어서 좋고, 앞으로도 할 예정이라니 더없이 좋다.


보통 사람은 남의 인생의 호기심을 끌만한 이슈를 궁금해할 뿐  인생 전반에의 진심 어린 관심은 잘 없다.  사실 가족이어도 그러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를 매우 엄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 관심이 나에게만 향해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과정이 아주 허술해서 문제지만.  지킬 땐 엄청난 엄호를 하다 한눈파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걸 다 놓쳐서 문제지만 그럼에도  놓치면 다시 또 찾아오는 과정을 하루에도 수백 번쯤 한다. 놓치는 그 찰나 때문에 남들보다 공력도 많이 들고 기력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같이 온몸의 기가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 드는 거구나. 그러니까 나는 나를 매우 엄호하며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인게 맞다.




시선과 마음과 생각의 모든 것을 열어두고 스스로를 관조하는 사람인지, 어떠한 유형의 사람이구나 라는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나의 생각과 언행일치에의 여부를 따져가며 스스로 느끼는 나의 모습을 공고히 해가는지를 봤을 때는 나는 후자 쪽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아~ 이게 아니야!'라고 소리치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며 원고종이를 구겨 던지는  90년대 자주 나오던 그 장면을 나는 실상에서 여러 번 연출한다. 특히나 거의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나의 모습의 정반대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면 굉장히 허무해지고 짜증이 나면서 화도 난다. 왜냐하면 나에의 연구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이전까지 나라고 느꼈던 객관화된 나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이자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상실감과 흔들림을 동반한다.


이 상실과 흔들림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평생을 두고도 온전한 정답을 내리기 힘든 명제를 마치 기한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 더 치명적이다.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그럴 일이 없도록 처음부터 나의 모든 것을 열어두고 관조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안정지향적이다. 모험적인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를 대변하는 것들의 몇 가지 분류틀에 나를 맞춰 넣으며 최대한 성실하게 높은 확률로 목적을 향해 이행해 가 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잘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옆에서 아무리 '방하착 하라. 괜찮다 괜찮다 여기며 조금은 편히 살아'라고 말해준다 한들 내가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가끔은 소심과 조심성의 경계에서, 신중함과 겁보의 사이에서, 과민함과 정신력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간의 나는 스스로를 긍정적인 눈으로 따스하게 바라보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두 가지 대결에서 어떤 것이 선택되더라도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주로 소심하고 과민하고 겁보라는 타이틀만을 내게 허락할 뿐이다.어느 순간 나 스스로조차 그런 사람으로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과학적으로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채 나의 삶, 생활, 순간순간에의 면모를 자성할 때의 기준이 된다.본심에서 우러나온 화를 내도 무방한 상황임에도 나는 주로 계속해서 고민한다.


내가 아는 나는 겁도 많고 소심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화를 낼 수 없는 사람이야. 오히려  안 내던 사람이 내면 그 모습이 더 우스 워 보일 거야..라는 식으로 증명받지 못한 사실에 대해 껍데기일 뿐인 가설이 마치 사실인 듯 나 스스로 공증을 자처한다.



가끔 그런 이유로 인사이드아웃 2에 나오는 소심이와 불안이와 당황이가 함께 몰려 무언가를 궁리 하고 있는 상황일 때 답답함과 두려움을 동반해 사주를 보기도 한다. 명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통일성, 과학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는 데에  좀 도움이 될까 해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런 언행을 했는지에 대해서 '조상 때문, 혼령 때문'이라는 답변을 주로 내놓는 일부 엉터리 무당들에 비하면 상당히 논리적이다.


그 시점에의 개인적 이슈에 대한 궁금함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나는 최근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제 나의 향후 먹거리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진로와 같은 고민을 끝맺을 수 있었다.  진로에 대해서는. 숱한 고민 끝에 작년에 스스로 이미 최종 결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당장의 돈이 필요했기에 다시 재취업을 했지만 이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차례 다소(?) 과학적으로 보이는 사주풀이 및 그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몇 번의 신점 점사를 통해 그 목표를 공고히 했다.


 가령 그들이 '이거 하면 당신 죽어요!'라는 말만 안 한다면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작년부터 본격적 준비를 시작해 현재에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이게 곧 내 평생 먹거리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 악물고 노력했을 나였다.


 아, 지금 문득 깨달은 건데, 그들이 '이거 하면 당신 죽어요!'라고 해도 그 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간절히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임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나를 연구하고 나를 생각하고 나를 고민하는 일이 참 좋다. 멋드러진 인간으로 살자는 대단한 꿈은 아니지만 나하나 컨트롤 할 수 있는 인생을 산다면 인간으로서 태어난 도리는 하고 살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팔자 좋은 사람이구나 덜 바쁘구나 덜 힘들구나 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나를 인정해 주고 지켜주고 지지해 주며 끝끝내 단순한 한 문장의 결론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간결한 삶일지라도 치열한 고민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힘이며 이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