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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Sep 13. 2024

수면마취를 깨면 늘 울고 있었다

"선생님, 원래 마취에서 깨어나면 눈물이 흐르거나 많이 슬퍼지나요?"

"네? 아, 아니요.. 마음에 뭔가 응어리진 게 많으신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수면마취가 아니라 무슨 최면 같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2018년 그 해는 고민이 참 많은 시기였다. 고해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고민 없이 행복하기만 한날이 몇 날이나 되겠냐만은 그 정도가 깊고 짙을 때가 있다. '왜 이리 일이 안 풀리지?'정도로 혼자 읊조리며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간절함이 더해져 '제발 한 번만 ㅇㅇㅇ된다면 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어...'라는 말들이 나올 만큼 심각해지는 때도 있다.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시점이 그랬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돌보고 평범하게 엄마로서의 역할만 다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위기의 순간이었다.


여러 날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증세 때문에 고생하던 시기였다.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닐지 무슨 병이 있는 건 아닐지 그마저도 임산부여서 온전히 검사를 다 받기도 애매한 상황들이었다. 늘 실제상황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생각하는 나는 곧 내가 일찍 죽게 된다면? 내가 남편과 아이들만 세상에 남겨둔 채 가게 된다면?이라는 고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유 없이 기절하고 검진을 해도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는, 그러나 분명히 단 얼마의 시간일지라도 온전히 기억이 없는 상태를 여러차례 경험하고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을 살면서 십 수 번은 더 겪었기 때문에 결코 그런 고민들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둘째 아이 출산일이 다가왔고, 첫째 아이를 낳으며 겪어본 과정이었기에 최대한 차분하게 임하려 했다. 하지만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면마취를 위해 두꺼운 링거바늘을 꽂는 것조차 공포로 다가왔다. 되돌아보면 매 순간 겁도 많고 자극에도 예민한 내게 유일하게 대담해지고 차분 해질 수 있는 순간은 아이를 낳는 순간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을 모성애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내게 설명될 수 없는 감정컨트롤이었다.






연말을 5일앞둔 날 나는 둘째아이를 출산했다. 첫째 아이 때보다 유독 마취에서 깨어나 일반병실로 옮겨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이는 11시 47분에 태어났는데 내가 일반병실로 옮겨진건 오후4시가 넘어서 였다. 밖에서 대기하던 남편도 집에서 기다리던 양가 어른들도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내가 일반병실로 가기 전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땐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울면서도 나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 시점에서야 내가 마취에서 깨어났고 기력이 빠질 정도록 울고 있음을 자각했다. 여전히 나는 내가 그때 왜 울었는지 모른다. 겁에 질려있다가 모든 게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인지, 무의식 중에 마음속 깊은 두려움과 고민들이 건드려진 것인지 모른다.


회복실에 있던 간호사 분들도, 옆에 있던 남편도 나를 말리거나 다독여줄 틈도 없이 나는 꺼이꺼이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한 30분 넘게 울었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옆에 계신분들에게 피해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할만큼 이성적이지 못한상태였을 것이다. 그것은 제왕절개의 통증도 아니었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다만 긴 시간의 울음이 잦아들 때쯤 알 수 없는 미묘한 후련함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까지 울 수가 있나 싶을 만큼 더 울 수 있는 눈물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다 쏟아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총  4번의 수면마취를 했다. 출산으로 두 번, 수술로  두 번.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눈물을 흘렸다. 현실을 자각하고 운 것이 아니라 정신이 온전히 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늘 울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주 또 한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회복 중에 있다. 최근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즈음 문득 생각했다.


'나 또 울고 있네... 마취가 풀리면 눈물이 나거나 감정이 더 기복이 생기는 성분이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선 나를 담당해 주셨던 간호사님께 물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은 질문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셨다.


마취가 깨면 눈이 부어있는 것은 부작용이 아니라 하도 울어서 나온 눈물이었던 것도 어떤 마음으로 수술, 마취에 임하든 깨어나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는 내 마음도 그럼에도 무사히 깨어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들인 건지.. 평소엔 꿋꿋하게 살아가야 하기에 결코 쉽게 꺼낼 수 없던 눈물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저절로 발현된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는 나를 스스로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정말 서럽게 우는구나.. 이제는 괜찮다.. 그래도 울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이 되는구나. 어쩐지 눈물이 멈춰지지 않는구나. 어쩌면 지금이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이겠구나.'


나는 수술 후라는 이유로, 그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터져버린 눈물을 굳이 멈추지 않고 나오는 눈물을 굳이 닦아내지 않고 흘려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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