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마음이 가야 할 곳도 내 몸이 가야 할 곳도 스스로 정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무너진채로무작정 버스를 탔다. 달리는 버스에서 고개를 들어 행선표를 보니 오류동행이라 적혀있다. 이버스는 돈암역, 동대문, 여의도를 거쳐 가는 오류동으로 가는 행선지다. 내키는 대로 무작정 가더라도 생판 모르는 곳으로 가기엔 지금의 두려움이 몇 곱절 더 커질 것 같았다.그렇게 나는 160번 버스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돈암역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왔던 길로 방향을 틀어 길음역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조금 더 걷다보니 미아리 고개가 나온다. 엄마아빠가 젊은시절 궁합을 보기 위해 들렀다던 백일홍 철학관도 보인다. 말로만 들었는데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기전 그 철학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빠를 보며 점술가는 바로 말을 뱉었다고 했다.
"경상북도 ㅇㅇㅇ"
아빠는 경상북도 출신이었다. 아빠의 이름을 말한 적도 없으나 정말로 아빠의 이름을 바로 뱉었다고 했다. 엄마는 여전히 그렇게 기억한다.
이어 엄마에게 그리 말했단다.
"우리 보살님은 이 양반과 결혼하면 불행해지고 손해 봅니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어요."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말을 곱씹었다.
미아리 역학촌, 집성촌이라 적힌 팻말을 슬며시 본다. 무엇을 하는 곳이든지 간에 한 곳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유서 깊어 보이기까지 한다.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시에 나는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인생은 정말 나 혼자라고. 뼛속깊이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내 서늘함이 느껴지고 두려움과 공포가 확 밀려온다. 그 냉기에 가까운 공포를 단칼에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뭐라도 나는 해야 했다. 극심한 불안으로 인해 서있기도 힘든 상황에 당장 든 생각은 어딘가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백일홍 철학관 그리고 그 근처를 뒤돌아 본다. 길음역과 돈암역을 사이에 둔 미아리 고개 옆 사주, 철학관 집성촌. 이곳 주변은 유독 개미 한 마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가 위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차들이 쌩쌩 달렸지만 바로아래 점집 집성촌은 스산하기까지 했다. 하얀 깃발과 빨간 깃발이 위아래로 달린채 꽂혀있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갔었다고 한 그 철학관은 어쩐지 소름 끼치게 무서워 그 집만은 피해서 다른 곳으로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오게 되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하얀 털조끼를 입은 여성분이 방 안으로 들어오라며 안내했다. 앞이보이지 않는 맹인인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목소리는 아주 가늘고 차분했다. 이곳에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오늘 내가 첫 손님일지도 모른다.2013년도의 집의 형태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부 모습을 했다. 어린 시절 영등포 외할머니 댁의 마당과 가마솥에 장작을 떼던 부엌이 연상되는 옛 한옥집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안내받은방으로 들어가 자리에앉기도 전에 나는 말했다.
지금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라고 , 며칠에 한 번은 죽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죽고 싶은데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면 한 번에 죽지 않을까 봐 그게 무섭다고 말했다. 바로 숨이 끊어지면 좋겠는데 억지로 살아남을까 걱정이라 했다. 아니, 고통만 연장된 채로 죽지도 않고 불구가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나는 어떤 남자에게 아주 큰 배신을 당했고 마음도 몸도 더럽혀진 것 같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돈조차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삶을 끊고 싶지만 내가 세상을 떠나면 혼자남을 엄마가 마음에 걸려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점에 딸까지 잃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아빠가 돌아가신 후 몇 달 동안 짐승이 우는 소리만치 목놓아 우는 통곡소리를 들은 사람은 결코 그사람이 또다시 같은 슬픔을 겪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성 점술가는 립스틱사이즈의 작은 스테인리스 통을 위아래로 흔든다. 그리고는 그 통에서 바늘처럼 얇은 이쑤시개를 닮은 것들을 두어 개 빼보더니 말한다.
"숨어사세요. 안 그러면 패가망신할 거예요 당신. 조용히 하고 어디로 도망가 숨어사세요"
덜컥 겁이 났다. 이내 나는 목놓아 울었다. 목젖이 보이도록 울며 그 점술가에게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왜 저보고 숨어 살라고 하는 거예요? 네?"
허나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리고 그 여성 점술가는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는데 다른 점집에 또 가지 마세요. 여기저기 다니지 마세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패가망신할 거니 조용히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 살라는 말을 할 때엔 유독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내 얼굴을 향해 쳐다보지 않았다. 비록 보이지 않는 분이시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점집엔 가지 말라고 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이든 다할 테니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을 테고 그렇게 되면 부적이든 굿이든 하라고 할 참이라는 것을. 남의 운명을 점치며 살고 있는 자의 일말의 양심조차 남아있지 않는 자라는 것도.
맑은 신명을 갖게 되면 우리 아빠의 모습만 보고도 이름을 맞출 만큼 엄청난 용함을 보이는 점술가, 무당도 있지만 사람의 외롭고 불안하고 힘든 마음을 미끼로 자신의 안위와 재물에 눈이 먼 자도 있다. 늘 그렇듯 몇몇이 그 무리를, 전체를 욕 먹인다. 오히려 그런 억측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나 살아야겠구나. 살아야 하겠구나. 그러려면 용기를 내야 하고 나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져야겠구나."
숨어살라며 패가망신을 들먹이는 그 여성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결코 숨어살정도로 잘못하지않았고 패가망신할만큼 죄짓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죽어도 못할것 같은 힘내서 사는일이 차라리 그보다 쉬울 것 같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나의 과오를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고 밑바닥부터 새로이 시작하는게 좋을것 같았다.
그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해선 안될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 먼저 인정해야 했다. 2013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