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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Oct 18. 2024

타인에게 조종당하며 사는 삶

인생에 함께였으면 했지만 그 사람은 내 인생을 망쳤다

언제부터 나를 잃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똑똑해 보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사람에 대한 호감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쉽사리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 종교에 심취해 있는 모습들과 하나쯤 갖고 있는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어쩐지 더욱 단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때의 내 인생 가치관은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단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대나무처럼 쭉뻗은 심지를 가진 것인지 호랑이의 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지내는 것이 단단한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지금이나 십여 년 전이나 여물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무릇 아홉 살이나 인생을 더  자라면 무엇 하나라도 어린 사람과는 달라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땐 몰랐다. 대단한 경지에 있는 치열한 인생의 결과물이 그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모든 고난과 고통에 대해 막힘없이 답변을 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늘 대가가 있었다.


술이 필요했고 잠자리가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한때 경허선사가 수덕사에 기거하며 막행막식을 했던 설화의 일부만 차용한 사이비 같았다. 참선곡을 줄줄 외웠고 몇 살이냐 물으면 팔만사천살이라고 대답하는 괴짜 같은 사람이었지만 경허선사가 왜 막행막식을 했는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뼛속부터 비교조차 안 되는 중생 중의 중생으로 신구의 삼업을 매일같이 지으며 축적하고 있는 예비 아귀지옥행 대기자쯤 되었을 것이다.


"미주는 이제 나랑 도반이 되었지. 나랑 살겠다고 짐을 싸서 나왔었어.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고..."


늘 레퍼토리가 같았다. 도반이라는 수승한 단어를 어디에 가져다 쓰는지 싶었다. 그와 나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주지 시키며 개선이 필요하며 두렵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늘 대화에서는 미주 씨가 등장했다. 주로 그 시점에 그가 꺼내는 말은 늘 미주 씨 일화였다. 그로부터 십여 년 전 그 둘은 운명처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그렇게  그 남자는 편지한통을 부모님과 미주씨에게 남긴채 진짜 자신을 찾기위해 도망쳤다고. 미주씨는 전국을 수소문해 그를 찾아냈고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서로 결혼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고 그럼에도 서로 만날 때마다 술에 절어 육체적 관계를 나눴다는 이야기. 그러다 인도의 명상센터로 떠난 미주 씨가 없는 시간 동안 그 남자는 백화점 내 문화센터의 요가 수강생으로 들어온 돈 많은 연상의 여성을 만나 순식간에 결혼에 성공했고 그렇게 미주 씨는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는 이야기. 미주 씨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그리워하며 결혼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이와 사랑하는 일도 힘들어졌다는 이야기. 그때도 그 이후에도 미주 씨는 지옥밭에서 사는데 본인에겐 영웅담이 돼버리는. 그리고 마치 미주 씨를 본받아 너도 그렇게 되라는 세뇌인 것 같았다.


사람을 서서히 말라죽이고 있었지만 너와 나는 도반이 될 것이며 그러니 나중에도 웃으며 과거를 잊고 볼 수 있을 거라는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무마하기 위한 대비책쯤에 불과했다. 하지만 젊은 날의 나는 알턱이 없었다. 인재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과의 재앙. 나를 잃고 서서히 말라죽어가는데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황과 내가 되어버리는 날들.


나는 어느순간 깊은 수렁에 빠져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역한 기름냄새가 진동하며 기름때가 내 몸 곳곳에 묻어 숨구멍조차 막아버리고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로 인해 메신저 프로필조차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고 함께 근무를 하면서도 정신병 환자차럼 살아야 했다.  몸을 탐했으면서도 후유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회사에서는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는 눈빛. 그것은 공과사가 아니라 범죄를 덮으려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나의 매일은 그가 괘씸했고 견딜 수 없었고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나를 사무국 내 총장이 문제 삼자 그는 실장자격으로 중재에 나섰다. 그게 선택한 것은 나의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격려와 응원과 배려로 점철된 양면형 인간이었다. 그 사건에 자신은 없었다. 오로지 중재자일뿐.


그는 상근식구들 앞에서 "나는 많이 아픕니다."라는 말을 하라고 강제로  하게끔 하는 인격적 살인행위를 내게 저질렀다.  나는 그 말을 하며 울다 이내 실신에 이르렀다.

인생의 수치스러운 순간이 있다면 누군가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따귀를 맞은 날이아닌 바로 그날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이기를 포기한 날이었다. 지울 수 없는 수치와 눈물의 날로 남아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때의 나를 상처가 아물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물파스를 바르고 얇은 딱지가 생기면 다시 억지로 뜯어서 또 물파스를 바르고 누군가 문제 삼으면 연고를 발라주다가 이제 화학약품을 부어 상처를 더 크게 만드는 짓이었다. 그런 짓을 3년 정도 겪어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갑작스레 생긴 나의 남자친구를 SNS를 통해 뒷조사하는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과 한 직장에 근무하는 것은 재앙에 가까웠다. 차라리 그렇게 세상의 종말이 왔으면 했다.

삼재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독하다 싶을만큼 악삼재를 나고있었다.


당해야 끝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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