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쌤 Apr 16. 2024

내 나이 만으로도 17세가 된다면 공부를 할까?

토요일 아침, 몸이 무겁다.

눈을 떠 보니, 옆에 아내가 누워 있다.

지금 몇 시?

대답이 없다. (아마도, 피곤하니 좀 더 누워 있으라고 무응답인 듯하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어제 큰아들이 오늘 학교에 8시 30분까지 가야 한다고 하였다.

무거운 몸이지만,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어간다.

마음이 분주해진다.

얼른 씻고, 운전기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학교에 내리고,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왔다 갔다 귀찮다는 생각에

책장에서 무심코, 전에 영화로 봤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얼른 챙겼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이 짠하다.

매일 12시 넘게 하교하고, 토요일 오전에 또 학교로 등교하는 아들의 모습이

짠하다.

이 시대의 아들과 딸들의 모습이 아닐까?     


공부?

왜 할까?     


요즘 공부와

50대가 살았던 학창시절의 공부는 달랐을까?  

   

우리 때는 그래도 확연히? 구분된 듯하다.

공부하는 아이와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아이

대학을 가는 아이와 대학을 가지 않는 아이

극히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그 시절에는 가정의 경제적인 이유가 기준이 된 부분?도 있었다.

난, 공부를 안해도, 대학을 가지 않는 아이에 속했다.

    

현재의 사교육의 열풍이 과하다고 하였지만,

나의 학창시절에도 학원이나 과외를 받은 친구들이 있었다.

조건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하지만, 지금은 가정에 경제적 여유가 있든 없든 모든 아이가 사교육이 일상이 된 듯하다.     

나의 청소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학원이 어찌 생긴 지도 모른다.

물론 과외라는 것은 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문제집도 누나에게 물려받아서, 지우개로 지워서 거의 풀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나에게,

대학 캠퍼스를 누린다?

대학에서 학문의 깊이를 느낀다?

MT, 미팅, CC 등은 나와는 맞지 않은 옷이었다.


현재의 큰아들과 그 당시의 나를 비교해 보면,

큰아들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약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난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다니며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기능을 익히고 있다.    

 

현재 초등교사가 된 만으로 50이 된 나의 진학 사연은 차후로 넘긴다.     


큰아들을 등교시키고

근처에 도서관에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뒤척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자사고 학생과 북한 수학 천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답을 맞히는 그것보다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수학은 아름답다.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화를 내기보다는 ‘아, 어렵구나.’ ‘내일 한 번 더 풀어보자.’     


내 나이 만으로도 50이 된 지금

다시 공부해야 되는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면,

열심히 공부할까?

대답은 NO.

왜? 공부에 대한 갈증 혹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2024316     

이전 17화 살아 있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