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외래 진료 날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소변 검사에서 단백뇨가 나와서 입원해서 신장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해야만 했다. 너무나 덤덤하게 조직검사받는 방법을 설명하시는 교수님의 말씀도,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당장 직장에 입원 사실을 알려야 했기에 입원 기간을 문의드렸더니, 여유 있게 일주일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나 심하길래 일주일씩이나 입원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나는 부리나케 류마티스 내과를 빠져나왔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나 입원해서 치료해야 한대. 일주일이나 입원해야 한대.'
얼마나 상태가 나빠졌길래 나는 또 입원을 해야만 하는 걸까.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직장에는 또 어떻게 이 내용을 전달드려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그런데 현실을 알리는 동생의 차분하고 침착한 한마디가 내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었다.
'입원해서 치료받으면 되지. 뭘 큰 수술받아야 할 사람처럼 심각하게 울고 그래.'
그래. 입원이 뭐 별 건가? 병원에 입원 처음 해보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입원해서 조직검사받으면 되겠지. 그렇게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잠도 줄여가면서 일을 무리했던 탓인 것 같다.
나의 오만은 3년 전 했던 결심을 벌써 까먹어버린 것. 서울에서 일을 그만두고 내려오면서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고. 입원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3년 전 퇴원을 앞두고 입원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주사가 너무 맞기 싫어서 다시는 입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나는 그 다짐을 잊어버리고 불과 3년 만에 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고, 너무 내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일을 하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또 욕심을 부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은 이렇게나 망각의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