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30여 년이 넘게 근무하며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를 잘 양육해서 사회의 한 사람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 자녀를 독립‘ 시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도 교육열이 대단하셨고 관심이 많으셨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제일 잘하는 아이여야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칭찬보다는 잘 못한 일에 대한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제일 기억나는 말은 “○○는 잘하는 데 너는 왜 그것도 못해?”라는 꾸지람과 “우리 ○○는 착해요.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예요.”라는 말처럼 점점 엄마 말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의 취향대로 나와 동생에게 맞춤옷을 입히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 빨간색 리본으로 묶어주셨다. 엄마의 취향이 내 취향이 되었다.
엄마가 “우리 집은 교육자 집안이야.”라는 말을 항상 하셨는데 그 말을 자주 듣고 자랐던 나는 다행히 열심히 공부해서 교육대학에 입학해 교사가 되었다.
엄마는 생활력이 강하셔서 집안 대소사를 모두 결정하셨고 문제도 척척 처리하는 슈퍼우먼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런 것도 못하느냐 ‘며 화를 내셨다. 감정 기복이 있으셔서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우리 남매들은 늘 눈치를 보았다.
한 번도 내 기분이나 감정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입장에서 감정을 교류하고 인정하는 따뜻한 교감이 없었다. 엄마의 감정만 쏟아내고 소통이 거의 없이 지냈다.
성격이 강한 엄마의 뜻대로 순종했고 의존적으로 공부만 할 때는 잘 몰랐다가 대학에서 들어가면서 갑자기 여러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서 힘들어졌다.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나에게 맞는 옷은 어떤 옷인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하는지, 심지어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몰라 눈치를 보고 망설이며 우유부단(優柔不斷) 그 자체였다.
결혼 적령기에 밀려 준비 없이 결혼과 출산을 했지만 부족한 아내와 엄마였다. 육아를 하며 엄마의 삶의 방식이 나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었지만 교사로서 훈련되며 배운 교육적 지식을 활용하려고 노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를 출산하고 학교에 복직하면서 아이를 시어머님이 봐주셨다.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몸이 약하신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처음으로 데리고 가던 날, 아들은 바뀐 환경에 엉엉 울면서 나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오히려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가 난감하였다. 내 눈에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아들만 유독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우는 아들을 달래느라 진이 빠진 나는 아들을 야단을 치기도 하고 곧 올 거라고 달래며 나의 품에서 억지로 떼어냈다. 학교로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못난 엄마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차갑고 이기적인 부모였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도 몰랐고 아들이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풀어가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하루 종일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렸다.
아직도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울음을 그치고 아이들과 잘 놀았다는 어린이집 교사의 연락을 받고 다소 안심이 되었다.
퇴근 후 아이를 보자 꼭 안아주고 데려오면서 미안한 마음에 ”잘 놀았어, 뭐하고 놀았어? 반가운 마음에 여러 질문을 쏟아내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어릴 적 느꼈던 엄마에게 느꼈던 결핍된 마음을 인지하고 노력을 하였으나 여러 상황에서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갑자기 할머니에서 어린이집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설명을 해주며 두려움에 우는 아들을 어루만져주고 안심시켜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행인 것은 의존적이고 순종적이었던 부족한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덕분에 아들은 할머니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린이집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하고 무럭무럭 건강한 아이로 자랐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핫한 드라마 ’ 슈룹‘을 보며 이 질문을 떠올렸다.
슈룹은 ’ 우산‘의 순우리말로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중전(엄마)의 우산을 뜻하고 있다. 특히 여장을 하는 아들의 정체성을 알고 난 뒤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해준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넌 내 자식‘이라고 말한 뒤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도 아들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아름 다고 멋진 장면이었다.
이제 늙으신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릴 적 느꼈던 나의 마음과는 사뭇 다르다. 다그치며 자기 뜻을 관철하던 엄마가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4명의 자녀의 배움을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던 엄마가 보였다.
자식들을 위해 비를 대신 막아주고 예방주사가 귀했던 시절에 주사를 맞히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 서기를 하던 엄마의 진심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엄마는 그냥 옛날 사람이다.
엄마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받은 그대로 아이를 대했던 것이다. 단지 아들을 더 귀하게 여기던 시대적 상황에서 딸이어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한 결핍으로 자녀의 공부에 대해서는 아들딸 가리지 않고 남들과 다르게 열성을 보이시고 열심히 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에게 ’ 안전 기지‘가 된다는 것이다.
'안전 기지'가 된다는 것은 아이에게 부모가 불안하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아이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충분한 안전 기지를 느끼지 못했던 내가 부모의 역할을 인식한 것은 교사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공부 열정과 교사가 되라고 했던 공부 덕분에 오히려 습관적으로 반응하던 부정적인 감정을 끊고 긍정적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딛고 아이들에게 안전 기지 역할을 해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 안전 기지‘의 역할은 아이가 무엇인가 하다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아 본래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안식처를 말한다.
’ 안전 기지‘에서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어주는 단 한 사람!!
현명한 엄마와의 소통으로 아이는 치유를 경험하고 힘을 얻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저 아이에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기댈 언덕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