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만큼 아이들을 보면 걱정도 같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걱정을 하는 마음 안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마음은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에 전달되어 오히려 아이가 부족함에 집중을 하도록 한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를 실망 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신을 믿지 못한다. 자기 안에 부족함을 찾아서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자기 확신이 없어 쉽게 불안감을 느낀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한동안 컴퓨터 게임을 즐겨 했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는데 ‘아들, 오늘 컴퓨터 했어? 라고 물어보고 아들이 ’오늘은 안 했어요”
라는 대답을 믿지 않고 내가 직접 컴퓨터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컴퓨터가 뜨거운가? 만져보고는 안심을 했었다.
아들을 믿지 않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은 ‘엄마가 나를 믿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을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 아들..힘들었을텐데 약속을 지켰네“ 라고 아들을 격려해주고 믿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장실에서 몇 명의 아이들과 만나 소통을 하고 있는 친구들중 A,B,C가 있다.
같은 반 친구들로 가끔 시간이 있을 때 만났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셋이 모이기만 하면 까르르 까르르 웃기도 잘하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많이 보는지 유튜브 ’노래하는 장쌤TV’ 걱정 해줄만큼 가까운(?) 사이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5~10분씩 집에 가는 시간이 늦더니 급기야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교장실에 왔다.
다음 날 들렸을 때 나도 걱정이 되어 아이들에게
”얘들아, 집에 가는 시간 잘 보고 맞춰야 하는데 오늘은 몇시에 가야 하지?“ ”2시까지요“
”이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5분 남았어요.“
시계를 자꾸 보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시계가 좀 빨라요“
”그래? 얼마나? 3분 빨라요..“
하며 내 방의 시계가 빠른 것을 체크해 줄 정도로 시간에 늦지 않게 집으로 가려고 아이들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느 날, 세 친구가 교장실에 들렸는데 자기들이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오늘은 교장 쌤이 할 일이 있어서 교장실은 안될 것 같은데,
마침, 5층 강당이 비어있을 거야. 거기서 하는 게 어때?”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2시까지 집에 가야 되니 늦지 않도록 하고?” 하고 확인차 물었더니
“네..강당에도 시계가 있어요”했다. “강당에 시계가 있으니까 잘 맞춰서 집에 잘 가야해” 당부를 했는데 자기들끼리 춤추다 보니 늦은 모양인지 헐레벌떡 내 방에 가방을 가지러 와서는 ’너무 늦었다.‘고 서두르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늦었으니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
다음 날부터 B와 C가 오지 않았다.
A가 혼자 교장실에 왔기에 “왜 혼자 왔어?“하니까 ”B의 엄마가 저랑 놀지 말라고 했대요.”라고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아마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B의 부모는 A탓이라고 생각한 거 같았다. A가 주도적이고 강하다 보니 보여지는 것만으로 자신의 아이와 성향이 달라서 끌려다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관찰한 결과, B와 C가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이었지만 자신의 의사표현이 정확했다. A가 호기심도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로 주도적으로 일을 끌어갈 때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왜 너만 해? 라고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럼 A가 약간 머뭇거리며 “그럼, 돌아가면서 하자” 고 제안을 하며 서로 맞춰갔다.
부모는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속으로 조금씩 자란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족하고 미숙한 면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늦은 건지, 그 친구를 좋아하는지 등의 이유를 부모와 아이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아이가 조금씩 친구 관계를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든 친구 관계를 대신 정리해 주다 보면 아이가 앞으로 친구 관계를 맺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의 자존감도 낮아진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이르는 말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초등 자존감수업>에서 윤지영은 자존감이란 평가 대상과 주체가 자신으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의 자신감과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도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 자기 가치감이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부모는 왜 자녀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할까?
그 이유는 아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안심할 수 없고 걱정이 되는 것이 부모 마음이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믿음은 아이의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부모가 자녀를 믿어주지 않으면 자녀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자녀를 믿지 못하는 부모는 자녀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지시한다. 부모가 너무 과도하게 통제를 하면 자녀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수동적으로 변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자녀를 믿지 않는 부모가 자주 하는 행동은 자녀의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 주도성을 잃게 하고,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해 감정적 공감이 부족하며 의견이 다르면 핀잔을 주고 자녀의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존감을 형성하는 자신감은 성공과 성취의 경험으로 얻어진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그로 인한 스스로의 만족감이 자신감이 되므로 부모의 격려와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기가치감은 성취나 성공의 결과에 관계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실수하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빨리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기가치감이다.
부모는 아이를 대할 때 조급증이 있다.
아이는 경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자신이 알아가야 배움이 확실하다.
그러나 부모는 부모의 먼저 경험으로 미리 알려주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 해준다.
’애들아, 너희들은 꽃길만 걸어라‘
어느 학교 울타리에 학부모단체 이름으로 붙여놓은 현수막을 보았다.
아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아이들이기에 비바람을 막아주고 보호해주고픈 우리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아이가 실패로 낙담할까 봐, 실수를 하면 안타까운 마음에 또는 불이익을 당할까봐의 여러 이유도 결국은 아이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시기에는 저학년부터 6학년이 될 때까지 서서히 단계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을 믿고 발달 단계에 맞게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가면서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실수를 한다고 해도 실패를 통해 배우고 책임을 느껴 실패의 경험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기의 실수는 아이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소통으로 충분히 극복해갈 수 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며 아이는 스스로 자존감을 키워갈 것이다.
엄마의 기준이 만들어 놓은 허용의 기준이 좁으면 좁을수록 아이는 그 틀과 기준에 맞춰 사느라 많은 애를 써야 한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로 아이 마음에 한계를 정해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모의 잣대로 한계가 없는 아이들을 주저앉히는 것이다.
엄마의 틀로 아이를 본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는 몰라도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엄마와 아이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초등학교 시기는 부모와의 소통을 통하여자기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선택하여 아이의 자존감이 향상되는 중요한결정적 시기이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맺어온 애착 관계를 초등학교 시기의 부모와의 소통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앞으로 사춘기를 거쳐 성장하며 단단한 아이로 자라갈 것이다. 아이가 꾸준히 경험을 하고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부모와의 소통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소통은 자녀와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부모가 배워야 하며 부모와의 소통으로 자녀가 자기 생각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잘 할 수 있다는 자기 믿음을 갖도록 조금씩 ‘선택권’을 주고 결정하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자녀 발달 단계에 맞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자녀를 위해 안전과 위험, 인간으로서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될 선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지시를 하는 게 맞지만 그 외에는 자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 결과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선택과 결정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
자신을 믿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믿음과 혹시 선택에 실수가 있더라도 그 실패를 바탕으로 점점 더 좋은 선택을 해갈 수 있는 것이다. 성장 발달에 따른 허용과 자율을 조금씩 단계적으로 아이에게 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이를 믿어보자.
아이는 스스로 성장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자녀들을 믿어준다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초등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지영은 ’엄마가 믿을께’ 라고 말 할 수 있는 힘은 엄마의 의지와 노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자녀를 믿어주는 것이 의지와 노력으로 된다고 하니 그만큼 어렵다는 뚯 일 것이다. 엄마의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는 마음껏 성장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믿어주고 자기 힘으로 스스로 해내는 환경을 만들어 주며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다.
좋은 소통이란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마음을 나누며 믿어주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왜 그런 선택을 하였고, 다른 선택 방법은 없었는지, 어떤 결과를 예상했는지 소통을 통해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부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