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끝에서 1/ 옳고 그름. 또는 바른 일과 사악한 일.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전라북도의 시작을 알리는 고창에 닿을 수 있다. 필자에게 고창이란 곳의 기억은 단풍이다. 학창 시절 어머니와 단둘이 고창에 단풍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선운사라는 절에 들러 단풍 구경을 하였는데 당연 몇십 년 살아오며 본 단풍 중엔 제일 이였다. 형형색색의 옷들로 갈아입은 나무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푸른 시냇물, 부드러운 느낌 속에 웅장함이 깃든 불교 특유의 건축물들까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특별히 남은 사진들은 없지만 내 기억 속엔 따뜻하고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들로 남아있다.
항상 올해가 제일 덥다는 그 여름이 어느덧 시원한 산들바람에 흐릿해질 때 즈음 나는 문득 단풍이 그윽한 선운사가 생각이 난다. 가을이 다가오는 것이다. 왜 그때 즈음 생각이 난 것일까? 무더운 여름 열대아에 씨름하고 새벽 모기와 혈투를 치르던 그때, 커피를 사 가려고 뙤약볕에서 기다리며 바쁜 아르바이트생의 손을 밉게 쳐다볼 그때, 그때는 왜 생각이 나질 않았던 것일까. 그 아름다운 단풍들이. 사실 이 글을 읽는 여러 독자분들도 그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답에 필자에게 부끄러운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겠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려니까 단풍 생각이 나는 거지!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4계절이 존재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계절은 돌고 돌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급속도로 4계절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독자들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4계절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짧게나마 봄과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본론으로 돌아와 우리는 4계절 중에 가을이라는 계절에 단풍을 구경하러 간다. 왜냐하면 단풍시기가 우리가 소위 말하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엔 단풍을 구경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단풍 사진도 찍을 수 없다. 필자처럼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더라도 그저 시간이 가기를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젊은 층들 사이에서 SNS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하는 경우의 기사를 종종 접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가을이 올 텐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단풍을 즐기며 사진도 찍을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SNS 계정에 흔히 말하는 "잘난 것"을 올린다. 그게 인물이건 물건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잘난 사진들을 올린다. 정말 생계가 힘들어 이틀을 굶고 50시간 만에 먹는 김밥 사진을 올리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SNS에 잘난 사진들을 올리는 사람들은 지금 "가을"인 것이다. 물론 시기적, 계절적인 가을은 아니겠지만 그들 인생에서의 단풍이 찬란하게 깃든 아름다운 가을인 것이다. 그들에게도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들이 겨울엔 얼마나 추웠는지 여름엔 더위와 어떻게 씨름했는지는 알바가 아니다. 당장에 그들이 가을에 단풍놀이를 하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정말 정도가 심하면 일상생활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겠지만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사진을 자랑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괴리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 그들의 가을과 우리의 가을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여름의 무더운 뙤약 빛 아래인데 상대방은 시원한 가을에서 단풍놀이를 하고 있다면 당연히 괴리감이 생길 수 있다.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이다. 상대방의 단풍놀이에 대고 편협한 비판보다는 공감을 그리고 나의 가을이 늦게 오는 것에 자책보다는 기대감을 가져야 한다.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가을은 오니까. 반드시.
올해 여름도 이제 힘을 다해 가는 것 같다. 에어컨을 켜는 빈도수는 줄어들었고 창문을 열어두면 시원한 새벽바람이 나를 감싼다. 곧 가을이 온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괴리감에 고통받는 젊은 청년들이 너무 안타까워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거 같다. 젊은 날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을 보면 남은 내 인생을 더욱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하루 그리고 내일
반복되는 일상에 늘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가야 하는 고통의 반복이지만
그 오늘에 작은
희망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곧 가을이다.
단풍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