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대들에게

흑백의 끝에서 9/ 옳고 그름. 또는 바른 일과 사악한 일.

by 하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모두가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 시절, 그때 무렵이었을까


나는 한 바리스타의 눈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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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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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커피란 어느 시절부터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기름을 붓지 않으면 작동을 하지 않는 공장의 기계와 같은 느낌일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전에 중요한 발표가 있는 것이다. 약간의 긴장감 때문일까, 예상보다 일찍 나온 나는 천천히 흘러가는 손목에 초침을 보며 자주 가던 카페가 아닌 조금 먼 곳을 들렀다.


가게 문을 어깨로 낑낑대며 밀었다. 나의 양손에는 발표를 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자료들이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먼저 문에 달려있던 쇠종이 띠링- 소리를 냈다. '어서 오세요' 한 직원의 나직하고 친절한 음성과 함께 가벼운 눈웃음이 나를 반겨주었다. 뒤에 사람들이 분주한 걸로 보니 내가 첫 손님인 것 같았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는 어색한 걸음으로 카페 이곳저곳을 걸었다. 화이트와 우드로 인테리어 된 깔끔한 느낌의 카페였다.


여담으로 나는 카페에 들릴 때마다 그 가게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가게에 들어서고 주문한 음료를 받기 전까지, 내가 카페의 사장이 된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가게 구석구석을 누비며, 감탄과 아쉬움의 목소리를 조용하게 자아낸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나는 카운터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양손에 자료들이 가득 있었지만 난 커피를 받기 위해 오른손에 자료들을 왼손에게 모두 몰아주었다. 직원은 나에게 커피를 건넸다.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많아서 한 손으로 받네요. 죄송합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나는 카페를 나가고 있었다. 손목의 초침이 드디어 빠르게 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문 앞에 쇠종이 띠링-울리던 찰나, 나는 빨대를 챙기지 않은 것을 알아챘다.


"제가 빨대를 안 챙겼네요. 고생하세요...?"


나에게 커피를 건네어주던 그 직원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에서는 눈물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제가 커피를 만드는 일을 몇 년간 했는데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감사합니다."


시계를 보니 초침은 미친 듯이 빠르게 가고 있었고 나는 급한 마음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이 지났을까. 머릿속에 흐릿하게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름 이름 있는 브랜드 커피숍, 하루에 몇 명의 손님이 커피를 마시러 오고, 그 직원은 몇 잔의 커피를 만드며 건넸을까?


우리는 서비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서비스는 3차 산업의 주 원동력으로 나와 같은 20대와 30대 같은 경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받은 친절한 서비스들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반복되면 무뎌지듯이, 질 좋은 서비스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리며 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친절이란 참 흔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서비스에 길들여진 우리지만, 그 친절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 않다. 왜 친절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서비스를 주는 대신 우리는 그들에게 서비스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친절한 말에는 그에 맞는 말이, 고마운 행동에는 그에 따른 행동이 이루어져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가?


세계는 역변한다. 1, 2차 산업을 거쳐 3차, 4차 이제 우리는 5차 산업 혁명을 바라보고 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우리는 서비스 산업의 중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더 이상 이런 서비스를 사람에게 받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사람에게 직접 서비스를 받는 일이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익숙함에 감사을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로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에 변화가 깃들 길 기도한다



-친절의 마지막 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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