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 그리고 주말의 관성...

by thirty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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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나는 오후 2시가 넘어 일어난다. 평일 내내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던 내 몸의 관성이 그대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잠을 자고 난 후에는 볼품없는 잠옷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 눈곱이 그대로 말라붙은 얼굴로 집 앞 마당으로 나오는 일이 많다. '내 집 마당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을 준 것도 있지만, 사실 신경 쓰이는 시선이라 해봤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이웃집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므로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특히 요즘과 같이 초가을의 바람이 선선할 때 파자마 바람으로 평상에 털썩 앉아 그 바람을 맞고 있자면 평소 잘 하지 않는 독서가 하고 싶을 정도로 운치가 있고 기분이 좋아진다. 대개 상황이 이러면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게으름이 허락된 때는 시간이 멈추고 모든 현상들이 정지한 듯이 천천히 내 감각기관을 통해 흘러 들어온다.

바람이 선선하고 마당에 내려앉은 볕이 따뜻하다. 마당 한 쪽,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나무에 풀벌레들이 꿈틀거리고 마당 밖에서 이웃집 포도나무향이 가득 퍼진다. 바람이 다시 이마 앞, 머리카락을 간지럽힐 때 나는 지붕 위에 찌르레기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 여유롭다. 좋다.’ 하고 시간을 확인하면 멈췄다고 생각한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흘러있다. 하지만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지는 않다. 바람결 하나하나, 풀 내음, 볕의 온기와 반짝임을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누렸기 때문이다. 오른쪽 뇌가 느끼는 이 느린 감정의 기억은 아주 오래간다. 영어단어나 수학공식을 외울 때 쓰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옮기는 의식적인 노력 따위는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위한 공간 한 구석에 곧장 자리를 잡아 불현 듯 떠오른다. 마치 우리가 길을 걷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를 듣고 첫사랑의 한 조각을 회상하거나, 코 끝 스치는 찬바람에 따뜻한 호빵의 달콤함과 온기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이 모든 시간이 반복되는 공통분모를 빼버리고 나면 기억에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일상과는 참 다르다.

내가 30년간 살아온 마당과 이 작은 시골마을은 익숙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골목길, 전봇대 하나하나, 들판과 시냇가, 코스모스 꽃길, 마을 구판장... 모두 내 손 떼가 안 묻거나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저마다 나와 각자의 사연을 같이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마을을 두르는 둥근 타원형의 골목길은 저녁 6시 공영TV채널에 나오던 ‘달려라, 하니!’를 보고 모기차를 쫓으며 친구 녀석들과 달리기 시합을 했던 곳이고, 자동차 경주 만화 ‘영광의 레이서’를 보고 저마다 자전거를 타고나와 ‘추진 장치!’를 외치며 ‘제로의 영역’으로 빠져들었던 곳이다. 문득 마을을 떠난 친구 놈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마을의 익숙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일수록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들이다. 한번은 나와 함께 가꾸는 텃밭에 갔다 온 어머니께서 멍하게 앉아있던 나에게 90세가 다 되어가시던 앞집 경태 할머니께서 간밤에 화장실에 갔다 넘어져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내가 보통 사람들처럼 '화장실에 가다 넘어져 죽는 사람도 있나'하고 실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슴이 먹먹하고 시렸던 것도, 내게 익숙하고 소중한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경태 할머니의 소식을 들었던 그 날, 평상에 앉아 있던 내게 집 앞 경사로의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계신 할머니들의 말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다. '이제 저기 계시는 할머니들도 다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앞이 깜깜했다. 남자의 수명이 여자의 수명보다 짧아 정자나무 아래 모여계신 할머니들께서는 대부분 혼자 사신다. 모두 다 정이 넘치시고 어릴 적부터 나를 보살펴주신 분들이다. 집 앞에 포도나무를 키워 매년 나를 위해 포도를 주시는 할머니부터 남의 농사일을 돕고 저녁에 얻어온 농작물을 꼭 나누어주고 집에 가는 옆집 할머니까지 모두 10명이 조금 넘게 모여 앉아 계셨는데 다들 내가 군에 입대할 때 용돈을 손수 쥐어 주셨던 분들이고 장가가던 날 누구보다 기뻐해주신 분들이시다.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마을이 텅텅 빈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물론 요즘 들어 생기는 빈집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어릴 적 매일 나를 반겨주고 아껴주던 외할머니를 또다시 잃은 기분이 들어 막막하다.


잠시 공상에 빠져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보통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그대로 누워 독서를 하거나 텃밭에 가서 물을 주고 가꾸거나 머리를 자르러 동네 미용실에 들른다. 독서라고 해봤자 유명한 서적을 읽거나 요즘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적을 열심히 읽는 것이 아니라 잡히는 대로 마음가는대로 대충 읽으며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마당의 텃밭은 나름 자급자족을 위한 공간으로 내가 잘 먹는 고추, 감자, 가지, 깨, 파 따위를 심어놓는데 물가가 오르는 요즘 같은 시기에 여간 재미난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배추 모종을 사 심어놓았는데 모두 김장철에 김장을 담기위한 용도이다.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는 일은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번 이렇게 하는 일이 아니라 머리가 길다 싶을 때 아니면 주변에서 지저분하다며 뭐라고 지적할 때 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라는 머리카락의 양이 그때그때 다른 것인지, 동네 미용사 아주머니가 그때그때 길이를 제멋대로 자르는 건지 미용실에 들르는 주기가 요즘은 더 들쑥날쑥하다.


미용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미용실이 딱 하나있다. 사실 미용실이라기보다는 이발소에 가깝다. 다만, 이발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자리에 아주머니가 다시 개업했기 때문에 간판에 미용실이라는 글이 없지만 미용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님 간판이 바뀌었는데도 내가 이미 이발소였던 자리가 익숙해 미용실 간판을 인식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는 이 미용실을 좋아한다. 다른 곳처럼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의미없는 시간을 채우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릴 필요가 없고,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 싸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미용사가 한 명이지만 웬만해선 차례를 기다리는 일도 없고 커트에 몇 만원씩 받는 바가지요금도 없다. 개성 없는 헤어스타일을 좋아하고, 단골이라 인사만하고 털썩 앉아 잠자도 되는 것이 좋은 나 같은 사람에게 딱 이다. 몇 천원의 요금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니, 애써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 원하는 스타일을 위해 온갖 설명을 새로 다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스트레스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한 내가 다른 미용실을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텃밭에서 채소들을 대충 가지고와 저녁을 간단하게 먹는다. 평일보다 더 대충 먹는데 반찬이 달랑 하나거나 된장에 대충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을 집어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서 좋고 식사 후에는 온전히 내 시간을 다시 누릴 수 있어 좋다. 식사 후에는 보통 하는 일이 그때그때 다르지만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가끔 지인을 초대해 마당 평상에서 오랜만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내면 그만한 기쁜 일이 없다. 올 가을에는 집에 담가놓은 술이 잘 익었다는 핑계로 지인을 초대하는 날이 잦은데, 그때마다 타오르는 노을이 더 따뜻하고 바람은 더 선선하며 별은 더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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