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소가 뭔가 초조한 듯 쇠죽도 반쯤 남기고 눈빛이 불안정하고 나를 봐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 그 이유를 아시는 것 같은데 말씀을 안 하신다. 난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소가 뒤 났으니 새뜸에 데리고 간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니 우리 집 소가 뭔가 병에 걸린 줄 알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버지는 쌀 반 말을 자루에 담아 어깨에 지고 암소를 몰고 새뜸으로 가셨다. 새뜸에서 돌아온 소는 병이 다 나았는지 쇠죽도 잘 먹고 다시 고요하고 온화한 눈빛을 나에게 보낸다. 신기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버지는 새뜸의 황소 주인에게 송아지 ‘씨앗 값’을 주신 것이었다.
그 뒤로 소는 더 잘 먹고 어머니는 가끔 쉰밥이나 누룽지도 쇠죽에 엎어 주셨다. 아버지도 소에게 자주 쉬는 시간을 주었고 소가 끄는 수레에 싣던 짐의 무게도 줄이셨다. 암소는 점점 배가 불러갔다. 그렇지만 완전히 노는 날은 없었다. 그때는 아줌마들도 품앗이로 남의 집 밭 매러 갔다가 그냥 밭두렁 옆 나무 밑에서 애를 낳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모르시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저녁부터 외양간 앞에 호롱불을 켜서 매달아 놓으셨다.
며칠 후 잠결에 들으니 워낭 소리가 박자 없이 혼란스럽게 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외양간으로 가시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도 걱정이 되어 후다닥 일어나 나가봤다. 아버지는 우선 새 짚을 가져와 외양간에 까셨다. 소는 괴로운 듯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드디어 뒷발을 벌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었다. 어머니는 미리 걸어 두었던 호롱 불을 소의 뒤쪽으로 가져가 비춰 드렸고 아버지는 소의 엉덩이에서 무언가를 두 손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큰 물주머니가 엉덩이에서 땅으로 툭 떨어지면서 물이 내 얼굴까지 튀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송아지의 앞발을 잡았다가 나중에는 머리를 잡았지만 그 무게를 못 견디고 손을 놓으니 물주머니와 송아지는 동시에 짚 섶 위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애야 욕봤다”하며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아버지는 낫을 가지고 오셔서 먼저 송아지 탯줄을 자르고 다음 물주머니(태반)를 싹둑싹둑 잘라서 소 구유에 넣어 주셨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머리부터 발까지 혀로 핥아서 깨끗이 닦아주고 나서 구유에 있는 물주머니를 국수 먹듯 후루륵 삼켜버렸다. 잠시 후 송아지는 네 발로 일어서기 연습을 한다. 서너 번 시도하더니 엉거주춤 일어나 균형을 잡고 버틴다. 아버지는 송아지의 목을 잡아 어미소의 젓에 대주니 잠시 후 송아지의 쪼옥쪽 젖 빠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릴 적 내게 또 다른 행복을 주던 내 애완견 아니 애완 우가 태어났다.
나는 송아지가 너무 신기하고 귀여웠다.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돼서 걷기 시작하더니 깡충깡충 뛰는 모습과 검고 깊은 눈망울이 세상의 어느 동물보다도 예쁘고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의 동그란 눈이 좋아 동글이라고 이름 지어 줬다. 이런 감정으로 쳐다보니 자연 동글이도 그런 감정을 읽고 점점 나에게 의존하고 따르는 애완동물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