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행복한 기억의 편린들

by 진의환

인류의 애완동물 가장 사랑받는 종은 역시 개일 것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개는 늑대에서 진화된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야생 늑대 중의 일부는 스스로 사냥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인간과 생활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최초로 길들여진 동물이 되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길들여지면서 유전적 변이를 능동적으로 일으켜 진화했으니 그것이 오늘날 반려견이 되었다는 소위인위 선택(Artificial Selection) 이다. 코로나19 야기된 팬데믹 이후 사람과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니, 부족한 스킨십을 반려동물 특히 개와의 스킨십으로 보상받으려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개와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눈을 마주치며 교감할 상호 간에 공통적으로 활성화되어 분비되는 호르몬이 옥시토신(Oxytocin)이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여성이 출산이나 모유 수유 시에 왕성하게 분비되고 사랑에 빠지거나 스킨십을 때도 분비되니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린다. 또한 농도가 높을수록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하여신뢰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있다.


동글이를 데리고 때는 이런 이론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옥시토신의 분비로 나는 행복했다. 학교 다녀오면서 동글이를 부르면 젖을 먹다 가도 얼른 내게 달려왔고, 손을 내밀면 그는 까칠까칠한 혀로 핥았고, 목덜미를 껴안으면 발라당 누워 배를 긁어 달라고 했다. 동글이가 점점 크자 머리 모서리에 가마처럼 뭉친 누런 사이를 비집고 봄날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오 예쁜 뿔이 살금살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동글이는 뿔이 나는 자리가 간지러워서 벽에 비벼 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알고 그의 머리에 엉덩이를 갖다 대면 머리를 비비다가 마지막에는 머리로 나를 슬쩍 들었다가 내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뿐만 아니라 동글이에게도 신뢰 호르몬 옥시토신이 흠뻑 분비되었던 같다. 우린 그렇게 행복했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동글이를 데리고 그렇게 놀고 귀여워하는 것을 보시고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러나 초여름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벗겨낸 다음 꼬리를 하늘로 세운 병어처럼 둥그렇게 말아 묶어 처마 밑에 매달아 건조하셨다. 며칠 물푸레나무가 충분히 말라 하얗게 단단하고 매끈한 질감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는 아버지보다 손재주가 좋으셨다. 왕골자리를 짜도 큰아버지 것은 촘촘했고, 똑같은 짚으로 삼태기와 멍석도 단단하고 야무져서 오래갔다. 아버지는 동글이를 외양간 입구의 기둥에 묶어 놓고 목덜미를 손으로 잡아 코를 하늘로 향하게 올렸다.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글이의 콧구멍과 콧구멍 사이를 아버지는 나무 송곳으로 인정 사정없이 푹푹 찔러 뚫었다. 동글이의 코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어미 소는 옆에 서서 눈만 끔벅끔벅 쳐다보고 있는 , 우리의 운명이니 어쩔 없다는 아니면 아니라는 , 듯하고 있었다.


감자 , 마늘 , 보리 밭고랑, 학교 운동장까지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 심지어는 만든 못자리까지 뛰어 들어가 식구의 애를 태우던 동글이는 그렇게 코가 뚫림으로써 모든 자유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했다. 코가 뚫린 날부터 동글이는 어미 곁에서 자지 못하고 떨어져 자야만 했다. 아버지는 어미 소의 외양간 앞에 조그만 임시 외양간을 만들어 주셨다. 동글이의 코뚜레에는 고삐가 매어지고 끝은 외양간 서까래에 묶였다. 저항도 하지 못했다. 조숙하게 모든 포기한 그의 눈은 우스와 슬픔의 깊은 눈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가만히 서있기만 했지 이상 발라당 눕지도 않았다. 내가 엉덩이를 갔다 대도 비벼대지도 않고 장난도 치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은 끝나 가기 시작했다.


동글이의 상처가 아물어 가니 우리의 이별 시간이 다가왔다. 상처가 아물고 얌전해진 동글이를 확인한 아버지는 다음 장날 어미 소를 앞세우고 광천 우시장으로 끌고 갔다. 동글이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 같았다. 외양간을 나오면서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며 긴장과 놀람 속에 슬픈 눈빛을 보냈지만 나도 어쩔 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가운데 코뚜레의 압력에 굴복하여 끌려가고 있었다. 행복했던 순간과 순간이, 달콤한 기억의 조각과 조각이 동글이의 가쁜 숨에 섞여 공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젠 이별의 고통 속에 그는 속박의 세상으로 이끌려 가고 있었다. 행복은 짧은 순간만 머물다가 사라진다고 느꼈다. 코뚜레 끼워져서.

오후에 어미 소는 홀로 돌아왔다. 식음을 전폐한 쪽으로 네모난 바람구멍에 머리를 내밀고 으음머 으음머하며 하염없이 동글이를 불러 댔다. 나는 확실히 보았다. 흰자위를 아래에 깔고 45 하늘로 향한 어미 소의 눈은 멍하게 초점이 없었으나 눈물은 누런 털을 적시며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그리고 눈을 내려 나를 때에는 어떻게 동글이를 데려다 달라는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어릴 나의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 것이었을까? 지속되지 않은 순간, 순간의 행복도 총체적으로는 행복이라 있을까? 행복했던 기억의 조각, 조각을 불러 모아 뇌리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으면 행복하다고 있을까? 어릴 적에는 송아지와의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할까?



keyword
이전 02화(2) 송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