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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켸빈 Oct 07. 2021

재사회화

함구증을 떨쳐 내기까지


 여러 아르바이트와 사업 경험으로 나름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함구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내성적인 성향은 내가 안고 가야 할 나의 일부분이니까 이제 썩 익숙하다. 억지로 외향적인 척 하려고 되도 않는 노력을 했던 적이 있다. 그건 붕어가 땅 위에서 숨을 쉬듯 버거운 일이고 맞지 않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는 사실을 인지하면 모든 일들이 한결 편해진다. 여느 여성분들이 그렇듯 나도 한 때는 외모에 굉장히 집착했었다. 보톡스, 필러, 성형. 없는 형편에 정말 안 건드린 곳이 없다. 그러나 본판 불변의 법칙! 나는 그냥 나다. 얼굴 여기저기에 애 쓴 흔적이 어설피 남아 있지만 나는 이제 내 외모가 그렇게 밉지 않다. 그냥 눈 달리고 코 달리고 입 달리고 귀 달린 것. 그럼 된 거다. 화장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옷도 편한 빈티지 옷으로 맘껏 대충 입는다.     


 예전엔 기본적으로 외출 2시간 전에 일어나서 고데기로 머리를 꼼꼼히 말고, 썬크림 위에 파운데이션을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컨실러, 비비를 얹은 후 쿠션 팩트까지 챙겨서 틈틈이 수정 화장 할 준비를 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연장하고, 파마하고..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싶다. 허리 사이즈는 무조건 23인치여야 했다. 그래야 집에 있는 말도 안 되게 작은 옷들이 ‘예쁘게’ 맞았으니까. 어느 날은 쫄리는 원피스를 입다가 기립성 저혈압이 와서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겪은 여성들이 숱하게 많다. 다시 한 번 되새기자.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즉 내 몸을 망쳐 가며, 내 시간을 버려 가며 외모 가꾸기에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자기만족도 아닌 자해 행위다.     


 선술 했듯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나 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와 타인을 분리하고, 내가 그동안 마구 내주었던 나만의 선을 확실히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악의도 호의도 없다. 두 번째, 나는 나를 지킬 것이다. 이 두 가지 마인드만 갖추면 사회로 나가는 게 수월해진다.     


 내가 말하는 나를 지킨다는 것은 매사 방어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관을 마음 속에 정해 두고, 누군가가 그것을 폄하하거나 다른 생각을 강요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단호함(그건 니 생각이고!). 내가 합당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위협할 때 항의할 수 있는 용기. 잠자리에서 오늘 나를 지키지 못했음에 후회 하는 일 없이 잠들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을 뜻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이제 막 노력을 시작한 참이다.     


 절대 가시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도 눈 녹듯 사라졌다. 비록 떨어져 살면서 한 해에 1~2번 만나지만, 그저 나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외려 마음이 편해졌다. 가족은 꼭 같이 살아야 가족이 아니다. 떨어져 사는 게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훨씬 이득인 가정도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다들 무탈하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혹시나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특정 가족 구성원이 걱정되는 마음에 분가를 하지 못하는 분이 계신다면, 여력을 다해 가족을 등지고 혼자 어디 몇 박 여행이라도 다녀오거나 고시원 한 달 살이라도 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 그 가족 구성원은 생각보다 알아서 잘 살 것이다(건강상의 큰 문제가 없는 경우에.). 어쩌면 가족에 대한 걱정은 표면적인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본인 내면의 어떤 부분이 걱정이어서 못 나가고 있을 확률이 크다. 같이 살아야만 하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그곳은 결코 내 집이 아니다. 내 자리, 내가 숨 쉴 곳은 내가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떨어져서 살 권리가 있고,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체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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