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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켸빈 Oct 07. 2021

빈티지 초보 사장의 물건 사입기

대체 이게 왜 여기에?


 10년 전에는 오로지 동묘 시장에서 물건을 구해다 팔았지만, 지금은 도매 전문 구제 창고를 도는 방식으로 사입하고 있다. 아직 사입을 10차례도 나가지 않은 초보지만 재미있는 경험은 꽤 있다.     


 새 생명을 얻을 빈티지 제품들은 구제 창고에 옹기종기 잠들어 있다. 옷 산(정말 말 그대로 산처럼 쌓인 옷더미)을 발 벗고 기어 올라가서 무작정 뒤지고 보는 것이 빈티지 사입의 기본 자세다. 수도권 기준으로 경기도 외곽 쪽에 헌 옷 창고가 많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에서 수입해 오는 곳들도 있고, 국내 방문 수거 위주 물건만 취급하는 곳도 있다. 여하튼 이곳에는 지구 각지에서 모인 신박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거대한 헌 옷 마대 자루를 뜯는 사람만 겪을 수 있는 만남이다.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단복에서부터 오래된 리얼 빈티지 교복, 미화원/공무원 분들의 유니폼, 119 구조대원분이 쓰시던 모자, 경찰복 등의 갖가지 물건들을 직접 만져보고, 걸쳐보고, 갖고 놀아볼 수 있다. 무슨 의도로 디자인된 건지 전혀 모르겠는 패턴과 색감, 실루엣의 옷들은 너무나도 많다. 아일랜드에서 물 건너온 헤비울 니트 가디건의 두께에 감탄한 일도 있었다. 평범한 옷들만 계속 보이면 섭섭할 지경!     



옷 더미에서 명품이 나온다고?   

  

 일본 헌 옷을 취급하는 창고에서는 정말 아주 드물게 버버리 블루라벨 제품이나 입생로랑 등의 명품 옷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빈도로 발견했다. 그만큼 정~말 안 나온다. (당연하다.  같아도 섣불리 띠어리 브랜드 원피스를 헌옷수거함에 버리진 못할 것 같다.) 반면 유니클로는 거의 매장 차려도 될 정도로 나온다. 나도 그중에 질 좋은 것들은 종종 업어오곤 한다. 그리고 양가죽 외투와 모피 코트도 은근히 발견된다. 이런 물건들은 중박 이상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입한다.     


 몽블랑 같은 브랜드의 가품 시계도 중고 시장에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돈이 된다. 아주 가끔 옷더미 사이에서 그런 것들이 나와서 제법 쏠쏠하다. 헌 옷 주머니에서 현금 3만원 가량이 나온 적도 있다. 빠르고 자연스럽게 챙기는 것이 포인트.       


 빈티지 명품 의류는 가품, 짝퉁이 아주 많기 때문에 초보는 라벨만 봐서는 정말 구분하기 힘들다. 이것도 다 시간과 경험 싸움이겠지만. 나는 긴가민가한 명품 옷은 일단 사 와서 라벨과 컨디션을 사진으로 찍어 필웨이 사이트에 올려서 확실한 검증을 받는 식으로 공부한다. 짝퉁으로 판정되면 말 그대로 공부한 값으로 치고, 진품이면 잘 손질해서 쇼룸에 소개한다. 볼 줄 알아야 옷을 잘 고를 수 있다. 명품 공부, 이 과정은 정말 단기간에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체력 싸움!


 나는 공장과 물류센터 위주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나를 깔끔하게 꾸며야 하는 서비스직보다는 육체노동이 훨씬 쉬웠다.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에 빗대어 구제 창고 노동을 설명하자면,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의 8시간의 노동량을 구제 창고에서는 2~4시간에 몰아서 하는 식이다. 단시간에 굉장한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 한여름에는 정말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다.     


 창고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우리에겐 옷을 고를 수 있는 암묵적인 시간이 주어진다. 즉 200kg의 옷값을 지불했어도 8시간 내내 그 옷들을 추려내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말. 손보다 빠른 눈으로 내가 살릴 수 있는 옷들과 그럴 수 없는 옷들을 골라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온 몸을 다해 옷과 투쟁하는 수준으로 일하게 된다. 이것도 요령이 생기면 나아질 부분이긴 하겠지만.     


 보통 한 창고에서 10kg~40kg 정도의 옷을 사입한다. 이것을 차로 끌고 가기 위한 수레가 필요하고, 수레에서 짐을 차로 상차하고, 자차를 끌고 한 시간가량 집으로 운전해 간 후, 사입한 옷더미를 풀어서 세탁/정리하는 과정까지 마치면 보통 하루치 에너지가 전부 소비된다. 이렇듯 빈티지 사업은 사입에서부터 많은 노동량을 요구하는 일이다. 건강한 마음과 체력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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