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옷 얘기로 넘어가 보겠다. 여러분이 모두 익히 알듯이 값싼 지하상가 의류나 인터넷 쇼핑몰의 의류들은 대게는 한 철 입으면 보풀과 늘어짐으로 입을 수 없는 수준이 된다. 나도 헌옷 방문 수거를 통해 그러한 옷들을 10kg 가량 처리한 경험(보통 헌옷 수거 매입 시세는 1kg당 200~400원 수준의 아주 헐값이다.)이 있다. 그리고는 또 사고, 또 버리고, 또 사고,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무의미한 굴레에 의문을 느꼈고, 동묘시장에 대한 추억과 구제 의류에 대한 갈망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나는 밥벌이를 하기 위해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업무의 연장으로 회사 상무님과 개인 사무실에서 생산 잔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침 그 사무실 한 쪽에 구제 의류들이 가지런히, 그리고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상무님 친인척 분이 사무실에서 온라인 구제 쇼핑몰을 운영하고 계셨던 것. 상무님 허락 하에 빈티지 옷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버려진 옷들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 다시 태어나서 새 인연을 기다리는 그 광경이 내겐 너무 아름다웠다. 아, 난 다시 이 사업을 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30살, 10년 만에 다시 온라인 빈티지 쇼핑몰을 구상하게 되었다.
리본쇼룸(Reborn Showroom) 출격!
그렇게 2021년 7월, 빈티지 사업에 다시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리본쇼룸' 이라는 간판을 달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 들었던 브랜딩 수업을 기초부터 되새겨 보기도 했다. 나는 박리다매가 아닌 적은 양의 제품들을 셀렉해서 빈티지의 가치, 더 나아가 브랜드 경험까지 디자인하고 싶었다. 우선 나의 핵심 가치부터 설정했다. 내가 빈티지 옷을 선택하고, 손질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내 쇼룸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래의 단락으로 시작되는 소개글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리본쇼룸 대표입니다. 저는 버려진 옷에 새 삶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시 태어난(Re:born)' 쇼룸입니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지구는 한계 자원이지요. 철마다 버려지는 값싼 옷과 의미 없이 낭비되는 옷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그중에는 충분히 다른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옷들도 아주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선택을 통해 그 옷들은 새 생명을 얻으며, 그 사람과 만나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겠지요. 빈티지를 소비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리사이클링에도 참여하는 사회적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생략)
청바지 한 벌을 새로 만드는데 7000L의 물이 소요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돌고 돌아 쌓인 거대한 옷 더미가 소의 먹이로 전락한 끔찍한 사진도 봤다. 어딜 가나 이월 세일, 시즌 세일이다 뭐다 해서 새 옷들의 물량이 넘쳐 나는 게 현실이다. 누운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로 소비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극히 소비주의적인 이 사회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넘어 가치 지향적인 소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행동과 동시에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작지만 큰 아카이브,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리본쇼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한 것. 나는 이렇게 취업 포기생인 동시에 작은 공간의 대표가 되었다.
이렇듯 리본(Re:born)쇼룸은 버려졌던 옷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다. 쇼핑이란 늘 그러하지만, 빈티지 쇼핑에는 좀 더 복잡한 여러 우연과 인연이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과 듣도 보도 못했던 실루엣의 옷들이 각각의 존재감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세월은 물론, 저 멀리서 물 건너온 옷들도 아주 많다.
지금, 바로 여기서 이 옷과 내가 만나기까지 어떤 사연과 우연이 있었을까 상념에 빠지게 만드는 것, 이 점이 빈티지 의류의 핵심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빈티지 의류를 만나고, 그 옷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 즐거운 과정이다. 아직 작고, 가꿔지지 않았지만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리본쇼룸을 다양한 취향의 아카이브로 채워 나가고 싶다. 나는 항상 옷들과 사람들 간의 또다른 우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