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정신과 공백기 3년 추가요!
축하받지 못할 졸업, 그 후
다사다난한 졸업 후 3년간은 내 인생의 두 번째 암흑기이자 공백기였다. 스스로를 포함해 누구도 축하할 수 없는 졸업을 맞이하고 나서 심각한 정신적인 피로에 부딪혀 사람이 말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나는 그 시기를 생기능의 상실기라고 표현한다. 정말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먹고 살겠다고 식욕이 돋는 것 마저 혐오스러웠으니까.
졸업은 했지만 여전히 학교 앞 고시원에 박혀서 혼자 술 먹고, 울고, 자고를 반복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고 연락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고시원 바닥은 여러 가지 물건들로 어지러웠고 책상 위도 정리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그저 쓰레기만 제때 갖다버리는 정도로, 청소 할 여력도 없이 근근히 살았다.
그 와중에 다행히 책은 꾸준히 읽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심리학과 사랑, 정신 질환, 우울증에 대한 서적들을 읽으며 필사했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문장으로서 알고 싶었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 대한 많은 단서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의 결핍, 가정 폭력 피해자, 여자로서 세뇌된 외모에 대한 압박, 사회적 동물의 고립. 또, 내가 이렇게 갈구하는 ‘사랑’이란 결국 허상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을 정리하며 나름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다음날 밤엔, 또는 새벽엔, 어느날엔 대낮부터 우울감은 또다시 무섭게 도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무식하게 버틴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단순히 병원에 가는 것과 상담 시간에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전반적인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내가 정말 '우울증 환자' 라고 선고받을 것에 대한 이상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두려움이었다. 어쩌면 정신과 치료를 마지막 보루 같은 것으로 여겼던 것일 수도 있다. 즉, 정신과에 다녀와서도 내가 이대로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정말 말 그대로 쓸데없는 잡념.
여느 때처럼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기계적으로 울던 날 생각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그 즉시 근처 정신과를 검색했고, “초진인데 예약해야 하나요?” 너무나도 시도하기 힘들었던 이 짧은 한마디를 통해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그간의 일들을 도저히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노트에 나의 주요한 증상과 생기능을 상실한 이력들을 간단히 적어 가지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사려 깊고 친절하셨고, 내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게끔 유도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말이 막히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짧은 상담을 통해 양극성 장애/조울증을 진단받았고, 아침 약으로 명인탄산리튬과 아빌리파이 등의 약을 처방받았다. 나는 불면증도 극심했기 때문에(아론, 아졸 등 수면유도제가 매일 먹는 상비약이었다.) 저녁 약에는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약들도 포함했다.
첫 두세달 정도는 1주일에 한 번 방문했다. 나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에 노트에 나의 변화와 증상들을 적어 가는 것을 반복했다. 변화는 약을 먹은 후 한 달 안에 나타났다. 일단 잠들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는데, 몸이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눈을 뜨면 아무것도 소용없고, 부질없고, 움직이기 싫고, 다 버거웠던 몸이 그냥 저절로 일어나 그간 미뤄놨던 것들을 조금씩 처리하고, 앞으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분이 뛸 듯이 기뻐지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편의점조차, 아니 쓰레기를 버리러 분리수거장조차 나가기 싫었던 내 몸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 돈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한 것은 분명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