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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켸빈 Oct 07. 2021

휴학생으로서 빈티지 창업 첫 도전

2011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난하고 또 가난한 휴학생이라는 신분이 되었다. 와중에 나는 ‘옷’ 을 참 좋아했다. 잘 입고 못 입고를 떠나서, 내게 옷이란 그저 몸에 걸치는 원단이 아닌 나만의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그때의 내게 큰 옷장 역할을 해준 곳은 서울의 ‘동묘시장’ 이었다. 동묘시장은 구제, 빈티지, 즉 ‘버려진 옷’ 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시장으로 유명하다. 천 원, 이천 원으로 너무나 다양한 옷들, 그때의 나로서는 시중 가격으로는 절대 사지 못했을 브랜드 옷들까지 접할 수 있었다. 버려진 것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를 나설 때마다 ‘옷장 자유이용권’ 을 끊은 기분이었다. 


 급기야 21살 무렵, 그 옷들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었다. 너무 멋지고 좋은 옷들이 많아서 어디에든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200만원 정도를 모아서 아주 작게 시작했다. 첫 쇼핑몰은 ‘마이구제’ 라는 이름이었다. 무료 도메인 사이트에서 도메인을 만들고, 엄마와 함께 살던 작은 빌라를 주소지로 한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비닐과 택배 봉투를 사고, 홈페이지 메뉴 버튼 하나하나 포토샵으로 만들어서 디자인하는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 거대한 등가방을 매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가며 동묘앞역을 오가는 것은 대학 수업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노동이었다.  

    

 당시에는 SPA 브랜드 시장이 크지 않았고, 교복 위에 걸쳐 입을 브랜드 바람막이와 패딩, 니트, 맨투맨, 후드티셔츠, 일본 빈티지 의류 등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나의 수작업 마케팅(네이버 지식인을 통한)과 전략이 썩 잘 먹혔다. 한 달 만에 다 떼고 120만원의 순수익을 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곧 복학의 압박에 부딪혔다. 나름 진중하게 자퇴를 고민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강조하던 ‘대졸’ 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또 내가 그렇게 2년을 입시 미술 학원에서 썩어가며, 아침 버스 안에서 영어 지문을 듣고 외우면서 버틴 이유를 되새기면서. 어찌 보면 안타깝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어설픈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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