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복용한지 12일째가 되던날.
약을 복용하고서는 마치 이 약이 내인생을 구원해줄 수 있는 약이라고 생각했다. 맹신했고 맹신했다. 약이 마치 나의 초인적인 힘을 발휘시켜주는 구원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이 약만 있다면 나는 무적이 된 것만 같았고 뭐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마치 모든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서도 그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빨리 이 약의 엄청난 능력을 주변에 알려서 모두가 이약물의 혜택을 받게 해야하만 할 것 같기도 했다.
딱 12일이 지나고,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 가장먼저 이런생각이 들었다. 약이 부족한건 아닐까? 예전처럼 화가 조금더 나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이 짜증이 나면, 가끔 참을 수 없고 급하게 무언가 하고싶어질때면 약기운이 떨어졌나? 라는 생각이나 나에게 약용량이 작은가? 라는 생각이 뒤이어 따라왔다. 충동적으로 약을 두배 먹어볼까 ? 라는 생각도 함께 쫒아왔다. (당연히 처방을 받았으면 이유가 있을것이고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전문의와 상담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3일째가 되던날에는 문득 무기력 하다 라는 느낌을 받게되었다. 무기력한 것이 이 약물의 부작용인가? 이 약을 먹고는 무기력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또 무기력함이 찾아오는것일까?.. 문득 내가 이런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약물에 의존하고 약물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나 자체에 의문이 들었다.
ADHD치료법에 대해서 찾아봤다. 다양한 의사의 다양한 이론과 생각이 있듯이 치료방법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약물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약물과 상담치료, 인지치료를 30:30:30으로 보는 사람, 약물치료를 아얘 권장하지 않는 의사도 아주간혹 있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진단을 해주시긴 했지만 약을 처방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말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 라는 질문은 나에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유투브와 구글 검색 정도가 나에게 이 병에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창구였다. 좀더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 그리고 이후에 내가 노력해야하는 추구해야하는 방향에 대해서 이 병을 긍정적이게 발현시킬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그러던 중 알게된 것이 호르몬의 중요성이다. 도파민이 부족해서 이병이 생긴다 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도파민이 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것인지에 대한 이해도는 없었다. 도파민이란 무엇인가를 자꾸만 갈구하도록 만들어주는 호르몬이다. 도파민은 지금 가지고 있는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지금보다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놀라운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에 끊임없이 매료되는 사람들을 도파민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런 미래지향적인 힘 때문에 도파민이 지금의 성공호르몬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도파민은 쾌락과 아무 상관이 없다. 쾌락보다 더 섬세하고 심층적인 감정을 전달하는것이 도파민의 역할이다. 도파민은 노력을 하게하는 의지를 갖게하는 물질이다. 도파민이 없으면 노력자체가 불가능하다. 도파민이 없는 상태란 노력하고싶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노력을 할 수 없는 상태 라는 것이다.
도파민에는 두가지 회로를 통해 발현된다. 첫째로는 욕망회로 이며 둘째로는 통제회로이다. 도파민이 욕망회로(중변연계회로)로 분출되면 즉각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하고싶은 것을 다 해버릴 수 있는게 욕망회로로 표출되는 도파민의 능력이다. 다만, 과활성 시켜서 부족하게 되면 정작 필요할 때 분비가 되지 않아서 의욕상실, 불안감,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부족하게 되면 ADHD가 온다고도 한다. 그리고 통제회로(중피질경로)로 분출되면 욕망회로가 폭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통제회로를 통한 도파민으로는 당장 하기 싫어도 나중에 더 큰 성취를 위해 보상을 위해 참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통제회로를 통해 얻는 도파민의 도움 없이는 자기효능감을 얻을 수 없다. 도파민 통제회로에 힘이 생기면 현명한 결정을 내리게 되고, 치밀하고 계획적이게 구상할 수 있다.
이렇게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고, 유투브를 통해 정보를 접하게 되니, 정말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인체의 10프로도 차지하지 않는 뇌라는 곳에서 나오는 정말 작은 용량의 호르몬이 나를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중요한 사실들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과 내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분야를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내안이 참 깊구나 라고는 느겼지만 이렇게 우주같은줄은 몰랐는데, 파도파도 끝이없는 스스로의 발견, 자아의 발견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2주가 지나 15일째가 되던날
약을 먹고 많은 개선점이 있었지만 가장 삶의 질을 올려준 부분은 ‘불안’에 대한 개선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불안에 시달렸다. 너무 불안할 때에는 아침 7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거나 그마저도 한시간 두시간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 사실 그 때 당시에는 이 증상이 ‘불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가끔은 고민이 있으면 잠이 오지 않고 가끔은 심장이 떨리고 가끔은 쓰러질 것 같기도 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내가 건강을 위해 간혹 한약을 지어 먹곤 했는데 한의원 원장선생님 께서도 원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그정도의 스트레스를 다들갖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길래,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
그런데 어느순간 부터는 이 불안으로 인해 일상생활에도 불편함이 따라왔다. 심장은 마치 부정맥을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로 늘 불규칙하게 뛰었고 걱정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간혹 공황장애 초기 증상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은 정말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사업이 점점 커지면서 나의 불안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불안이 찾아올 수 록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나의 현재를 반납했다. 점심을 먹을땐 저녁에 뭘 할지 생각하고 저녁에는 내일 무엇을 할지, 잘 시간에는 한달뒤의 일들을 계획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더 명확하고 조금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까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망가졌다. 정확한 표현으로 망가졌다. 일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 명확하게 체계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조차 없었다.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을 만나면 공격적이게 반응했다.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직원과 약간의 의견 대치가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이 생긴다거나, 거래처와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나는 하루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당일 안에는 꼭 당사자와 문제를 해결해야만 이 불안함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해결을 해도 지속적이게 불안하거나 특히 하루종일 심장이 떨리는 증상을 오랫동안 겪었는데 원채 하루종일 불안한 것이 일상이다 보니 매일 ‘아 심장이 너무 아파’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ADHD 진단을 받기전 1년이 가장 극심하게 불안했다. 심각하게 부정맥 검사를 해볼 생각을 했는데 정신적인 문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일 정도로 약을먹고 3일 째부터 만성적으로 갖고 있던 불안이 개선되었다. 심장이 빨리 뛰지 않았다.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 편두통이 하루종일 있다가 없어지는 것처럼 심장이 늘 불안하고 무언가 늘 쫒기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약을 복용하고서는 정말 거짓말처럼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15일 째가 되던날,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복용을 하고 처음으로 휴약기를 임의대로 가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말도안되게 개선되니까 약이 없이도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위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괜찮은데, 마음먹으면 지금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날에는 조금 말이 많았던 것과 하품이 미친 듯이 났던 것 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둘째날 이 되니 놀랍게도 10일간 멈추었던 심장이 미친 듯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마치 이 지난 10일간 단 하루도 심장이 빠르게 뛰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일 같았다. 그냥 원래 이렇게 늘 불안했던 것처럼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처참함 그 자체였다. 슬펐다. 나아졌다고 생각했고 마치 나는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다시 약을 복용한지 2일 이 되었다. 다시 안정을 찾았다. 이 모든 글을 쓰는데 15일, 그뒤로 한달간 ADHD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했고, 일에관련된 모든 일들을 미친 듯이 글로 적었다. 흩어져서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족히 한권 책 분량은 될 듯 하다. 지금까지 다이어리에 기입하던 방식과 컴퓨터에 남겨놓았던 많은 업무 관련된 글 또한 ADHD를 치료하기 전에는 너무나 흩뿌려져 있어서 상실감이 컸다. 하지만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한달 반 뒤 정말 신기하게도 많은것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한가지 이야기에 집중하고 생각에 집중 할 수 있게 되면서 창의력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업무에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만족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간간히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늘 나에게 높은 기준을 대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자책하고 학대했다. 머리로는 나라도 나를 응원해 주고 보듬어 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주변 사람들에 한참을 못미치는 스스로가 경멸 스러웠고 갑갑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ADHD임에도 남들과 비등하게, 어떤 분야에서는 더 잘 퍼포먼스를 내면서 지내온 스스로가 정말 대견하다. 그리고 나와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들려주고싶다. 응원과 위로를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