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안 나오는 답을 찾아서

디자이너입니다, 질문 좀 해도 될까요?

by 디프렙 아카데미

봄의 싱그러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제법 더워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평일 오전이었다.

회사 건물 안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던 윤이서에게 이 시간의 거리는 낯설고도 생경한 풍경이었다.

평소에 출퇴근길로만 빠르게 지나치던 길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였고, 카페 앞 테이블에서는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원래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 시간대에 거리에서 느껴지는 느긋한 분위기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선사하면서도, 한편으론 긴장감이 서서히 마음속을 채우고 있었다.


"팀장님, 그런데… 진짜 우리가 직접 사람들에게 인터뷰하는 거예요?"


이서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사람을 직접 마주하며 질문을 던지는 일은 화면 앞에서만 작업해 온 디자이너 이서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색함과 긴장이 뒤섞인 목소리에 박 팀장이 대답했다.


"그럼요. 우리가 직접 나가서 들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데이터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옆에서 걷고 있던 이 대리도 시선을 떨구며 한마디 거들었다.

"하긴,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부족하긴 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대리 역시 내심 어색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컴퓨터 앞에서 디자인을 하고, 디지털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현장에서의 리서치’란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래도… 정말 괜찮겠죠? 거절당하면 어떡해요? 길에서 갑자기 말을 거는 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이서가 머뭇거리며 다시 물었다. 순간적으로 박 팀장의 얼굴에도 살짝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자신 있는 미소로 돌려 말했다.


"괜찮아요. 뭐 거절당하면 어때요? 부끄러움도 결국 경험이니까."

박 팀장의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와는 달리, 이서는 여전히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화면 속에서는 너무나 쉽고 명확했던 일들이, 거리에 나오는 순간 모든 게 복잡하고 불확실하게만 느껴지는 이서였다.


그에 비해 거리는 햇살 아래 더욱 활기차 보였고, 그 순간만큼은 디자인팀 삼인방 모두 불안감보다 묘한 설렘이 조금 더 앞서 있었다.





이서가 근무하는 회사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LOKAL’은 리서치와 회의가 매일 진행되며 방향성을 잡아가는 초기 단계에 있었다.

모두가 모인 회의에서 제휴를 희망하는 소상공인들과 더 나아가 실제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렇게 특정 지역이나 장소를 방문하여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릴라 방식의 자료 수집 방식을 ‘필드 리서치’라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 기반이라 현장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지만, 길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은 모두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힘든 일이기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활기차던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해야겠죠. 이번 필드 리서치는 디자인팀이 담당하겠습니다.”

정적을 깨며 박 팀장이 말했다. 현시점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디자인팀이 필드 리서치까지 담당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 판단한 박 팀장이었다.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한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그렇게 급하게 준비를 마친 다음 날 아침, 이서와 박 팀장, 이 대리는 지역 상권으로 향했다.

출발 전 박 팀장은 용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출발합니다! 디자인이든 리서치든 직접 현장을 보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먼저 이서의 일행은 제휴 관련해서 연락을 몇 차례 주고받은 업체들 위주로 방문하기로 했다.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카페와 디저트 샵 들이었다. 전날 미리 인터뷰 협조 동의를 구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달랐다.


처음 방문한 카페는 갑자기 몰린 손님들로 분주했다.

이서의 일행은 사장님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했지만,

"아 설문조사요? 지금 너무 바쁜데… 죄송해요"라며 일에 다시 집중했다.

땀 흘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의 모습과 손님으로 붐비는 내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쉽지 않겠는데요..?” 이 대리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카페 고객들이 나중에 우리 프로젝트의 사용자가 될 수 있잖아요. 주문하고 나오는 사람에게 인터뷰 한번 시도해 봅시다.”


박 팀장은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마침 커피를 손에 쥔 한 손님이 나왔고,

박 팀장은 “제가 먼저 말을 걸어볼게요”라며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역 기반 오더 서비스를 기획 중인…”

“죄송합니다.”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손님은 바쁘다는 듯이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허망한 박 팀장의 모습에 이서와 이 대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삼켰다.

“아, 이런 건 너무 오랜만에 해서… 하하.”


이서는 모든 일에 능숙하고 차분한 태도의 박 팀장의 처음 보는 민망한 웃음이 낯설면서도 재밌었다.

그 뒤로 들른 다른 식당 사장님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며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던 이 대리는 급기야 메뉴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목록에도 없는 메뉴를 말하는 실수까지 했다.


"저... 여기 아메리카노 하나만... 아니, 죄송합니다, 질문 몇 가지 좀... 아..."


이서가 속으로 "슈퍼맨 이 대리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참는 동안, 박 팀장도 점점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던 박 팀장은 점심시간이 지나자 전략 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이대로 인터뷰 하나 못 하고 퇴근하는 거 아니겠죠?"


"팀장님, 저희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단 하나의 답변이라도 얻을 수 있도록 접근해 봅시다. 우리가 너무 리서치에 대한 완벽한 준비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핵심만 빨리 파악하고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맙시다.

이제부터는 ‘융통성’이 첫 번째 기준입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간단하게 수정한 질문 목록을 들고 다시 거리에 나선 세 사람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긴장했던 이 대리도 편안한 태도를 되찾았고, 박 팀장은 능숙하게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오후가 되자 인터뷰는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서는 카페 주인, 동네 빵가게 주인, 꽃집 사장님 등과 짧지만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지만,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정보였다.


특히, LOKAL의 데스크 리서치에서 파악했던 ‘지역 상권 내 배달 수요가 높다’는 데이터는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와 크게 달랐다. 실제로는 배달보다 '픽업'이나 '현장 주문'을 더 선호한다는 상인들의 피드백이 많았다.


이유는 배달 수수료, 단골 고객과의 관계 유지, 오배송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이서는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처음 인터뷰를 거절당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얻었던 정보는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값진 것이었다.


무엇보다, 리서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이해한 하루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리서치의 양과 깊이에만 집착했지만, 필드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중요한 건 데이터 그 자체보다는 이를 어떻게 디자인에 녹여낼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박 팀장과 이 대리와 함께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팀으로서의 유대감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그날 밤, 이서는 "필드에서 디자이너 생존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메모를 적어 내려갔다.


"현장에서는 이론보다 융통성과 실천력이 더 중요하다. 결국 리서치는 디자인을 위한 과정이지 최종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움직일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메모를 저장한 이서는 오늘 하루의 피로보다 더 큰 뿌듯함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메모



-리서치의 종류


1. 데스크 리서치 (Desk Research)
책상 위에서 할 수 있는 리서치.
기존에 수집된 자료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합니다.
검색, 통계, 논문, 리포트 등을 활용하여 전체적인 시장 흐름이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통계청 데이터, 구글 트렌드


2. 유저 리서치 (User Research)
사용자를 중심으로 한 리서치.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그들의 행동, 니즈, 불편함을 파악합니다.
인터뷰, 설문조사, 사용성 테스트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예) 사용자 1:1 인터뷰, UX 설문조사


3. 필드 리서치 (Field Research)
현장에 나가서 직접 부딪히는 리서치.
특정 지역이나 상황 속에서 사용자나 이해관계자의 실제 반응과 맥락을 관찰하고 질문합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관계성, 현실적인 제약 조건들을 알 수 있습니다.

예) 거리 인터뷰, 점포 사장님과의 대화, 현장 참여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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