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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Sep 28. 2021

그 목소리 좀 치워줄래?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화를 내거나 남을 상처주는 말을 할 때 우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커진다. 호흡도 불안정하게 떨린다. 속도도 빠르다. 

이런 일은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잘 일어난다. 부모와 자식 사이, 연인이나 부부 사이, 아주 가까운 친구 등등. 친한 관계에서는 상대가 쉽게 떠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알랭 드 보통의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는 이를 깊은 통찰력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딱히 이치에 닿지 않는다. 세상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런 부당한 말들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꾸러진 징표다. 

분별 있고 예의 바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화를 내도 나를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상처주는 말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렇다.


반대로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가려 한다. 여차하면 나를 떠날 것 같은 두려움, 비난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꼰대로 보이지 않을까 갑질을 한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어 조심할 때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예의바른 말과 듣기 좋은 목소리로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회적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도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 보통 흥분한 상태에서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는데,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다. 일단 상대를 내 앞에 굴복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자신의 교양 따위는 저 멀리 던져주고 미사일처럼 공격한다.      


그들은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상대를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상처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상대가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미워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말을 하는 걸까. 

‘맞을 짓을 한다’는 말처럼 ‘네가 나를 화나게 했으니 내가 이렇게 너를 말로 때려도 괜찮다’는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도 고치고 싶은데 타고난 성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상대를 마주할 때는 목소리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낀다. 마치 쉰 곰팡이처럼 퀘퀘하다. 그 사람이 평소 말을 잘하는 달변가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젠 체를 잘 하는 사람이든, 목소리가 좋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목소리가 좋다’는 말, ‘말을 잘한다’는 말에는 물리적인 목소리의 음색이나 달변 정도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폭포수처럼 배려 없는 말을 쏟아냈던 그 사람은 나를 친밀한 사이라고 느끼고 너무 신뢰하고 사랑해서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만약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제발 넣어두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 있든 없든 한 사람의 존재에게 더 이상 말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를,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존중 있는 목소리로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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