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마흔네 살에 빚쟁이가 되었나

구비마루의 이야기

by 으랏차차 내인생

왜 마흔네 살에 빚쟁이가 되었나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며, 인생의 구비구비를 넘어 정상(마루)까지 가는 거북이 구비마루

30대 중반, 나는 내 분야에서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어딜 가든 대장이었고, 늘 앞장섰다.

돈도 벌었고, 인정도 받았고, 내 능력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나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장 잘나가던 시절, 나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멋지게.

그리고 그 욕심은 사기로 돌아왔다.


“야, 이건 기회야. 놓치면 후회한다?”

그래서 잡았다.

결과적으로 후회했다.

사기는 교묘했다. 믿을만한 사람의 말은 달콤했고, 계약서는 빈틈없이 짜여 있었다.

그렇게 몇 억의 빚이 생겼다.


마침 가정이 생겼고, 가장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래, 이건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빚은 마치 체중처럼 쌓였다.

먹고만 살면 늘어나고, 줄이려면 피땀을 흘려야 한다.

나는 그 무게를 버티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게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40살, 결심


결국 40살이 되던 해, 나는 결단을 내렸다.

가정을 떠나기로 했다.


‘책임을 피하려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다.

더 이상 나 하나로 인해 힘들어지는 사람이 없길 바랐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그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기회를 주기도 했고, 때로는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할 때가 오면, 사람들은 냉정해진다.

그리고 도움을 준 사람이 많아질수록, 떠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 아직 남아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빚.


다시, 시작


마흔네 살, 나는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원래 잘하던 일은 더 잘해야 하고,

새로운 도전도 해야 한다.


이제는 혼자다.

옆에서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원래도 나는 혼자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동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빚보다 크다.

배신도, 외면도, 냉정한 말들도.

하지만 그 모든 건 결국 내 선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내가 더 똑똑했다면, 더 신중했다면, 더 용기 있게 끊어냈다면.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며, 인생의 구비구비를 넘어 정상(마루)까지 가는 거북이 구비마루


결국 원망할 사람은 없다.

그 시간을 남 탓하며 보낼 바에는, 하루라도 더 빨리 제자리를 찾고 싶다.


빚쟁이의 첫 이야기


지금 나는 내 공간조차 없다.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44살, 남들은 안정적인 직장에, 가정이 있고, 여유가 있는 나이.

하지만 나는 다시 바닥에서 올라가야 한다.


웃긴 건,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들은 바닥에서 시작하니까.


나는 다시 올라갈 거다.

다시 만들어갈 거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가

‘그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인생 아닐까?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