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순간에,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순간에도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
-김경일 교수님: 인간관계의 심리학 강연에서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상호가 병원에 입원했대야,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근육이 파열돼서 근육이 녹아 혈관으로 들어간대~! 입원해서 일주일간 링거도 맞아야 하나 봐~
덥다고 선풍기 들고 아빠랑 병원 갔다 왔어~“
이 불효자식은 아파서 입원을 해서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더위를 잘 타서 입원실이 덥다고 엄마에게 선풍기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엄마아빠는 어릴 적부터 황소 같은 고집을 가지고 있는 동생을 독립적이고 주관이 뚜렷하다고 오히려 칭찬을 해주었고 사춘기 시절 토라지고 말수가 없이 컴컴한 방안에만 있는 동생을 양지로 꺼내지 않고 본인이 나오고 싶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습니다.
밥 먹으라고 소리쳐도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방 안에서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다나와 국이 다 식으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동생 먹을 국을 데워주고 따뜻한 밥을 먹였습니다.
본인이 필요할 때만 방문을 열고 나와 덥다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면, 엄마는 저에게 전기세 많이 나온다며 냉장고 문도 자주 열지 말라고 하면서도 동생방에는 삼성 에어컨을 설치해 주었습니다.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여 아파트 외벽에 구멍을 뚫고 실외기를 둔 작은방은 우리 아파트 동에서 동생 방이 유일했습니다.
동생은 사춘기 기간 동안 살을 빼겠다며 절식을 하는 바람에 샤이니 스키니진 핏은 얻었으나 키를 얻지 못했고, 외모를 한창 가꿀 나이에 여드름이 많이 나자 피부과 레이저 시술을 과도하게 받다 부작용을 얻어 홍조피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집 앞 가까운 학교를 두고 산밑의 남녀 공학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침 6시 반마다 등교를 했고 체력이 떨어졌는지 돌도 씹어먹어도 튼튼할 10대에 결핵까지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강인하고 뚝심 있는 동생이 아픈 손가락처럼 자꾸 뚝딱거리니 엄마아빠는 이상하게 챙겨주고 싶고 묵묵하게 챙겨줘도 모자란 듯싶었던 모양입니다.
동생이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자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상호가 횡문근융해증에 걸렸다가 다 나았단다! 원래 내일까지 입원이었는데 빨리 회복해서 오늘 나간단다! 오줌이 콜라색 오줌이 나왔된다야~!
신장 수치가 보통 수치의 몇만 배가 높게 나와가지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댄다야”
전화를 듣고 있던 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습니다.
“아파서 연락한 게 아니라 선풍기가 필요해서 연락했다며, 불효자식이야~~”
그러자 아빠는 반문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무슨 불효자식이여~~~!
병을 이겨내고 빨리 나았는디~! ”
평소에 연락도 없고 얼굴도 안 비추고 살아도,
병을 하루라도 빨리 이겨낸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불효자식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는 이 순간을 동생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DNA 어딘가, 우리의 기억이 닫지 않는 편린 한 조각 한 조각에
부모가 안아준 그 흔적들이 새겨져 있어
우리도 모르게 사무칠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생은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술을 먹고 알콜이 몸에 맞지 않는 걸 알았습니다.
술을 진탕 마셔 제대로 몸을 못 가누는 상태로 집에 터벅터벅 돌아왔습니다. 술로 절여진 동생은 마치 악마의 기운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처럼 어두컴컴했고, 얼굴은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습니다.
한껏 멋을 부리느라 빳빳하게 다려진 예쁜 자켓을 입고 있었고, 앞코가 오뚝한 검정 로퍼를 벗으며 들어와 밤 12시에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했습니다.
잠결에 깨어난 엄마는 동생의 등을 계속 두드려주었고, 저는 못생긴 용 한 마리가 집으로 침입해서 용트름을 하는 것 같다며 옆에서 놀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겪어본 숙취의 고통으로 동생의 DNA에 엄마 아빠가 새겨놓은 각인이 봉인해제 되었습니다.
툴툴거리고 대화도 안 하려고 했던 동생은 화장실에서 엄마를 안으며 울었습니다.
“엄마.. 미안해 “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던지,
80kg의 거구가 엄마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미안하다며 눈물 콧물 흘리며 그렇게 오랫동안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아이를 안아주는 나라입니다.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나라입니다.
서양은 아이가 설수만 있으면 아이를 안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꽤 큰 아이들도 전부 다 안고 사진을 찍고 있죠.
한국 사람들은 서먹서먹했던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자꾸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심리적 애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에,
내 부모가 나를 안았기 때문입니다.
본능이 기억하고 있고,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안아주셔야 해요.
내 부모님 안아주셔야 해요. “
김경일 교수님: 인간관계의 심리학 강연에서
엄마는 10년 전 술 취한 동생이 안아준 그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한껏 안아주었던 그 시절 아이가 내면에 숨어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따뜻하게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