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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연주 Mar 13. 2022

생애 처음으로, 값 비싼 러닝화를 사다

나를 더 사랑해야 해, 심장은 멈추지 않아, 고로 뛰자!



  아홉수, 무서운 말이다.

9살, 19살, 29살이 되면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시련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니까.


  나는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스물아홉의 지독한 “아홉수”를 겪고 나서, 조상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는 것인가 했다.

온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워지는 홍역을 앓는 것처럼, 스물아홉 살의 시간은 아팠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듯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믿었던 모든 것이 배척되어 돌아온 그 현실에, 나는 하염없이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은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끝없이 옥죄어 오고 있었고, 시간과 공간이 그대로 멈춰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고, 목도 마르지 않았다.


  모든 시계가 다 멈춰버린 그 끝에서 거울을 바라보니, 한껏 수척해진 볼품없는 나만 남아있었다.

나의 절친한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흐느껴 울었다.

내가 알던 너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네가 사라진 것만 같아.


  친구의 사랑이 담긴 진심 어린 말을 듣자 하니, 결국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아직 타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나라는 사람인데,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를 시멘트 바닥에 던져두고 방치해두고만 있었다.

생의 시작점은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말이다.


30대를 맞이하면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면의 단단함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했다.  나이키에서 러닝화를 구매했고,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운동화 끈을 두 번 감아 질끈 맸다. 운동화를 신고 폴짝폴짝 점프를 해보니 몸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었다.

러닝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집 앞 하천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그 당시 가장 비싼 러닝화를 신고 뛰는데, 그 착용감은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고, 정말이지, 다시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결국 지금껏, 나를 위해 이런 작은 선물조차 해주지 않고 살았던 모양이었다.


30초 정도 뛰었을까?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고, 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뛰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매일 나가서 뛰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신나는 노래를 틀고, 이 노래 1절이 끝날 때까지 뛰어보자, 그 다음 날은 2절이 끝날 때까지 뛰어보자, 그렇게 30초, 1분의 작은 목표를 설정해놓고 무작정 뛰었다.

하지만, 뛰는 방법을 몰라, 러닝 앱을 깔아보았고, 귓가에 맴도는 시원시원한 당찬 목소리의 성우가, 나의 고독하고 힘든 러닝을 순수하게 응원해주었다.

안녕하세요~! 달리기가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임을 알고 계신가요?
유산소 운동이란 무엇일까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과 근육은 튼튼해지고, 몸안의 노폐물들이 배출됩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첫 10분간은, 글리코겐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다 30분쯤 되면
지방의 사용량이 늘어납니다.
러닝을 하며 멋진 운동복을 입고 뛰는 나 자신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일주일, 1달 그리고 2달이 되다 보니 30초도 뛰지 못했던 내가 15분째 연속해서 달리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못 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그래도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고로 뛰자! 라며 나 자신을 토닥거렸다.

 “나를 더 사랑해야 해, 나를 더 사랑해야 해”라며 무서울 정도로 주문을 걸며 뛰었다.


나이키 NRC앱의 러닝 기록들


그만 침대에서 나와라

  러닝을 시작하면서, 건강한 사고와 마인드를 가진 목표 지향적 사람으로 변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뛰는 행동 그 작은 움직임 덕분에 진흙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어가고 있던 내가 양지로 나와, 당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전까지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케되고, 작은 투자만으로도 변해갈 수 있는 모습들이 체감이 되었다.


  바람을 가르며 뛸 때, 심장이 너무나도 빨리 뛰어서, 옆사람에게까지 들릴 것 같은 그 순간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저 다리까지만 뛰어보자, 저 앞 나무까지만 뛰어보자’라며 스스로의 한계를 계속 넘어가 보면, 방금까지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뛰고 있는 셈이었다.


  러닝으로 피가 한껏 돌아 뜨거워진 얼굴을 부여잡으며 편의점으로 뛰어가 파란 파워에이드를 원샷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누구보다도 힘든 그대에게,
감히 말하자면, 가장 좋은 러닝화 하나를 
 자신에게 선물하자.
그리고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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