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지컬육아하는엄마 Oct 23. 2021

외고에서 작곡과로

부모의 역할

30 n 년간 인생을 돌아보면 인생의 큰 변곡점이 총 다섯 번 있었다. 


내 인생의 변곡점들을 정하는 데 있어 매번 큰 역할을 해주셨던 건 '어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시는 어머니 덕분에 언니, 오빠들과 함께 영어공부를 하는 게 즐거웠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외고에 대한 정보가 담긴 팜플렛을 들고 와 외고 진학에 대한 제안을 했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17세에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부모님 품을 떠나서 슬프다기보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들을 배울 생각에 들뜬 마음이 컸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고등학교 생활은 즐겁기도 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티는 게 힘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어릴 때부터 즐겨치던 피아노가 항상 생각이 났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한테 

'아,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은데 여기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답답해요' 

라고 했던 이야기를 어머니가 기억하시고


'엄마가 정보를 좀 찾아봤는데, 그렇게 피아노가 치고 싶고 음악이 하고 싶으면 작곡을 한번 해볼래?'


이때가 무려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해 보였다. 외고를 다니는 고3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보라는 집은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 교수님을 찾아뵙고 테스트들을 거친 후, 고 3 4월부터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낮 동안에는 열심히 수능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틈틈이 작곡 숙제를 하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작곡과 청음 (피아노 음을 듣고 악보에 그리는 것),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고3 1년 동안 엄마는 매주 토요일마다 타 지역으로 나를 데리러 오셔서, 작곡 레슨 3시간, 피아노 레슨 1시간 꼬박 4시간을 밖에서 대기하고 레슨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셨다.


고3 1년 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 한끝에 작곡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합격이라는 단어를 보고 엄마와 함께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기뻐서 흘린 눈물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간절했었다.



외고에서 작곡과로 진학을 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의아해한다. 내가 봐도 정말 특이한 케이스 같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춰 내 아이의 진로를 정하기보다 아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알아채고, 그에 맞는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로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곡으로 진로를 선택한 제 인생은 감동이 넘쳤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진로의 방향을 잘 제시하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을 지지할 수 있을까? 


아이는 내가 아니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계속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것만 해도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뚜렷한 꿈을 가진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욕심에 아이가 상처 받거나 지치질 않기를, 오늘도 다짐 또 다짐한다.

이전 01화 음악감독 엄마의 뮤지컬 육아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