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정환 Sep 11. 2023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 전쟁(1337~1453)이 발발하자 양국 사이 가장 가까운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까지 조직하여 치열하게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대신 처형하겠다.”


  이때 시민을 대표해서 고위 관료와 부유층 인사 6명이 자원했다. 이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자루 옷을 입고 영국 왕 앞으로 나갔다. 지금 칼레에 있는 로댕의 조각상과 같은 모습이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임신 중이던 왕비가 처형을 만류했다.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이유다. 왕은 고심 끝에 시민 대표들을 풀어주었고, 6명은 칼레의 영웅이 되었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 생각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나무는 이파리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올린 물이 햇볕을 받으면 영양분으로 전환한다. 광합성 작용이다. 나뭇잎이 푸른 이유는 엽록체 때문인데, 이 엽록체에서 광합성이 일어난다. 광합성은 강한 빛을 받을수록 양이 증가한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빛의 세기는 약해지고 나뭇잎은 더는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한다. 나무 처지에서 보면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도리어 영양분을 축내니 나뭇잎은 필요 없는 존재다. 나무는 생존을 위해 나뭇잎을 버린다.      


  월 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한 범려야 말로 아주 잘 버린 사람이다. 범려는 생의 절정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낌없이 버렸다. 범려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박학다식하고 재능이 많아 고을 현령이던 문종과 교유했다. 당시 초나라는 귀족이 아니면 출세하기가 힘들었다. 범려는 문종과 함께 월나라로 망명하여 월왕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대부라는 직책에 올랐다. 월왕이 오나라와 전투에서 부상으로 죽자 아들 구천이 그 뒤를 이었고, 범려와 문종은 구천의 책사가 되었다.


  월왕 구천은 아버지 유언대로 복수하려고 오나라를 침공했으나 패하고 외려 오나라의 볼모가 되는 조건으로 화해를 요청하였다. 이때 범려는 구천을 따라 관리 300명을 이끌고 오나라로 들어갔다. 구천은 오왕 부차의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으며 굴욕적인 오나라 생활을 시작한다. 힘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일국의 왕이다. 구천이 이런 굴욕적인 삶을 참고 견디는 이유는 범려를 믿었기 때문이다. 


  마침 부차가 병에 걸렸다. 그때 범려가 구천에게 제안했다. 

  “오왕은 이번 병으로 분명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곧 좋아질 것이니 대왕께서는 유의하소서.”

  “내가 이렇게 궁한 지경에 빠지고도 죽지 않음은 공의 계책을 믿기 때문이오. 숨기지 말고 모두 말해주구려. 되든 안 되든 공의 뜻대로 다 하겠소.”

  “신이 오왕을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입으로는 걸핏하면 성탕(상나라의 창시자)의 의를 뇌까리나 행동은 따라가지 못하는 자입니다. 대왕께서는 가서 병을 살펴보겠다고 청하십시오. 허락이 떨어지면 오왕의 똥을 얻어다가 맛을 보고 안색을 살핀 후 죽지 않는다며 축하하고 병이 나을 날짜를 찍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 날짜를 맞춰 신뢰를 얻으면 걱정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백비를 통해 알현할 기회를 얻었다. 구천은 대소변을 찍어 맛본 후 기뻐하며 축하를 올렸다. 

  “천한 죄인 구천이 대왕께 축하드립니다. 대왕의 병은 사일(巳日)에 좋아져서 3월 임신일이면 완쾌됩니다.”

  부차는 의아해서 물었다.

  “어찌 그대가 그것을 아는가?”

  “소신이 일찍이 스승을 모신 적이 있사온데, 변 맛보는 법을 배웠사옵니다. 대변은 곡식 맛을 따르니, 변 맛이 곡식이 나는 시절의 맛을 따르면 좋고 거스르면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의 변을 맛보니 맛이 쓰고 십니다. 이 맛은 응당 봄과 여름의 기에 순응합니다. 그러니 제가 안 것입니다.”
   부차는 감탄했다.

  “그대는 정말 어진 사람이오.”


  과연 병이 나았다. 부차는 이로 인해 구천을 더는 의심하지 않고 돌려보낼 마음을 품게 된다. 약 3년 만에 범려는 구천과 함께 귀국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치욕을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마음이 나태해질까 염려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고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다. 앉으나 서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마다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말했다. “너는 지난날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구천은 직접 밭을 갈아 농사짓고, 부인은 직접 길쌈질을 했으며, 음식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고 옷을 화려하게 입지 않으며, 몸을 낮추고 어진 사람에게 겸손하고 손님을 후하게 접대하며, 가난한 사람을 돕고 죽은 자를 애도하며 백성들과 더불어 수고로움을 함께 했다. 구천과 범려는 아주 짧은 시간에 월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신하들이 좋은 계책을 올리면 그대로 시행하면서 의심하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월나라가 첫 번째 시행한 정책은 인구 증가책이었다. 당시 월나라는 너비가 100 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이 소택지라 수도 근처에서는 정전제를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방은 소택지에 벼를 심고, 사철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또 풀이 무성하니 개나 돼지 등의 가축을 키우기 좋았다. 월은 땅이 작은 단점을 인구로 보충하여 국력을 키우는 정책을 썼다.


  마침내 오나라가 빈틈을 보이자 월나라는 가차 없이 공격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거꾸로 월나라가 오나라 수도 고소성을 포위해 부차에게 항복을 받았다. 지난날의 치욕을 씻자, 구천은 부차를 귀양 보내어 그곳에서 여생을 마치게 하려 했다. 부차는 구천의 호의를 뿌리치고 스스로 목을 베고 죽었다.



  오나라 멸망 후에 범려는 구천이 어려운 일은 함께했어도 공을 나누지 못하는 성격임을 알고 오래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월나라를 떠난다. 범려는 제나라에서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 “날던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감추고, 약은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는 법이오. 월왕은 목은 길고 입은 뾰족하여 근심과 어려움은 함께 해도 즐거움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이오.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소?”하고 재촉했다.


  문종이 편지를 보고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문종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중상하자 구천은 문종에게 바로 검을 내리며 자살을 종용했다. 

  “그대가 과인에게 오나라를 정벌할 일곱 개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과인은 그중 세 가지만 사용하여 오나라를 물리쳤다. 나머지 넷은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선왕을 따라가서 그것을 시험하도록 하라.” 

  문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려는 스스로 이름을 치이자피(말가죽으로 만든 술 부대)로 바꾸고 사업에 종사하여 재물을 크게 모았다. 모은 재산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후 도 땅으로 가서 호를 도주공이라 하고 장사를 크게 하였다. 수만금을 모아 대부호가 된 범려는 자신이 번 재물을 사람들에게 세 번이나 흔쾌히 베풀었다.      


  범려처럼 하기가 쉽지 않다. 범려가 대단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목표를 이루고 나서 열매를 따 먹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킹메이커라고 하는 자들이 대통령을 만들고 나서 권력에 빌붙어 전리품을 챙기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꿈을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고 드디어 고지에 올랐는데 그때 욕심을 버리는 용기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범려는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기꺼이 떠났다. 


  둘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다. 가진 자가 먼저 베풀고 먼저 행동하고 먼저 희생하는 정신을 범려는 실천했다. 월나라가 전쟁에서 패하자 몸소 구천과 함께 오나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굴욕을 당했다. 큰 재물을 모은 후에는 그것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흔쾌히.     


이전 04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