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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Sep 25. 2023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들에게

자리가 높이 올라갈수록 마음은 아래로 향해야

                   김홍도 그림에 <안릉신영도>가 있다. 황해도 안릉에 신임 현감이 부임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행렬의 내용을 살펴보면 각종 번기를 든 기수 48명이 앞장을 서고 있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이 열을 지어 가는데 악대, 군인, 아전, 기생까지 보인다. 그림의 길이가 6미터가 넘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요란스럽게 행차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는 고을 수령이 처음 부임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일러준다. <안릉신영도>와는 반대 모습이다.      


  부임하는 길에서는 오직 장엄하고 온화하며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 하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 행차는 반드시 일찍 출발하고 저녁에 일찍 쉬도록 할 것이다. 동이 트기 전에 말에 오르고, 해가 미처 지지 않았을 때 말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풍속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여 하인들이 벼슬아치를 옹위하고 잡된 소리를 어지럽게 내서 백성이 바라보기에 엄숙하고 장중한 기상이 없다. 무릇 근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소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수령 된 자는 비록 말 위에 앉아 가더라도 지혜를 쓰고 정신을 가다듬어 백성에게 편리한 정사를 펼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결같이 들뜨기만 하면 어떻게 침착하고 주밀한 생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최승호 시인의 시 <꿩 발자국>이 재미있다. 꿩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눈밭을 걸어 다니지는 않았을 것’,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라는 시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足跡)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

  꿩조차 제 흔적을 넘어서 날아간다. 

  저자의 죽음이란 흔적들로부터의 날아오름이다. 

                                         -<꿩 발자국>, 최승호          


   안영은 제나라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의 뒤를 이어 상대부 지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걸출한 재상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재상으로 지내며 명성을 얻은 이유는 검소함과 겸손함 때문이다. 


  그는 30년을 오직 여우 가죽옷 한 벌만 입었고, 한 끼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으며, 아내가 비단옷을 입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충성은 다하였으나 군왕의 명령이 올바를 때만 시행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에 힘썼다. 안영과 마부에 얽힌 일화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안영에게 마부가 있었는데, 안영이 외출할 때 사람들이 안영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자 마치 자신이 안영이라도 된 양 매우 흐뭇해하고 의기양양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마부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안영은 키가 6척밖에 안 되고 나라의 재상 자리에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마부로 일하고도 우쭐대고 흡족해하다니, 당신과는 창피하여 같이 살지 못하겠으니 헤어집시다.”

  이 말을 듣고 마부는 절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변한 마부의 모습을 보고 이유를 알게 된 후 안영은 마부를 대부로 삼았다.      


자리가 높이 올라갈수록 마음은 아래로 향한 사람  

  한나라 때 만석군 석분의 가문은 관리로서 모범을 보인 가문이었다. 석분 자신 뿐 아니라 자식들까지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하지 않았다. 


  만석군(萬石君)의 이름은 석분(石奮)이다. 한 고조가 동쪽으로 항우를 공격하기 위해서 하내군을 지나갈 때 15살 석분은 말단 관리로서 고조를 정성껏 섬겼다. 한번은 고조가 석분과 대화를 하는데, 공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좋아하여 물었다. 


  “자네 집안에는 누가 사는가?” 

  석분이 대답했다. 

  “소신의 집안에는 단지 모친이 계시는데, 불행하게도 실명하셨습니다. 집안이 매우 가난합니다. 누이가 있는데 거문고에 능합니다.” 

  고조가 말했다. “너는 나를 따르겠느냐?” 

  “있는 힘을 다하여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이에 고조는 석분을 대신들의 문서를 전달하고 알현을 주선하는 일을 관장하는 시종관에 임명하였다. 석분의 관직은 효문제에 이르러 공로가 쌓여서 태중 대부로 승진하였다. 비록 학문을 익히지 못했지만 공손하고 신중한 태도는 남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문제 때는 태자 태부가 되었다. 경제가 즉위한 후 석분의 관직은 구경의 반열에 올랐는데, 매우 공손하고 신중하게 경제를 섬겼기 때문에 도리어 그를 꺼리어 제후의 승상으로 전근 보냈다.


  석분의 장남은 석건이고, 그 밑으로 석갑, 석을, 석경이 있었는데, 모두 행실이 착하고 효성스러우며 삼가 신중하여 모두 관직이 2천 석 지위에 올랐다. 이에 경제는 말했다. 


  “석군과 네 아들은 모두 2천 석의 지위에 올랐으니, 신하로서 존귀와 총애가 가문에 다 모였구나.” 

  그리고 바로 석분을 ‘만석군(萬石君)’으로 호칭했다. 경제 말년에 만석군은 상대부의 봉록을 받았지만 늙음을 구실로 관직에서 물러 나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나라의 중요한 명절에는 대신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궁궐 문을 지날 때 만석군은 반드시 수레에서 내려 서둘러 걸어 들어갔는데, 대로에서 황제 어가를 보게 되면 반드시 예를 갖추어 경의를 표했다. 만석군 자손이 비록 하급 관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만석군에게 인사를 드릴 때면 반드시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예복을 입고 접견했으며,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자손에게 과실이 있으면 직접 꾸짖지 않고 한쪽 방에 조용히 앉아 밥상을 대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렇게 한 후에 여러 아들이 과실을 저지른 자를 서로 꾸짖고, 다시 가족 중에 연장자가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어 사죄하고(고대 중국에서 죄인이 사죄할 때는 한쪽 어깨를 벗고 사죄함) 잘못을 고치면 비로소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이미 성년이 된 자손이 만석군 주변에 있을 때는 비록 편히 쉬고 있을지라도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단정하면서도 화순한 태도를 보였다. 하인들에게는 온화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대하면서도 특별히 신중히 행동했다.

  황제가 때때로 음식을 집에 하사하면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며 몸을 굽혀서 먹었는데, 공손한 태도가 마치 황제 면전에 있는 것과 같았다. 장례식에서 상제 노릇을 할 때는 매우 슬프게 애도했다. 자손들도 만석군의 가르침을 따라 역시 같이했다. 만석군 일가는 효도하고 근신함으로 각 군현과 제후국에 명성을 떨쳤다. 제, 노나라의 여러 유학자도 만석군의 질박한 행실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석건이 늙어서 백발이 되었지만 만석군은 여전히 탈이 없이 잘 지냈다. 석건은 낭중령이 되었으나 닷새마다 하루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목욕하고 부친의 안부를 살폈다. 부친이 쉬고 있는 침실 곁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몰래 시종에게 물어 부친의 속옷과 요강을 꺼내어 몸소 깨끗하게 씻고 닦은 뒤에 다시 시종에 건네주면서 감히 만석군에게 알리지 못하게 했다.


  석건은 낭중령이 되어서 황제에게 간언을 올릴 일이 있으면 남들을 물리치고 바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데 매우 간절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면 말을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 때문에 황제가 더욱 존경하여 예우해 주었다. 만석군은 능리로 거처를 옮겼다. 하루는 내사로 재직했던 석경이 술에 취한 후 돌아왔는데, 마을 외문을 들어와서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았다. 만석군은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식사를 하지 않았다.


  석경은 두려워서 웃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채 죄를 청했으나, 만석군은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온 식구와 맏형인 석건이 대신 옷을 벗고 어깨를 드러내어 죄를 청하니, 그제야 비로소 만석군이 꾸짖어 이렇게 말했다.


  “내사는 존귀한 사람이니 마을로 들어오면 마을 안의 어른과 노인들도 모두 황급하게 달아나거나 회피한다. 그런데 내사가 수레 안에 앉아서 태연자약한 것이 참으로 마땅한 것인가!” 


  이후에 석경과 석씨 형제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올 때면 모두 수레에서 내려 총총걸음으로 귀가했다.     


  예나 지금이나 벼슬을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자기를 무시하는 자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리하여 부임 행렬부터 자신을 들어내 보이려고 한다. 안릉신영도가 잘 보여준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는 안영 같은 사람도 있고 만석군 부자 같은 관리도 있었다. 또 범려 같은 사람도 있었다. 당신은 위에서 범려와 문종에 관한 글을 읽었다. 구천왕이 권력을 회복하고 춘추시대 패자로 올라서자 범려는 홀연히 떠났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 열매를 양보하고 미련 없이 떠난 것이다. 문종은 남아 있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사는 오형을 당하고 허리가 잘려 죽었다. 이런 일은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된다. 욕심이 낳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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