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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환 Oct 04. 2023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눈

관찰력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

                사람은 지루하면 싫증을 낸다. 특이하고 독특하고 새로워야 흥미를 느낀다. 배우나 가수가 10년 넘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예가 드문 이유다. 대중은 새로운 얼굴을 찾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오규원 시인은 [현대시작법]에서 지루한 일상은 오히려 독이라 시적 진술은 묘사 못지않게 우리 정서 밑바닥에 자리 잡은 상투적인 의미 체계에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공광규 시인은 그것을 ‘낯설게 하기’라고 했다. 


  그러려면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거나,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관찰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냥 지나쳐 버릴만한 것도 글의 소재로 사용한다. 관찰력 덕분이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Robert Root-Bernstein)과 미셸 루트번스타인(Michele Root-Bernstein) 부부는 공동 저작인 [생각의 탄생]에서 글쓰기에는 예리한 관찰 기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시인 에드워드 E. 커밍스(Edward E.Cummings)는 자신을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작가 존 도스 파소스(John Dos Passos)의 기억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같이 산책을 할 때마다 커밍스가 종잇조각에 뭔가를 적고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소설가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은 사람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작가의 필수적인 자세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람의 외관뿐만 아니라 대화, 행동까지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얘기라도 몇 시간 동안 들어둘 수 있어야 무심결에 새어 나오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해낼 수 있다.” 고 말했다.


  작가들에게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진짜처럼 보이는’ 플롯의 전개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과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야만 한다. 독자들의 감각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 감각 자체를 알아야 한다. 작가는 경험을 향유할 뿐 아니라 관찰하고 분석한다.     


  관찰 대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소리, 냄새, 맛, 촉각까지 관찰해야 한다. 다음은 만화가 허영만 이야기다.      


  '이끼'를 그린 윤태호(44)는 1988년부터 2년간 허영만 문하생이었다. 허영만이 연재 원고 1회분(25~30쪽)을 그리면 참고 서적이 20~30권 쌓였다. 취재 갔다 돌아와 화실 여직원에게 비닐 봉투를 건네면 24~36컷 필름 통이 도토리처럼 쏟아졌다. 윤태호가 속으로 '우리 선생님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했다. "두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나도 유명해지려면 저렇게 고생해야 하나?' '근데 만화는 정말 재밌네.' 선생님보다 쉽게 그리는 사람 많았어요. 그분들 다 은퇴했어요."


  그는 취재와 메모로 계속 새로운 '총알'을 만든다. '식객' 연재 10년 동안 허영만은 스토리 작가 이호준(42)과 매달 두 차례 전국을 돌았다. 도축장이고 모내기하는 데고 안 가본 데가 없다. 다들 "그이 같은 메모광을 못 봤다." 고 했다. "밥 먹다가" 메모하고(만화가 박문윤), "자다 일어나" 메모하고(김영사 대표 박은주), "배를 몰다" 메모했다(이정식). <조선일보>     


  좋은 글은 쉼 없는 관찰과 메모 속에서 나온다. 글을 잘 쓰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부지런히 메모한다. 이것만큼 좋은 글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국 시인은 남들이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무밭에서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남들은 하지 않는 질문을 하였다. 남들은 도저히 하지 않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이상국 시인의 시 <무밭에서>를 감상해보자.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 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 가다가

  어느 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가다

  군데군데 솎여 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이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

                                       -<무밭에서>, 이상국          


 ‘무는 제 몸이 집이다/안방이고 변소다’같은 생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시인이니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농부의 손에 뽑혀 나갈 때/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같은 질문도 시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무를 솎아 낸 자리에 손을 넣고 싶은 충동도 시인이니까 느끼는 감정이다. 이렇게 남들이 불가능한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놓음으로써 시를 읽는 독자들은 낯섦을 느낀다.          



관찰력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

초나라 장왕은 약소국 진(陳)나라를 정벌할 생각으로 사람을 보내어 진나라 상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정탐꾼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진나라는 정벌하기 어렵습니다.”

  장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정탐꾼이 말했다.

  “진나라는 성벽이 높고 해자를 깊이 파서 방어 준비를 잘해 놓았습니다. 군량미도 충분히 쌓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장왕이 말했다.


  “진나라를 정벌할 좋은 기회다.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식량을 많이 쌓아 놓았다면 이는 백성들 세금을 무겁게 했다는 뜻이니 백성이 임금을 원망할 것이다. 성벽을 높이 쌓고 구덩이를 깊이 팠다면 백성들은 거기에 부역으로 동원되어 탈진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고는 진나라를 공격하여 손쉽게 정벌하였다.      


  이처럼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능력이 중요하다. 비슷한 사례가 한(漢)나라 때도 있었다. 유경은 제나라 사람으로 한 고조 유방을 도운 사람이다. 


  한나라 7년, 한신이 반란을 일으켰다. 고조는 몸소 군대를 이끌고 진양에 이르렀는데, 한신이 흉노와 내통하여 함께 한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말을 듣자 크게 노하여 흉노에 사신을 보냈다. 흉노는 힘이 센 장정들과 살이 찐 소와 말들을 숨기고 노약자와 여윈 가축만을 눈에 띄게 해 두었다. 그 때문에 사신들이 열 명이나 갔는데도 돌아와서는 모두가 흉노는 공격할만하다고 보고하였다. 고조는 이번에는 다시 유경을 사신으로 보냈다. 그런데 유경은 돌아와 반대로 보고하였다


  “두 나라가 교전하고 있을 때는 저마다 자기편이 이로운 점을 자랑하려 듭니다. 그런데 지금 신이 그곳에 도착하자 여위고 지쳐 보이는 노약자들만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약점을 보이고, 복병으로써 승리를 취하려는 계략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지금 흉노는 치면 안 됩니다.” 

  그 무렵 한나라 군대 20만 명이 이미 구주산 너머로 진격하고 있었다. 고조는 화를 내며 유경을 꾸짖었다. 

 “이 제나라 포로 녀석아! 입과 혀를 놀려 벼슬을 얻더니 이제 망언으로 우리 군대의 행진을 막을 셈이냐?”

  그러고는 유경에게 칼을 씌워 옥에다 가둔 다음 진군하여 평성에 도착하였다. 흉노는 과연 복병을 내어 백등산에서 고조를 포위하였다가 7일 만에 풀어 주어 겨우 벗어났다. 고조는 유경을 석방하며 말했다.

  “나는 그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평성에서 욕을 당하게 되었소. 앞서 흉노를 치자고 말한 열 명의 목을 모조리 베었소.”     


  다산 정약용이 환갑을 맞이하여 직접 쓴 [자찬묘지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무오년 겨울에 나쁜 병이 갑작스럽게 서쪽길을 따라 퍼졌다. 내가 먼저 병을 앓아누웠다. 고을의 늙은이가 걸렸다 하면 반드시 죽었다. 며칠이 못 가서 곡소리가 사방 마을에 진동했다. 내가 백성들에게 서로 치료해주도록 권했다. 곡식으로 다급함을 구휼해 주었다. 또 임자 없는 시신을 묻어주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나는 아직 이불을 둘러쓰고 있었다. 물품을 조달하는 아전을 급히 불렀다. 황해도 배천의 강서사(江西寺)로 가서 급히 맨땅에 까는 화문석을 사 오게 했다. 모두 놀라 영문도 모른 채 “칙사가 옵니까?” 하고 물었다. 내가 “아니다. 그래도 빨리 가는 게 좋겠다.” 하고 말했다. 


  아전이 가서 이것을 사서 평산부에 도착하자, 의주에서 파발이 나는 듯이 달려와서 “황제가 붕어하여 칙사가 왔다.” 고 했다. 아전이 돌아오자 온 부중이 크게 놀랐다. 내가 말했다. “이상할 필요가 없다. 병이 서쪽에서 왔는데 노인이 모두 죽었다. 그래서 알았다.”      


   다산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나가 있던 때 일이다. 돌림병이 서쪽 길을 따라 갑작스레 퍼졌다. 중국에서 의주를 거쳐 평안도 지역을 훑고 내려왔다. 늙은이는 걸리기만 하면 죽었다. 다산도 그 병을 앓아 자리에 누워 있으면서, 갑자기 아전을 불러 칙사가 올 때나 쓰는, 맨땅에 까는 화문석을 사오게 했다. 과연 화문석과 함께 청나라 건륭제의 사망 소식이 도착했다. 온 부중이 술렁거렸다. 부사가 족집게 도사처럼 황제의 죽음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다산의 대답은 간단하다. 중국 쪽에서 들어온 돌림병으로 노인들이 다 죽었다. 황제는 나이 80이 넘은 고령이다. 이 병이 중국에 돌았다면 황제도 무사할 리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것을 짐작했다. 말 그대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능력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은 상황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신중하게 다시 살펴보라는 경고다. 관찰력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때 가장 큰 장애물은 편견이다. 특정한 기술이나 이론에 숙달한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고 올바로 판단하고 결정하려면 현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남들도 다 보는 것에서 특별함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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