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매함
뇌신경학자들은 우리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 체계를 2종류로 나눈다. 직관 체계와 숙고 체계다. 두 체계는 우리 뇌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 과정이다. 두 체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직관 체계는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동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무의식적이다. 충동적이고 감정에 따른다. 일상적 습관을 수행하고 행동에 지침을 준다. 숙고 체계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이다. 직관 체계보다 느리고, 의식적이다. 자기 통제를 담당하며 자동적인 과정과 감성적인 충동을 억제한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작동한다.
직관 체계는 생존을 위해 매우 유용하다. 등산하다 뱀을 만나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뱀을 앞에 놓고 토론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받지도 않는다. 도망가든지 뱀을 잡던지 순간적인 판단에 따른다. 이런 재빠른 판단과 동작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숙고 체계를 사용하면 실수와 오류를 줄일 텐데 왜 직관 체계를 사용할까? 인간이 반사적이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이유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험과 학습으로 알 만큼 알아 뻔한데 다시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토론하는 숙고 체계를 사용한다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그동안 경험으로 익힌 지식이 직관으로 결정하도록 만든다.
또 다른 이유는 에너지 사용과 관련 있다. 뇌 무게는 보통 1.4킬로그램(kg)이다. 그런데 뇌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20 퍼센트 정도를 사용한다. 만약 모든 결정에 숙고 체계를 사용한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 직관 체계를 사용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생존에 유리한 방법이다. 이런 이유로 신경림 시인의 <고장 난 사진기>처럼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범한다.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
현상해 보면 늘 바라는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 한다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은 환시였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내가 바라는 것만을 찍어주는 고장난 사진기였음을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
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고장난 사진기>, 신경림
고장 난 사진기처럼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도 고장이 나 있다. 사람들은 대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고장난 사진기처럼 바라는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 오류다.
중국 전국시대에 진(秦)나라가 위(魏)나라와 이웃한 조(趙)나라를 침공했다. 위나라 대부들은 조나라가 승리하면 조나라에 복종하면 되고, 조나라가 지면 그 틈을 타서 공격할 수 있다면서 걱정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바라는 것만 보는 확증편향의 오류다. 그러자 위나라 재상 공빈이 “그렇지 않다. 진나라는 효공 이래로 아직 싸워서 굴복한 적이 없고 지금 모두 훌륭한 장수들인데 어떻게 피폐해진 틈을 탄다는 말인가?”하면서 반박했다. 이에 대부들은 “설령 진나라가 조나라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무슨 손해가 있는가? 이웃 나라의 수치는 우리나라의 복이다.” 그러자 공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나라는 탐욕스럽고 난폭한 나라다. 조나라를 이기면 반드시 공격할 다른 나라를 찾을 것인데, 그때 우리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옛사람들 말 중에 ‘제비와 참새가 사람의 집에 둥지를 틀고 살 때, 새끼와 어미가 서로 먹이를 먹여주고 즐겁게 지내며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그 집 굴뚝에서 불길이 치솟아 마룻대와 추녀를 태우려고 하는데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재앙이 자신에게 미치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지금 그대들은 조나라가 패한 뒤에 환란이 자신에게 닥치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사람이 제비나 참새와 같아야 하겠는가!”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제비와 참새가 처마 밑에 둥지를 짓고 안락하게 지내면서 경계심을 잃어, 집에 불이 나는데도 위험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사안일에 빠져서 위험이 닥쳐와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위나라 대부들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제나라에 추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는 8척이 넘었고 건강한 체격에 용모가 준수했다. 당시 제나라에는 서공이라는 소문난 꽃미남이 살았다. 추기는 어느 날 관복과 의복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잘생겼소?”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최고죠.” 추기는 믿기지 않아 다시 첩에게 물었다. 첩은 “서공은 당신에게 비교가 안 되죠” 하고 대답했다. 때마침 손님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다가 추기가 손님에게 물었다. “나와 서공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겼소?” 손님은 “서공이 대감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하고 대답했다.
다음 날 서공이 우연히 추기 집을 방문했다. 추기는 서공을 자세히 보고는 자신이 서공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다시 봐도 역시 서공이 훨씬 나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게 듣기 좋은 말을 했을 테고, 첩은 나를 두려워해서 나한테 서공보다 잘생겼다고 했을 것이다. 손님은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으므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추기의 사진기는 다행히 고장 나지 않았다.
추기는 깨달은 바가 있어 임금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모가 서공보다 못하지만 다들 내가 낫다고 말한 사연을 이야기했다. 마찬가지로 궁에 있는 비빈과 측근들은 왕을 사랑하고 조정 신하들은 왕을 두려워하며, 사방 천지에 왕에게 바라는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많은 진실이 왜곡되지 않겠느냐고 아뢰었다.
당시 왕은 아첨꾼에 둘러싸여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추기는 왕에게 자신이 아첨꾼들에게 속은 일화를 얘기하고는“조정에서 왕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 중에는 왕을 편애하지 않는 자가 없고, 대신 중에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백성들은 왕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만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크게 깨달아 앞으로는 정사를 잘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추기에게 간언을 들은 왕은 다짐에 그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나의 잘못을 고하는 신하나 백성에게는 상등 상을 내릴 것이요, 상소로서 간하는 자는 중등 상을, 공중 장소에서 나의 잘못을 얘기하는 자에게는 하등 상을 주겠다.”
이 명령을 내리고서야 비로소 간언하는 신하들이 줄을 이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몇 개월이 지나자 뜸해지더니 일 년이 지난 후에는 신하들이 임금의 잘못을 찾지 못하자 간언을 멈추었다. 이웃 나라에서 소식을 듣고 제나라를 떠받들게 되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매함
초 회왕이 장의의 속임수에 넘어간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대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 하자 제나라와 초나라가 군사 동맹을 맺었다. 이에 장의는 초나라로 갔다. 초 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말을 듣고는 상등급 객사를 비워 놓고 몸소 그를 안내하면서 말했다.
“여기는 구석지고 누추한 나라입니다. 그대는 무엇으로 내게 가르침을 주려 하시오”
“대왕께서 진정 신의 말씀에 따라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맺은 맹약을 끊으신다면 신은 상(商)나라와 오(於)나라 땅 600리를 드리고 진나라 여자를 대왕의 아내로 맞이하게 할 것이며, 진나라와 초나라가 며느리를 맞이하고, 딸을 시집보내 영원히 형제의 나라가 되길 바라옵니다. 이는 북으로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고 서쪽으로 진나라에 유리한 것이니 계책으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초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신하들도 모두 축하를 올렸으나 진진만 반대 의견을 냈다. 초왕은 진진에게 화를 냈다.
“과인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도 600리 땅을 얻게 되어 신하들이 모두 축하를 올리는데 그대만 조의를 표하니 왜 그렇소?”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보기에 상나라와 오나라의 땅은 얻을 수 없고, 제나라와 진나라는 연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하면, 우환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초왕이 다시 따져 물었다.
“근거가 있소?”
“대저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시하는 까닭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맹약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진나라가 무엇 때문에 고립된 나라를 중시하여 상나라와 오나라의 땅 600리를 준단 말입니까?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왕을 배반할 것이니, 이로써 북으로 제나라와 절교하고 서쪽으로 진나라라는 우환거리가 생기게 되어 틀림없이 두 나라 군대가 함께 이를 것입니다. 대왕을 위한 최선의 계책이라면 제나라와 몰래 연합하고, 겉으로 절교하는 척하면서 사람을 장의에게 딸려 보내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에게 땅을 주면 그때 가서 제나라와 절교해도 늦지 않고, 우리에게 땅을 주지 않으면 은밀히 제나라와 연합하여 다시 계책을 짜면 됩니다.”
초왕은 진진의 말을 무시했다.
“그대는 입 다물고 아무 말 하지 말고 과인이 어떻게 땅을 얻는지 잘 보시오.”
그러고는 재상의 도장을 장의에게 주고, 후한 뇌물도 주었다. 마침내 관문을 닫고 초나라와 맹약을 끊은 다음, 장군 하나를 장의에게 딸려 보냈다.
장의는 진나라에 이르자 수레에 오르면서 일부러 줄을 놓쳐 수레에서 떨어진 것처럼 하여 석 달 동안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초왕이 그 소식을 듣고는 “장의가 과인이 제나라와 확실하게 절교하지 않았다고 여기는가?”하며 바로 용사를 송(宋)나라에 보내 송나라의 부절을 빌려 북으로 가서 제왕을 욕하게 했다. 제왕은 크게 화를 내며 부절을 꺾고는 진나라에 몸을 낮추었다.
진나라와 제나라가 관계를 회복하자 장의는 바로 조정에 들어와 초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신의 봉읍 6리를 대왕께 바치길 원합니다.”
“신이 왕께 명령받기로는 상나라와 오나라의 땅 600리였지, 6리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사신이 돌아와서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은 크게 화가 나서 병사를 징발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이에 진진이 수습책을 내놓았다.
“이 진진이 한 말씀 해도 되겠습니까? 진나라를 공격하기보다는 땅을 떼어 진나라에게 주고 군대를 합쳐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나라에게 우리 땅을 내주고 제나라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니, 왕의 나라는 보존할 수 있습니다.”
초왕은 이를 듣지 않고 기어이 군대를 징발하여 장군 굴개에게 진나라를 치게 했다. 진나라는 제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8만의 목을 베고 굴개를 죽이고는 드디어 단양과 한중의 땅을 취했다. 초나라가 다시 병사를 더 징발하여 진나라를 습격했다. 남전에 이르러 큰 전투가 벌어졌으나, 초나라가 대패했다. 이에 초나라는 두 개의 성을 떼어 진나라에 주고 화평했다.
당신은 어떠신지, 고장 난 사진기를 들고 다니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자. 다른 사람 조언에 귀를 막고 자기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다가 낭패 본 적은 없는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외면하여 크게 실수한 적은 없는지, 뒤돌아보자. 사진기를 고쳐 쓸 생각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