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시작
Bc 6000, 웅녀와 결합함으로 서자가 된 한웅, 마한을 만나다.
바이칼의 겨울은 특히나 추웠다. 그랬기에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긴 했으나 식량이 없었다. 그리고 어두웠다. 빛을 모아 불을 밝히는 수정도 이미 수명이 다했고 또한 아느에서 챙겨 온 물량도 동이 난 지 오래다. 거울을 이용한 빛 전달도 거리가 멀어짐에 밝기는 극감 했으며 무엇보다 쾌쾌한 가죽 냄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이에 농사가 아닌 목축을 선택해야 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더 이상 방어나 회피가 능사가 아니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한웅은 공격을 선택했다. 시키들을 처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시간은 사천 년이 지났고 또 게브를 활용할 수도 없었다. 말이 필요했고 공격을 방어할 갑옷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군사가 필요했다. 이에 한웅은 바이칼 북쪽의 수호족, 웅족을 선택했다.
아느에서는 일정한 교육을 수료한 아느 사람들,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곤 했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대한 새 게브를 타고 지구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자격을 갖춘 일정한 종족에게 지속적인 아느 지식 전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느의 북쪽이자 카스피해의 동쪽과 북쪽에 있던 부리족(부여족)이 대표적이었으며 아느의 동쪽에 있는 파르족, 그리고 삼묘족 역시 마찬가지다. 추후 삼묘족은 배달 한웅 때 중국 남서쪽에 자리 잡았으며 배달의 사람들이 중국 동쪽 연안을 따라 자주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후 여와와 복희 여행의 목적지가 삼묘족의 땅이기도 했다. 그리고 웅족 역시 아느로부터 지속적인 지식을 전수받고 이를 계승, 발전시켰던 종족이기도 했다.
웅족은 아느로부터 식물과 동물에 대한 교감 능력을 전수받은 종족이다. 식물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제를 만들고 활용했으며 특히 곰을 사육하는 데 있어 그 능력이 뛰어났다. 일반적으로 곰의 수명은 15~30년인데 웅족은 곰을 100살까지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곰을 100살까지 키우면 그 가죽이 매우 탄탄해졌다. 마치 철갑과도 같이 탄탄한 곰의 가죽을 입으면 웬만한 칼로는 뚫을 수 없을 정도였다. 추후 한웅은 먼저 하얀색 비단옷을 입은 후 곰 옷을 입고 시키들과의 전쟁을 치렀다.
바이칼은 매우 이상한 호수였다. 당시 바이칼에는 매우 많은 섬이 있었다. 어떤 섬은 온천도 있었고, 어떤 섬은 그냥 빙산이었다. 어떤 섬은 일 년 내내 봄이었고 어떤 섬은 보기에는 그냥 물인데 들어가면 순식간에 얼어붙는 곳도 있었다. 이후 소련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섬이 사라지고 수중생태계의 다양성도 무너져버렸다. 봄처럼 따뜻한 곳에서 식량을 키웠고 항상 추운 곳은 식량 저장소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웅족은 바이칼 개별 섬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었다. 개별 섬을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지식은 어려운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식물을 어떻게 재배하면 어떤 약초가 생긴다는 것을 웅족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웅족은 단순히 곰을 토템으로 삼고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세계에서 드물게 겨드랑이 냄새 유전자가 없는 종족이 한민족이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냄새 유전자는 1 타입, 2 타입이며, 둘 다 가지고 있거나 하나씩만 가지고 있거나 한다. 한데 한국인은 어느 유전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이게 웅족의 유전자이다. 웅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약초에 목욕시켰고, 일반적으로도 약물과 온천물을 혼합한 물에 목욕을 했었다. 웅족은 일반 야만족과 달랐다. 이미 린과 릴로 구성된 한린 세력과 결합할 만한 격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비록 한웅은 웅족과의 결합을 택했으나 당시에 이를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 이후로도 계속 나타났다. 순혈과 혼혈의 갈등이었다. 웅족을 받아들이자는 웅파와 순혈을 유지하자는 호랑이파로 구분되었다. 그로 인해 한웅을 반대하여 한린을 따르던 순혈들이 바이칼 호수의 섬으로 숨어들었고, 한웅을 따르던 순혈 조차도 이후 산속으로 숨어들어 ‘신선’이 되었다. 많은 한린 사람들은 신시에 그대로 남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와 갈라진 민족이 생겼다. 부랴트족은 바이칼에 남았던 한린의 후예로 결국 거기도 순혈과 혼혈이 섞였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한린 초기 발하슈호에 남았던 사람들이다. 드라비다족은 아느에서 영향을 받았던 민족으로 한린, 한웅 때도 계속 교류를 했던 이들이다.
한웅은 여기서 순혈주의냐 포용주의냐의 갈림길에서 포용주의를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자가 되었다. 기원전 6000년 경, 순혈과 혼혈에 대한 고민은 아느 생존자 네트워크에서 가장 큰 핫이슈였다. 그것은 전쟁을 치를 많은 군대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시리아, 엘람, 마리 <출처 : 위키피디아>
가령, 아시리아의 아슈르 족은 순혈의 내족과 혼혈의 외족으로 구분하고, 외족은 다시 내족과의 혼혈인 귀족과 그렇지 않은 평민으로 구분했다. 내족은 제천의식과 필요 기술 개발 중심으로 살았고, 외족의 귀족은 정치와 군사를 행했고, 외족의 평민은 그 외 모든 일에 종사하면서 필요에 따라 징집되었었다.
엘람은 극소수의 순혈이 있긴 했지만, 순혈을 인정하지 않고 가장 원주 민족 중심으로 아느 순혈과의 결혼을 통해 이룬 혼혈로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 마리는 혼혈과 순혈에 대한 구분 없이 정치적 뜻을 같이하면 모두 받아들였다. 수메르는 순혈을 보존하고자 하였으며, 엘과의 소통을 근본으로 삼았다.
한웅은 본인은 순혈이되 혼혈을 군사로 활용했으며 그 스스로가 군사령관의 역할을 자임했다. 동시에 제천행사를 포기한 서자가 되었다. 한웅과 함께한 순혈은 전쟁 전후 간단한 제천행사를 통해 하늘에 상황을 보고했고 한웅은 여기에 참가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한웅 당시에는 문화적 창조가 거의 없었다. 늘 전투와 하늘에 고하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 와중 많은 유목민족들이 한웅의 군사로 참가했고 이때의 경험으로 많은 유목민족의 자의식이 성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