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6000, 행동하여 실천하는 배달

한민족의 시작

by 한임

당시에는 배달이란 말이 없었다.



baidar

이게 뭐냐면 <행동, 실천하여 실현하다> 라는 뜻이다.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다 란 말이다.


바이 : 행동, 실천

다르 : 이루다

우리말의 종결어 <다>가 다르에서 나온 말이다.



이걸 한자어로 표현하니 배달이 되었고, 한 배, 두 배 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배달 시대에 한자가 어디 있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군가는 달을 하늘의 달이라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끊어진 기록의 아쉬움에 한탄할 따름이다. 당연히 한린, 배달 때는 한자가 없었다. 배달 후반기에서 고조선, 부여, 마한의 삼한 시대에 한자가 만들어져 전파되었던 것이다.



녹도문자.jpg 녹도문자


배달 시기에는 수도가 정해지지 않았다. 한웅은 바이칼 북쪽 웅족의 영역에 위치했다. 이에 배달의 영향권은 바이칼에서 산둥으로 잡을 수 있다. 이 때는 영토 개념이 아니라 영향권 개념이다. 고대 영역의 실선 표기는 금물이다. 한편 북만주 일대는 버려졌다. 이후 부여가 자리잡게 된다. 북만주 땅에는 독사와 지네가 많았다. 이에 돼지와 닭을 활용하여 이들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1층에 돼지와 닭을 키우고 2층에 사람이 거주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것을 표현한 글자가 家인 것이다. 한편 회화족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집을 지었다.



그렇다고 사용되는 한자가 모두 우리민족에 의해 만들어졌다 단언하는 것은 금물이다. 한나라 때 회화족은 한자 만들기 열풍이 불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배달은 기원전 6천년부터 기원전 2500년까지다. 대략 3500년 정도였다. 유목 민족들이 배달한국의 영향을 받았다. 몽고족, 헝가리 훈족, 카자흐스탄 등이 이 영향을 받으며 종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배달 때 의식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고, 단군 때 의식이 형상화, 개념화 되었다. 그것도 단군 후기의 것을 차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신화로 가지게 된다. 카자흐스탄의 동전에 단군이 그려진 이유다.




그리고 단군이 사라진 이후 ‘자신들도 천자다’를 외쳤다. 그래서 자기들을 칸이라 했다. 고조선 멸망 이후 천황, 태황, 칸, 황제가 등장했던 거다. 천황은 백제, 일본, 베트남이며, 태황은 부여와 고구려이며 칸은 유목민족이며 황제는 중국이다. 고려는 천황과 태황이 합쳐진 개념이 사용되었다. 근대 대한제국은 도리어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황제라 했다.




한편 마한 백성을 만난 한웅은 걱정이 앞섰다. 지배자의 가장 큰 일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이칼과 마한을 오가며 방어를 했으나 그 와중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기원전 3000년 경 산동반도로 치우를 보내어 마한 사람들을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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