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이(고1), 레야(중1)
두 아들이 2박 3일간 겨울 수련회에 간 사이, 이틀에 걸쳐 아들들의 방을 청소했다. 방 치우라는 잔소리 안 하는 대신 방청소도 각자 알아서 하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이렇게 집을 떠나 있으면 돌아올 때 기분 좋으라고 방을 싹 치워주곤 한다.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 때 지난 문제집이며 각종 종이들, 장난감류(그래, 아직도 있다 우리 집엔), 인형류(얀이가 어릴 때 사 모은 것들인데 이것도 눈처럼 먼지를 얹은 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들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또 담았다.
공간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건가, 두 방 합쳐서 쓰레기봉투만 7개에 종이박스는 3박스 넘게 나왔다. 그 모든 것들이 이 작은 공간에 다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었다니.. 그러고도 여전히 유효기간이 애매하게 남은 물건들이 아이들 방에 가득하다. 신발장 앞에 각 방에서 배출한 쓰레기들이 줄지어 놓인 것을 보니 이삿짐 쌀 때 생각이 난다. 몇 날 며칠 버리고 또 버려도 새집으로 옮겨서 또 버리고 버려야 했던. 내가 살면서 모아 놓은 쓸모를 다한 물건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급반성하게 되었던 그때. 이쯤 되면 아이들은 어차피 손을 못 댄다. 통로와 침대만 비어 있다면 그대로 쌓아놓고 살 아이들이다. 정리 못하는 건 우리 가족 내력인가 보다.
당연히 돌아온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내 물건에 손대지 마' 그런 게 없어서 좋다. 혹시 중요한 거 있을지 몰라 책이랑 종이류는 아직 안 버렸다고 살펴보라 했더니 그런 거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내가 봐도.. 다만 큰 애가 자신이 모은 인형을 버려서 조금 아쉬워했다. 너무 미안해서 다시 가져다주겠다니까 괜찮다고 했다. 그렇겠지. 조금은 서운하겠지. 그래도 하루이틀 지나면 아무 생각 없어질 것을 안다. 추억은 때로 필요이상으로 우리를 구속한다. 보내면 그뿐인데.
나는 아이들에게 슈퍼우먼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수고를 무릅쓰고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역시 엄마' 이 한마디가 나에게 매우 효과적인 당근이다. 과잉친절 속에서도 다행히 아이들이 자랄수록 점점 스스로 알아서 하려는 모습을 보여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서운할 정도로 혼자서 하겠다고도 한다. 정작 애들은 걱정이 안 되는데 문제는 나다. 내가 애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를 가만 보면 아이들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아니라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을 때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이 안타깝고 그게 화로 표현된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 없을 때 나는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1시간 30분 빨리 교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 애들을 깨우고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있는데 큰애가 오늘 입고 가야 할 옷이 안 보인다고 한다. 교회에서 받은 단체복인데 가방에 넣어온 것 같은데 없다고. 온 방을 뒤지고 빨래통까지 살펴봐도 그 옷이 없다. 한참을 난리 치다 혹시 다른 가방 아니냐고 했더니 그제야 생각난 듯 다른 가방에서 구겨지고 먼지 가득 묻은 옷을 꺼낸다. 새 옷인데 새 옷이라 할 수도 없는 그런 걸레 같은.... 나는 내가 해결할 수 있을 땐 아이를 야단치지 않는다. 나의 모든 관심은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돌돌이로 먼지를 떼어내고 물칠을 하고 드라이를 해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어 주자 아들이 '역시, 엄마' 한다. '네 물건 네가 잘 챙겨야지' 이런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그저 아량이 태평양 같은 엄마처럼 미소만 지을 뿐. 아마 옷을 못 찾았으면 잔소리 폭탄을 날렸을 거다. '미리미리 챙기라고 했어, 안 했어?!'
그렇게 정신없이 챙기고 나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대로 가면 지각이다. 나는 입고 있던 추리닝 위에 잠바만 걸쳐 입고 애들을 차에 태우고 달렸다. 카레이서로 빙의해 평소보다 5분이나 당겨 제시간에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나자 또다시 뿌듯함이 몰려온다. 내가 아직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엄마라는 그런...
긴장을 풀고 집으로 오는데 문득 서커스단의 안전그물이 생각났다. 안전그물은 사실 불안과 실패의 상징이다. 그러나 안전그물은 도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실패해도 돼. 내가 몇 번이고 널 받아줄 테니까."
나는 아이들의 안전그물이 되고 싶다. 수없이 실패하고 떨어져도 안전하게 받아 주고 다시 튀어 오르게 하는 안전그물. 그 그물이 있으면 아이는 몇 번을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자라는 동안 수없이 무너지고 실수하고 헛발질하여 그물 위로 출렁출렁 떨어져 내리다가 어느 순간 아이들의 실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더 이상 그물이 필요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땐 거추장스럽고 굴욕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아이들의 안전그물이 되어줄 것이고 아이들은 그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용기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계속 나를 찾아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아도 나는 다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