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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 May 23. 2024

생각보다 쉬운, 콩나물 비빔밥


살면서 “생각보다 쉽네.”라고 말한 적이 별로 없다.

늘 “생각보다 어렵네.”라는 말을 압도적으로 많이 해왔다.


나는 미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열등생이었다. 미술마저도 독보적인 재능은 아니었고 그저 평균치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부족함을 사무치게 느껴야 하는 열등생의 삶은 얼마나 고달픈가.


뭐든 어렵지 않게 해내는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너도 해봐!  차례야!라는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순서는 언제고 찾아오기 마련이다.


분명 친구들보다 부족한 모습을 보일 것이었다. 비교당하고, 넌 왜 이런 것도 못 해?라는 말을 듣겠지.

그럴 바에야.


“난 원래 잘 못해. 안 할래.”


실패할 것이 뻔한데,  자처해서 창피를 당해야 하나 싶었다. 깎여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는 점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난 이런 거 못 해.”


“안 할래.”


그렇게 못하는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고.나는 점점 도전을 하지 않고, 세상을 어렵게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런 스스로가 답답해서. 틀에서 벗어나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무능력한 인간은 방구석에 누워 하릴없이 핸드폰이나 보고 있는 게 주된 일상이다.

그저 게으르게 핸드폰을 하고 있을 뿐인데도, 때가 되면 배는 고파진다.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배는 계속 꼬르륵 칭얼댄다.


“뭐 먹지?”


밥 하는 것도 귀찮아 유튜브를 보던 중에 그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초간단 5분 완성 콩나물비빔밥]


, 초간단이라는 말이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마침, 냉장고에는 라면 끓일  넣으려고 사다  콩나물  봉지가 있었기에, 나는 부담 없이  영상을 시청했다. 삼심초짜리 영상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수년 전, 한식 조리사 자격증 실기 준비를 할 때 배웠던 번거로운 콩나물밥.엄마가 가끔 해 주셨던 압력밥솥 한가득했던 부담스러운 콩나물밥만 알던 내게 쇼크에 가까운 간단한 조리법이었다.


1. 콩나물을 씻어서 냄비 바닥에 깐다.

2. 냄비에 물을 90-미리 부어주고 그 위에 밥을 얹는다.

3. 냄비의 뚜껑을 덮고 중 약불로 5분간 조리한다. (맛술이 있다면 넣어줘도 좋다)

4. 콩나물과 밥이 데워지는 동안 간장, 설탕, 참기름, 참깨,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5. 다 된 밥을 비벼 먹는다.


이게 될까? 맛은 먹을 만하게 나오는 건가…. 하고 의심 , 호기심 반으로 따라  봤다.조리 시간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양념장 만드는  번거롭다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라면 끓이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요리였다.


“생각보다 쉽네.”


라는 말이 내 입에서 쉽게 나왔다.

쉽게 만든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푹-떠서 입에 넣었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푸짐한 비빔밥에서는 존재감이 희미했던 콩나물이, 주재료가 되자 그 특유의 식감이 입안에서 오롯이 느껴졌다.


우물우물

꿀꺽


위장으로 쉽게 넘어간다. 정말 술술 넘어갔다.단순한 재료로 쉽게 만든 요리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뭔지 모를 감정이 울컥하고 눈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나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정해진 요리법대로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구나. 번거롭고 복잡해 보여서,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방법을 바꾸면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였다.


나는 늘 삶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어려우니까   제대로 해낼  없을 거고,  실패할  분명해.실패는 창피하고 두려워.그렇게 세상이 두려워   이루는 밤도 많았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오늘같이 쉬운 것을 발견하는 날도 생긴다는 ,  비벼진 비빔밥  그릇이 내게 알려 주었다.


찾아보면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어려운 것만 있지는 않아.

너도 할 수 있어.


콩나물밥 말고도 다른 것들도 찾아보자.분명 네가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꾸역꾸역 누르며, 콩나물밥을 꼭꼭 씹어 삼킨다.


내일은 콩나물을 한 봉지 더 사러 가야겠다.


수십 년간 [생각보다 어려운 인생의 ] 절여진  입에 [생각보다 쉬운 성공의 ]    보여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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