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불닭볶음면이 처음 출시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이 라면이 인기를 얻기 전이라 그 어떤 홍보도 리뷰도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단순히 ‘불’ 자가 들어가는 이름에 끌려 그것을 처음 먹게 되었다. 혀가 얼얼하고 머리가 띵할 정도의 매움에 매료되어 직장일이 고된 날이면 습관처럼 불닭볶음면과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퇴근을 하곤 했다.
매운 라면에 불타오르는 입 안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식혀주며 “캬~” “후아!” 호들갑을 떨다 보면 답답했던 하루의 스트레스가 불에 타고 재가 되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여느 때처럼 불맥 조합으로 야식을 즐기고 있던 나의 등 뒤에서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뭘 그렇게 맛있게 먹어? 나도 한 입만 먹어보자.”
“이거 엄마한테 매울 텐데.”
“뭐 얼마나 맵다고.”
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라면을 먹은 엄마의 입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나쁜 년.”
“?”
“케헥, 콜록콜록. 이런 걸 왜 먹어! 속 버리게!”
“맛있는데….”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불닭볶음면을 통해 이를 잘 알게 된 엄마는 딸을 위해 청양고추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요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더 맵게. 아주 맵게.
그러면 딸아이가 아주 맛있게 밥을 먹겠지?라는 엄마의 마음이 엿보여서, 엄마의 매콤한 요리들을 먹으며 나는 행복함을 느꼈다.
그 당시 엄마의 사랑에선 뜨겁고 매운맛이 났다.
오직 딸의 식성을 고려해 아주 칼칼하게 끓인 된장국을 맛본 아빠는 벌컥 화를 내기도 하셨다.
“누가 된장찌개를 이렇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지!”
“우리 딸이가 매운 거 좋아하잖아. 내 딸 맛있게 먹으라고 맵게 했지.”
엄마의 당당한 발언에 아빠는 더 뭐라 하지 못하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식사를 하셨다.
그 된장국은 내 입맛엔 딱 좋게 맛있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줄줄 울면서 잡채를 무치고 계셨는데, 엄마가 내민 잡채 한 입을 먹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날 만큼 매운 잡채였다. 세상에. 잡채가 이렇게도 매울 수 있다니.
엄마는 점점 더 매운 요리를 만드는데 심취하셨다.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셨는지 어디선가 베트남 땡초고추를 구해오셨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요리에 아낌없이 사용하셨다.
어느 날 집에 가 보니 식탁 위에 락앤락 반찬통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 그 반찬통 안에는 갓 담은 것이 분명한 무생채가 담겨 있었다. 엄마의 무생채는 아주 얇게 채 썰어서 만드는 게 특징인데, 양념이 잘 배인 그 얄쌍한 무채는 밥을 비벼 먹기에 최적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무생채는 평소와 다른 점이 보였다.
“엄마. 이거 색이 왜 이래?”
내가 익히 아는 무생채의 색상과는 좀 다른 …. 그 당시 유행하던 버건디 컬러가 연상되는 검붉은 무생채를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엄마는 넘치는 창의성을 요리에 종종 사용하곤 하셨고, 몇 번의 당황스러운 시식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 그거?”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엄마가 뒤 돌아보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씩 웃으며 답했다.
“베트남 고추를 갈아서 고춧가루로 만들었는데. 그걸로 무쳐서 그래.”
“……?!”
무에서 배어 나온 물에 희석된 고춧가루로 연한 주황빛을 띠는 일반적인 무생채가 아닌, 짙은 갈색을 띤 빨간색. 진짜 베트남 땡초 고추의 색이네.
정체불명의 버건디색 무생채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신뢰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하얀 쌀 밥 위에 젓가락 가득 무생채를 집어 얹고, 반숙으로 익힌 계란 프라이와 참기름을 더해 샥샥 비볐다.
김가루도 빼놓을 수는 없지. 조미김을 부스럭부스럭 비벼 밥 위에 뿌려주니 금세 완성이다.
숟가락 가득 얹어진 무생채 비빔밥이 입 안에 들어오자 혀가 춤추기 시작한다.
후하 후하- 매운맛에 달궈진 혀를 식히면서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춧가루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맛이 달라지다니. 인생 무생채를 만난 날이었다.
베트남 고추가 거의 다 떨어졌으니, 인터넷으로 주문해 달라는 엄마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엄마의 사랑만 매운맛이었던 건 아니다.
나의 전 남자친구들은 매운걸 잘 먹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사랑한 탓에 데이트 때 매운 음식을 자처해서 먹으러 가자고 했던 그들이 생각난다. 매운 걸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하는 내게, 네가 매운 걸 좋아하니까 그거 먹으러 가자고 내 손을 이끌었던 다정한 남자들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맛에 혀가 아파 어쩔 줄 몰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도 내가 맛있게 먹는지 확인하고 웃으며 그 매운맛을 견뎌냈던 그들의 용감한 애정이 참 고마웠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사랑은 내게 매운맛으로 추억되고 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매운걸 (나름대로는) 절제하고 있기 때문에 버건디빛 무생채를 다시 만날 일은 요원한 상태이다. 엄마의 주방에서도 베트남 고추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매콤하고 얼얼한 사랑의 맛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