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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Jun 09. 2024

간편하고 손쉽게, 차 마시는 일상


무덥고 끈적끈적하고 구름이 잔뜩 낀 여름날이었다. 일본 친구가 기숙사 방으로 초대했다. 작은 냉장고에서 페트병을 꺼내 냉녹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2리터 생수병을 재활용한 페트병에 직접 냉녹차를 만들어 둔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마셨다며. 녹차를 마치 술인양 마시면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둘이서 2리터 녹차를 다 마시고 나니 뼛속까지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더위와 습기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던 이 음료를 더운 여름에 찾게 되는 시원한 음식으로 분류했다. 마치 수박이나 아이스커피처럼 말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기억이 되살아난 건, 선물 받은 녹차를 어떻게 소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였다. 싱가포르로 출장을 갔다 온 친구가 TWG의 게이샤블라썸 녹차를 사다 주었다. 지금 같으면 쾌재를 불렀을 텐데, 그때는 차를 즐겨 마시기 전이라 오히려 난감했다. 틴 뚜껑을 여니 달달한 과일향이 올라왔다. 게다가 이름 모를 노란색 꽃잎까지 섞인 화려한 찻잎은 매혹적이었다. 마침 여름이었고 나는 1리터 유리병에 녹차 잎을 넣고 상온의 물을 부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차를 마시려고 뚜껑을 여니 기분 좋아지는 달달한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냉침한 녹차는 순하고 깔끔했다. 더운 날씨에, 특히 밖에서 막 들어오자마자 마시면 물보다 훨씬 강력하게 갈증을 날려버렸다. 




집에서 준비하는 티타임이 간편하지 않다면 매일 차 마시는 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운 여름날에는 냉침한 차로 더위를 식힌다면, 으슬으슬 추워지는 늦가을에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티백 홍차로 온기를 더한다. 좀 출출할 때는 티백 두 개를 넣어 진하게 우린 홍차에 우유만 쓱 부운 밀크티를 마시면 의외로 든든한 간식이 된다.



차를 마신다고 해서 대단한 준비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손쉽고 간편하게 차를 즐기려면 집에 있는 도구와 컵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바로 장비를 구매하면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십중팔구 아쉬운 면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차 역시 그렇다. 게다가 한 번에 티타임 풀세트를 구매하기에는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이라는 책에는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간편하게 커피용 도구나 티 필터를 이용해 차를 우려 마시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차를 편하고 쉽게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커피가 훨씬 대중화된 요즘에 맞추어 집에 있는 커피 도구를 이용해 차를 우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추천하는 첫 번째 도구는 ‘커피 서버’이다. 커피 서버에 뜨거운 물을 넣어 서버를 데운 후 그 물은 버린다. 그 후 서버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리면 된다. 두 번째는 ‘클레버 드리퍼’이다. 이 드리퍼는 물을 붓자마자 바로 침출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만큼 기다렸다가 침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클레버 드리퍼를 이용할 때는 커피 필터에 차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머그컵에 올려 차를 침출 하면 된다. 마지막 방법은 종이로 만든 ‘티 필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찻잎을 넣은 티 필터를 머그잔에 넣은 후 물을 붓고 차를 우리면 된다. 나도 티 필터를 애용한다. 찻주전자에 우릴 때도 찻잎을 바로 넣으면 차 마신 후 뒤처리가 번거롭기 때문에 티 필터를 이용한다. 티 필터만 있으면 어떤 컵에나 차를 우릴 수 있다. 


 

나는 직접 만들어 페트병에 보관해 둔 냉녹차나 유리병에 냉침한 녹차처럼 일상에서 아주 간편하게 마시는 음료로 차를 만났다. 만약 좋은 찻집에서 격식을 차려 마신 차가 내 인생의 첫차였다면 지금처럼 차를 막(?) 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홀짝이며 하루 종일 지내듯이, 차 역시 휴식을 취하거나 일하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음료이다.


 

<차 마시는 인류>의 저자는 본인에게 차란 도를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건강을 주는 음식이자 오감을 깨우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차는 차일뿐, 관계를 규정하거나 사회적 규범을 실천하는 것이 차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런 태도에 깊이 공감한다. 차를 마신다고 해서 꼭 다도를 공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 차산지와 그에 따른 차 종류를 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차에 관해 깊이 알수록 차 마시는 즐거움이 커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편하게 물이나 커피대신 마시는 또 다른 음료, 그렇게 만나는 차로 충분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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