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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Oct 06. 2024

[제23화] 이해의 부재

진희의 시선, 상훈의 시선

준우는 태어날 때부터 애를 먹였다. 42주가 되어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아 유도분만으로 14시간 꼬박 진통을 하다가 제 엄마가 거의 실신할 때쯤에야 비로소 세상 빛을 보았다. 임신 중기쯤에는 뱃속에서 거꾸로 있어야 할 아이가 정자세로 너무나 바르게 들어앉아 제 부모를 초조하게 하더니 후기에 제자리를 찾고 나서는 전혀 자라지를 않았다. 진희의 몸무게는 계속 증가하는데 7개월쯤부터 아기는 더 이상 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 자라라는 태아는 안 자라고, 엄마만 자꾸 크네."
 보다 못한 의사가 8개월 2주 차에 진희를 나무라듯 한 마디 했다.
 "엄마 이런 식이면 임신성 당뇨 위험 있어요. 다이어트 좀 해야겠는데."
 "임신 중에 다이어트하면 아기가 못 자라지 않을까요?
 "어차피 엄마가 드시는 건 아기한테 안 가고 엄마한테만 가는 것 같은데요? 꼭 필요한 영양소 위주로 세끼만 챙겨드시고 군것질은 절대 피하세요."
 임신이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양, 삼시 세끼 외에도 군것질을 일삼고, 야식이 일상화되어 버린 진희를 꾸짖기라도 하는 듯 의사가 말했다.
 "엄마 생활 습관이 안 좋으면 아이가 잘 자라지 않을 수 있어요. 악착같이 엄마 영양분 빼먹으면 될 텐데 우리 아기는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의사가 초음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랬다. 준우는 그때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정일을 2주나 넘기고도 결국 2.65k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났다. 남아 평균 무게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산후조리원 면회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준우를 보면 그냥 얼핏 봐도 확연히 작은 게 눈에 띄었다. 진희가 모유가 나오지 않아 분유를 섞어 먹였는데 그것도 다른 아기들이 먹는 양의 절반 정도라도 먹으면 나름 성공한 날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자연히 진희는 아들을 먹이는 일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들이는 모든 노력의 9할이 '잘 먹이는 것'이 된 이유이다.
 진희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우는 성장곡선에서 평균을 넘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참 일관되기도 하다. 꾸준히 평균 이하. 2번의 유산 끝에 힘들게 얻은 아이라 더 잘 키우고 싶었는데 아이 키우는 일이야말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진희는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주 일관되게.



 <진희의 시선>
 준우가 다섯 살 무렵 초겨울의 어느 주말쯤이었을 것이다. 주말 육아를 담당하는 남편이 바쁜 일이 있어 출근을 했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는 근처 친정 부모님은 여행을 떠난 상황. 아이 밥 먹이는 것에 거의 혈안이 되어있던 진희가 어린이집이나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하루 세 번 아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일단 준우에게 밥을 먹이는 시간은 기본 한 시간 반부터 시작된다. 입에 물고 씹지 않으니 당연히 삼킬 수도 없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다 먹이고 치우는 시간까지 합하면 두세 시간은 잡아야 한다. 하루 세 번을 먹인다고 했을 때 진희는 거의 하루 종일 아이 밥 먹이는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날도 오롯이 밥 먹이는 시간만 2시간 가까이 걸려 간신히 아침을 다 먹였다. 치우고 나면 곧 점심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겠지만 세끼 중 한 번이 일단 끝났으니 할 일의 3분의 1은 끝낸 셈이다. 잠시의 짬이라도 자유를 누릴 권리가 생겼다. 설거지를 끝내고 이제 좀 쉬겠구나, 하고 돌아섰는데 진희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준우가 거실 한가운데 목석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의 발 밑에 오늘 진희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물거품이 되어 적나라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그녀에게 잠시의 짬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준우에게 먹였던 음식들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가차 없이 튀어있었다.



 "야! 이게 뭐야! 내가 이걸 어떻게 다 먹인 건데! 어떻게!"
 마지막 단어 '어떻게'는 절규에 찬 비명에 가까웠다. 흥분한 진희가 화를 참지 못하고 준우를 번쩍 들어 화장실 안에 밀어 넣듯 데려다 놓고,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휴지로 토사물을 모아 버리고 물티슈로 한 번, 그리고 뜨거운 걸레로 여러 번 닦아냈다. 이제 겨우 다 되었나 싶었는데 소파 하부의 미처 보지 못한 토사물이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다시 걸레질을 하던 진희도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진희는 화장실로 향했다. 토사물이 낭자했던 거실만큼이나 엉망이 된 준우가 고통보다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음식물이 묻은 옷이 다 젖어서 가슴과 배에 철썩 들러붙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준우를 보니 그제야 진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음식물을 토하고도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서 있던 준우. 다섯 살짜리 그 어린아이는  얼마를 그렇게 서 있던 것일까.
 거실을 치우며 애가 타 울던 진희가 진정으로 잃은 것은 정녕 물거품이 된 그녀의 노력뿐이었을까. 진희는 자책하며 아이를 안았다. 서둘러 젖은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로 씻긴 다음 곧 다시 또 밥을 먹여야 하겠지만.

 해주는 대로 무던하게 아무거나 잘 먹으면 무엇이 문제겠나. 준우는 태생부터 아니, 태생 전부터 뭔가를 먹고 즐기는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던 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중 하나, 식욕이란 것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잘 먹이려는 엄마의 부한 노력은 항상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 버리는 공허한 날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 진희는 점점 더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자라면서 준우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진희를 애 먹이곤 했다. 마치 불과 물처럼 둘은 상극인 것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준우의 느린 성격이다. 상황이 어떻든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이 마치 제 엄마를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 진희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아침 등교 시간이나 과제 제출 디데이가 더욱 그러했다. 진희는 등교든 과제 제출이든 어느 정도 시간을 남겨두고 미리미리 끝내야 하는 성격이고, 준우는 천천히 조금씩 데드라인에 딱 맞추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준우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둘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리포트 제출이 다음 주 월요일인데 아직도 다 안되어 있으면 어떡해?"
 "금요일도 있고, 주말에 해도 되고.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엄마는 왜 벌써부터 그래?"
 엄마의 말에 준우가 지겹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벌써라니? 모든 일이 다 생각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까? 그러니 여유 시간을 확보해 두고 미리 끝내라고 몇 번을 말했잖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은데."
 "아니, 애가 알아서 하겠다잖아. 도대체 왜 애 방 앞에서 계속 같은 잔소리를 하고 있는 건데?"
 거실에서 보다 못한 상훈이 진희를 탓하듯 말했다.
 "애랑 얘기하고 있었잖아. 왜 중간에 또 끼어들어서 애 편을 드는 거야?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
 진희가 상훈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얘기하는 거야? 그냥 당신 기준에 맞춰서 애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거잖아. 당신 스스로를 계속 옭아매고 있으면서 애도 그 올가미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거라고."
 준우가 방문을 닫았다.
 매번 이런 식이지. 혼자 천사인 척, 악역은 언제나 진희의 몫이었다.



 예전부터 진희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때가 되면 아이가 다 알아서 잘할 거라는 말이다. 알아서 잘 먹고, 알아서 잘 자고, 뭐든 알아서 잘 챙기고. 준우가 엄마 뱃속부터 중2가 된 지금까지 진희가 느끼기에 그 '때'라는 것은 아직 한 번도 없었는데 도대체 그 '때'는 언제 온다는 말인지. 진희는 상훈의 말처럼 정말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것일까.
 그 덫이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가 되어 그녀를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상훈의 시선>
 준우는 어려서부터 밥 안 먹는 것으로 제 엄마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 상훈도 아내 진희의 고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녀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들 밥 먹이는 일에 매달렸다. 상훈이 주말 근무가 있어 출근했던 날, 준우에게 있었던 일 때문에 그날 밤 그와 아내는 크게 말다툼을 했다.
 "도대체 얼마를 어떻게 먹였길래 애가 토할 정도로..."
 상훈은 말문이 막혔다.
 "많이 먹이지도 않았어. 그냥 평소 양 그대로였어."
 "빨리 먹이려고 씹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삼키게 한 거 아냐? 그렇지 않으면 왜 다 토했겠어?"
 상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준우가 안쓰러워 이 순간 아내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빨리 먹이긴 뭘 빨리 먹여? 두 시간 가까이 먹였다니까? 저렇게 밥을 안 먹는 애를 삼시 세끼 제대로 먹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진희가 억울한 듯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삼시 세끼를 고집하냐고. 그렇게 안 먹으면 간격을 오래 두고 두 끼만 먹이면 되잖아. 그럼 훨씬 잘 먹을 텐데."
 "가뜩이나 태어날 때부터 작았던 애를 하루 두 끼만 먹이라고? 제대로 세끼 다 챙겨 먹어도 평균 신장이 될까 말까인데?"
 진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상훈에게 되물었다.
 "그거 집착이야. 당신이 정해 놓은 양을 같은 시간에 하루 세 번씩 무조건 먹여야 한다는 거."
 
 진희는 밥에 대해서 만큼은 정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고집스러웠다. 꼭 정해진 시간이나 정해진 양이 아니어도 아이가 언제든 잘 먹어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훈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그런 집요함이 아이의 식습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진희만 빼고 온 가족이 다 하고 있었다.
 다 때가 되면 먹는다는 옛말처럼 준우도 성장하면서 조금씩 먹는 양이 늘기 시작했다. 상훈 가족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니 진희의 집요함은 또 다른 곳을 향했다.
 "리포트 제출이 다음 주 월요일인데 아직도 다 안되어 있으면 어떡해?"
 진희의 뾰족한 목소리에 상훈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금요일도 있고, 주말에 해도 되고.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엄마는 왜 벌써부터 그래?"
 상훈이 준우 목소리를 듣자 하니 엄마 또 시작이군, 하는 말투다.
 "벌써라니? 모든 일이 다 생각처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니까? 그러니 여유 시간을 확보해 두고 미리 끝내라고 몇 번을 말했잖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긴 뭐가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은데."
 이러다 아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다 집어치우라고 말하겠지. 그러면 아들은 알겠다는 듯 다 때려치우고 아무것도 안 하면 되겠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을 것이다. 굳게 닫힌 방문처럼 그들 사이에 또다시 막이 생긴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의 두께는 자꾸만 두터워진다. 짙은 안개가 낀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겠지. 그러면 또 며칠 간의 냉전이 시작될 것이다. 그 한가운데 있는 상훈에게 그들의 침묵보다 무서운 한파는 없었다. 그 얼음 벌판의 적막만은 피하고 싶은 그였다. 벌써 아내의 목소리가 상당히 날카로워졌다. 막아야 한다.   
 "아니, 애가 알아서 하겠다잖아. 도대체 왜 애 방 앞에서 계속 같은 잔소리를 하고 있는 건데?"
 다급하게 끼어들다 보니 마음과 달리 또 아내를 질책하게 되었다. 진희는 화나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 큰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애랑 얘기하고 있었잖아. 왜 중간에 또 끼어들어서 애 편을 드는 거야?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
 서글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 진희가 외치듯 상훈에게 말했다.
 "그게 얘기하는 거야? 그냥 당신 기준에 맞춰서 애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거잖아. 당신 스스로를 계속 옭아매고 있으면서 애도 그 올가미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거라고."
 결국 준우는 또 방문을 닫았다.
 매번 이런 식이 된다. 상훈이 일부러 아내에게 악역을 담당하도록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지막 말은 아내에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는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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