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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Oct 10. 2024

[제24화] 해무 속에서도 배는 나아가더라

준우를 그렇게 혼자 보내고 진희는, 어떤 상황이었든 간에 목발을 짚는 아한테 알아서 등교하라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아들이 먹다 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밥과 반찬들을 치우고 식탁을 정리했다. 삶은 행주로 식탁 위를 닦고 지저분해진 그릇들도 깨끗이 설거지했다. 잘 정돈된 주방처럼 그녀의 마음도 산뜻하게 정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오늘 아침 갈등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주방을 보며 그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진희 부부는 어렵게 가진 아이, 준우에게 튼튼이란 태명을 붙여주었다. 말 그대로 마음도 몸도 튼튼하게 잘 자라달라는 염원을 담아서, 앞선 두 아이처럼 엄마와 연결된 이승의 끈을 쉽게 놓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희망을 담아서 말이다. 튼튼이는 임신 중기에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평균보다 작다는 것 말고는 건강상 별 문제를 보이진 않았다. 별일은 진희 부부의 경제적 상황에 있었다. 임신 직후부터 진희네 가계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상훈의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결국 급여도 제때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는 상훈의 첫 직장으로 대표와도 깊은 인연이 있던 터라 상황이 어려워졌다 하여 매몰차게 바로 회사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화불단행,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했던가. 시련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진희의 입덧 증상이 날로 심각해졌고 더 이상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패브릭 냄새가 역해 옷장문을 열지 못했고, 애호박을 두툼히 썰어 넣은, 평소 즐겨 먹던 강된장찌개는 그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심이 생겼다. 거친 파도 위의 부표처럼 제멋대로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음식물 섭취 자체가 불가능했고, 중병에 걸린 환자처럼 하루종일 소파나 침대에 맥없이 누워 지내야 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먹거리 광고나 음식 먹는 장면 때문에 TV도 볼 수 없었다. 지속적인 메스꺼움으로 진희는 임신 4개월 때까지 산부인과 입퇴원을 반복했다. 결국 임부의 몸무게가 39kg대까지 떨어지는 위태로운 상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입덧 증상이 멈추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입덧이 사라지고 나니 진희는 평소 좋아하지 않던 음식들까지 다 그리워졌다. 특히 소고기가 그러했는데 -소고기는 진희가 아니라 뱃속 아기가 원했던 것임을 나중에 깨달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소고기를 잘 먹지 못하던 그녀가 마블링이 고른 소고기 한 점을 그토록 바라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언젠가 상훈이, 마블링이 제대로 자리 잡은 소고기를 먹으며 식감이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은 무슨, 마블링은 그저 허연 지방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진희가, 붉은 빛깔 속 섬세하게 수놓아진 그 흰색의 무늬를 간절히 바라게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해도 준우에게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는 소고기를 아무리 먹고 싶어도 마음껏 먹을 수가 없었다. 준우가 계속 평균보다 작았던 이유가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진희는 가슴이 쓰려왔다.



 준우가 세 살이 되는 해까지 가계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상훈의 급여는 두 달 만에 나오기도 했다가 더러는 두 달치가 세 달 만에 나오기도 하고, 불규칙한 임금 지급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던 어느  진희가 우편함에 있는 광고 전단지를 보 되었다. 근처 마트 이벤트 광고지였다. 천 원 이상 구매 시 도장을 찍어주고, 그 도장이 열 개 이상 모이면 받은 도장 개수에 따라 선물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도장 10개 : 머그컵
 도장 20개 : 4각 나눔 찬기 2 set
 도장 30개 : 24cm 프라이팬
 예전 같으면 보지도 않고 그냥 버렸을 광고지였지만 그 전단지를 들고 진희는 바로 마트로 향했다. 하루에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나 도장은 구매 시마다 한 개만 찍어 준다고 했다. 천 원씩 다섯 번을 방문하면 도장 다섯 개를 얻을 수 있다. 진희는 준우에게 줄 200ml짜리 우유를 두 개 집어 들었다. 가격을 계산해 보니 천 원이 조금 넘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500ml짜리 하나를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준우에게 줄 칼슘 치즈도 하나 집고 싶었지만 다음의 도장을 위해 진희는 미련을 남긴 채 돌아섰다.


 이벤트 기간 동안 도장 30개를 채우려면 거의 매일 마트에 가야 했다. 4각 나눔 찬기도 탐나기는 했지만 진희의 도장 목적은 프라이팬이었다. 24cm짜리 프라이팬이 얼마나 한다고, 그녀는 출석 도장을 찍듯 거의 매일 그곳에 갔다. 천 원을 겨우 넘기는 물품을 나눠서 구입하기 위해 하루 세 번까지 방문했던 적도 있었다. 남은 날들과 구매할 물건들과 도장 개수를 매일같이 헤아렸다. 그깟 도장 하나를 받기 위해서.



 그때 진희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진열대 앞에 서서 이것저것 가격을 확인하며 몇 번씩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맞아 묵직한 한숨을 토해내던 비감스러웠던 날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던 날에도 그녀는 습관처럼 마트를 찾았다. 무너져 내린 자존감이 프라이팬을 대신 사줄 리 으므로.
 결국 그녀는 원하던 것을 이벤트 선물로 받았다. 24cm짜리 프라이팬을 공짜로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가슴속 깊이 눈물이 고이는 날이 많았던 날들. 그런 중에도 준우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희는 무던히 애를 썼다.
 <해무 속에서도 결국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삶이 견디기 힘들 만큼 무거워질 때 진희가 좌우명처럼 되뇌던 말이다. 짙은 안개가 바다를 덮쳐도 배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어느 순간 태양빛이 해무를 뚫고 와,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던 갑판을 환히 비출 것이다. 끝내 맑고 푸른 바다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준우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상훈의 회사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고, 역경을 함께 버텨준 상훈에게 회사는 그 이상을 보상하는 자리를 선뜻 내주었다. 진희도 얼마 간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진희네 가정에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눈치 보지 않고 소고기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준우에게 소고기도 마음껏 먹일 수 있다. 준우를 출산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진희는 다시 마블링이 싫어졌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예전처럼 다시 소고기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인체의 신비함이란.




구슬픈 기억의 단편들이 되살아나 진희는 가슴이 아렸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우였다.

 '이 시간에?'

 가슴이 철렁,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보세요?"

 "여기 OO병원 응급실인데요. 준우가 다쳐서 병원에 왔습니다."

 "네? 우리 아들이요? 어디가요? 얼마나 다쳤나요? 바로 갈게요."

 "의식을 잃었는데 심각한 부상은..."

 뚝.

 진희는 상대방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급했다. 아니 어쩌면 상대방의 다음 말을 듣기가 너무 두려워서 였는지도 몰랐다.

"여보, 준우가... 준우가 응급, 응급실에 있대."

진희가 상훈에게 다급히 전화했다.

"뭔 소리야? 준우가 왜? 아니다, 내가 바로 갈게. 어느 병원이야? OO병원?"

"응."

진희도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현관문이 세게 닫혔다. 다급한 진희의 마음을 대변하듯 서로 뒤엉킨 신발들이 제 짝을 잃고 사방으로 널브러졌다. 마음은 이미 병원에 도착했건만 엘리베이터 기다릴 여유도 없이 다급히 계단을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 종종대는 그녀의 몸은 한없이 굼뜨기만 했다.   
 Rh-
 진희는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자꾸 이 단어가 떠올랐다. 진희의 혈액형은 Rh- O형이다. 준우는 다행히 아빠의 영향을 받아 Rh+ 인데도 진희는 아이가 다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준우는 괜찮은 것일까. 그녀는 조금 전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내용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준우, 응급실, 의식 잃음. 심각한 부상...>

 아무리 화가 났어도, 아무리 아들이 싫은 소릴 했어도, 엄마는, 엄마라면 목발 짚은 아이를 그냥 혼자 보내면 안 되었다는 후회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택시 기사가 응급실 앞에 차를 세웠다.
 "저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응급실이에요. 저기요, 아주머니!"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넋이 나간 진희를 택시 기사가 소리쳐 불렀다.
 "응급실 입구는 저쪽이에요. 급하신 것 같은데 얼른 가셔야죠."
 노련한 택시 기사가 진희를 염려하며 재촉했다. 그녀는 쫓기다시피 택시에서 내려 기사가 알려준 방향으로 뛰어갔다.
 "저기.. 저기 있잖아요. 우리 애가 여기 사고로 왔다는데..."
 마음은 다급한데 말은 빨리 나오지 않았다.
 "OO중학교 학생, 사강역 사거리 트럭 사고 말씀하시는 거죠?"
 OO중학교, 트럭 사고.
 진희는 믿을 수 없는 이 충격적인 말에 다리가 풀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날벼락같은 단어를 저 여자는 어쩜 이리도 무미건조하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진희의 심정을 투영하듯 어디선가 애끓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거의 비통한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저쪽에 한 남학생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옆에 있던 간호사의 도움으로 그가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비탄에 잠긴 얼굴, 처연한 그의 발걸음이 마치 그녀의 마음 같았다. 진희도 접수 직원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앞 선 저 남학생처럼 그녀도 천근의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곳마다 가시덤불이지만 발바닥이 찔리는 고통쯤이야 가슴 깊이 박힌 애통함에 비할 바겠는가.

 응급실 풍경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여기저기 유혈이 낭자하거나 초조한 긴박감이 흐르진 않았다. 의료진들의 다급한 목소리도 없었다. 그때까지는. 의료 기기들의 삐삐 거리는 소리들을 제외하면 의외로 고요했다. 그래서 더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그 고요가 도대체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단 말인가. 차라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음 소리라도, 도와달라는 애절한 외침이라도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곳은. 고통조차 소리 낼 수 없는 이들의 침묵이 진희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 가운데 준우가 있다는 말인가. 삶과 이어진 마지막 빛줄기조차 희미해지는 이 고독한 공간에.
 그때 갑자기 응급실 벽에 붙은 빨간 등이 빙글빙글 돌며 눈이 아프도록 번쩍였다. 전운이 감돌던 고요함이 끝났다. 귀를 찌르는 경고음이 들렸고, 의료진들의 외침이 적막 공기를 갈랐다. 이런 모습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은.
  전문의가 뛰어 들어오며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
 "CPR 4분째 진행 중이고, 아직 호흡 없습니다."
 "디핍 준비!!"
 "준비습니다."
 "200줄!"
 "물러서! 하나 둘 셋!"
 "환자 반응 없습니다."
 "250줄! 하나 둘 셋!"
 "맥박 없습니다."
 의료진들에 둘러싸여 환자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누워있는 환자는 누구일까. 진희는 아직 준우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굳어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극도의 두려움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간호사가 그녀 옆을 지나며 소슬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엄마!"
 가슴 벅차오르는 이 목소리. 방금 전 바람이 지나간 자리로 진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토록 애를 태웠던 아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주변을 꽉 채우던 짙은 해무가 다시 걷히는 순간이었다. 이제 배가 다시 속도를 낼 차례라는 듯 아들의 힘찬 목소리가 다시 한번 바람을 타고 왔다.
 "엄마, 왜 이제 와? 간호사님이 엄마 금방 온다고 했는데."
 "준우야!"
 한걸음에 달려가 그를 안았다.
 "너 괜찮아? 어디, 어떻게 다친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태워 준다고 했잖아."
 진희가 눈물을 삼키고 이리저리 아들을 살폈다.

 "넘어지면서 잠시 의식을 잃었지만 별 문제없습니다, 어머니. 지나던 분이 밀어준 덕분에 준우는 트럭에 치이지 않고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어요."   
 좀 전에 진희 옆을 스쳐 지났던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요? 세상에 이렇게 감사한 일이. 그분은 어디 계신가요? 인사 꼭 하고 싶어요."
 간호사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CPR중인 환자 쪽을 바라보았다.
 "아...  설마..."
 진희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갈 곳 잃은 애달픈 눈빛의 그 남학생이 바로 거기 있었다. 하필 거기에.
 "아빠!"

 그 아이가 의료진들 사이에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외쳤다. 그의 축 쳐진 어깨가 구슬프게 흔들렸다.

 진희는 차마 그 모습을 보고있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무거운 한숨을 타고 진희의 어깨가 한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응급실 건물 앞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정원. 그곳에 매정하게도 봄꽃이 활짝 피었다. 여러 장의 늘씬한 꽃잎이 길게 뻗어 올라간 모양이 꽃샘바람 따위 비웃는 콧대 높은 여인의 모습처럼 우아했다.

"크로커스라는 꽃이에요."
 아까 그 친절한 간호사가 어느 틈에 진희 옆에 와 섰다. 작고 연약하지만 춥고 긴 시간을 버텨내 끝내 피고야 마는 이 봄꽃들처럼 저 안의 사람들도 그러하길, 그 아이의 아버지도 암울한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눈 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죄책감인지 진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화려하고 다채로웠던 꽃잎들이 번지듯 하나가 되어 점차 흐려졌다.  
 "진희 씨 잘못이 아니에요."
 간호사의 다감한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응급실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목소리가 익숙했던 이유를 진희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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