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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울 Aug 11. 2024

[제4화] 유난한 오늘

절친이 엄마가 되던 날에

 오늘 민서는 모처럼 여유로운 평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알바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고, 같이 앉아 먹을 수도 없는데 고기 냄새를 저녁 내내 맡아야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여유로운 평일을 보내자니 오늘 그녀의 삶이 그렇게 사치스러울 수가 없다.


 <민서야, 나 아기 낳았어. 예정일보다 빨라서 놀랐지? 기 보러 올 거지?>


 며칠 전 친구 희영의 출산 소식에 민서는 마치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처럼 마음에 퐁당퐁당 물수제비가 일었다. 미성년의 자격으로도 합법적으로 자신 있게 외박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학교에서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작은 일탈이 어느 정도는 눈감아지는 너그러운 시간. 밤잠 이룰 수 없이 설레는 일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민서는 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 중학 생활, 민석이 사라졌던 그 해부터였을 것이라 민서는 짐작했다. 중고등 학교 시절을 함께 한 친구가 이렇게 일찍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오는 것 같았다. 민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운전도 자주 안 했으면서 어쩌려고... 그냥 택시를 부르지."

 민서가 희영에게 가는 날 엄마의 걱정거리가 금세 또 하나 늘었다.

 "엄마가 항상 이런 식이니까 내가 운전이 안 늘어. 이럴 때 연습해 봐야지 그럼 언제 해?"

 "그러니까 그 연습을 왜 이럴 때 하냐고?!"

 엄마의 이럴 때는 과연 어떤 때일까 민서는 생각해 보았다. 자동차 도로를 이용하면 도착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을 때? 두 번 넘게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을 절대 피하고 싶은 그런 때? 크고 무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외출해야 할 때? 아니면 오늘처럼 엄마가 대신 운전을 해 줄 수 없을 때?

  "에휴... 저녁 되면 거긴 차도 많아져서 복잡한데 왜 하필 오늘이니..."

  둘에게 똑같이 나눠지던 관심이 민석이 사라진 이후 비정상적으로 민서에게 몰렸다. 그러니 엄마의 그 유난한 오늘은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계속될 것이다. 민서는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고 급히 현관을 나섰다. 뒷말은 들리지 않았고 엄마의 한숨 소리만 길게 남았다.



 민서도 오늘 희영을 위한 출산 축하 선물만 아니었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터였다. 이왕이면 꼭 필요한 것을 해주고 싶어 희영에게 물었던 날, 그녀는 너무 비싸지 않은 자동 흔들 침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물건보다 훨씬 큰 박스를 차에 싣고 가며 민서는 대중교통 대신 운전을 택한 것이 역시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해 힘들게 박스를 옮기면서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말하곤 했던 희영의 얼굴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가만 보면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고 말했던 당시 자신의 얼굴도 기억났다. 어렸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 자신감 넘쳤던 그때가 떠오르자, 단짝 친구의 출산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이제 알 것도 같았다.

 "아니, 그 무거운 걸 왜 여기까지 들고 왔어? 나한테 전화하면 남편이 주차장에서 바로 차에 실었을 텐데..."

 첫인사도 생략한 첫마디가 나무라는 투였지만 친구가 혼자 끙끙대며 짊어졌을 일을 걱정했다는 걸 민서는 알고 있다. 그녀의 남편이 얼른 일어나 민서가 들고 온 박스를 받았다. 희영의 얼굴은 마치 먹이를 입에 가득 문 겨울 직전의 다람쥐 같기도 했고, 한껏 부풀려진 풍선 같기도 해서 선명했던 이목구비가 흐려진 듯 보였다. 그런데 민서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뭉클했다.

 "얼굴이 많이 부었다. 많이 힘들었어?"

 "성질 급한 녀석이 예정일보다 2주나 빨리 나오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뭐."

 "엄마랑 아빠를 하루라도 더 일찍 만나고 싶었나 보네."

 "누구처럼 10시간 이상까진 아니어도 부모로서 아이를 맞이하는 어느 정도 고통의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봐."

 뭔가 불만인 듯한 표정으로 희영이 말했다.

 "내가 30분 만에 아기를 낳았더니 분만이 아주 쉬운 줄 알더라고."

 "누가? 남편이?"

 민서의 물음에 남편이 옆에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희영은 대답 대신 남편에게 부드럽게 눈을 흘겼다.

 희영이 참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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