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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May 18. 2024

아침부터 육아 한 판

  오늘도 아침부터 아이와 한 판 했다. 며칠 전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학교 가기 전에 치우라고 했는데 치우지는 않고 오히려 8살 동동이가 말대꾸를 한다. 실로 가관이다.


“블록 만들어 놓은 거 안 치울 거예요.”

“왜 안 치워? 저거 치워야 엄마가 이따가 청소를 하지.” 

“이따 학교 다녀와서 엄마랑 저걸로 놀 거라니까! 어제 엄마가 놀아준다고 하고 안 놀아줬잖아요! 엄마가 잘못한 거니까 안 치워요.”

“니가 엄마랑 안 놀고 티브이 본다며! 그리고 왜 자꾸 다른 사람 핑계를 대? 니가 가지고 놀았으면 니가 치우는 게 당연한 거지!”

“엄마는 괜히 할 말 없으면 맨날 왜 다른 사람 핑계 대냐고 하더라!”

 

  이쯤 되니까 기가 막혔다. 이게 도대체 입씨름할 문제인가. 피곤한 마음을 이끌고 나 때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엄마에게 뭔가 해달라고 떼를 쓸 때는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았었다. 그게 약이 올라 몇 마디 더 해대면 엄마는 그런 날 무시하거나 내 등짝을 때렸다. 그러니 입씨름이 아예 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문득 어릴 때 감정을 공감받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서운한 마음에 엄마에게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럼 엄마는 언제나 기억이 안 난다고 하거나 만약 본인이 그랬다 하더라도 그때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 줄 여유 따위는 없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때라는 말로 방어하신다.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동동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놀이동산 같은 가고 싶은 곳 가고, 자주 여행 다니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내가 어릴 때보다 좋은 환경에서 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유치하게 질투가 날 때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저렇게 부모님이랑 많이 여행 다니고, 엄마 아빠랑 조잘조잘 대화하고 같이 많이 놀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릴 때는 잘못을 하면 맞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크면서도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부모에 대해 공부하면서 체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반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고 주위에도 내 생각을 말해 왔다. 하지만 오늘처럼 동동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떼를 쓰거나, 버릇없이 굴 때는 등짝을 한 대 후려쳐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실제로 하지 못하니 상상으로만 실컷 때리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 부모님께 가장 서운함을 느꼈던 순간은 내 감정을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였다. 그래서 동동이의 감정에는 최대한 공감해주려고 한다. 요즘 여러 사건들 때문에 오은영식 육아에 등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사실 오은영식 육아의 핵심도 감정은 공감해 주되 안 되는 행동에는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까지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어린아이들은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되풀이될수록 부모와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엄마들은 예전 엄마들과 다르게 조금 더 먹고살 만해지기도 했고, 정보도 많은 덕에 육아에 쏟을 에너지와 시간도 더 많아졌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육아법도 조금씩 변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육아는 간단하다. 슬프게도 생각만 간단하다. 생각뿐일지라도 어쨌든 그것은 ‘감정에는 공감해 주되, 훈육은 단호하게 할 것.’ 단호하다는 것은 내게 ‘짤 없다’는 말과 같다. 다행히도 내 냉정한 성격 탓에 아이의 눈물이 전혀 내 마음을 약하게 하지 못해서 이런 육아가 가능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엄마랑 놀고 싶어서 속상한 건 알겠어.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엄마 마음을 다치게 해. 장난감은 지금 당장 치워. 안 치우면 너랑은 할 말이 전혀 없어.”

  학교 가기 전 한 시간 동안이나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다. 몇 번 아이가 말을 걸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장난감을 치운 동동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엄마, 아까 못되게 말해서 미안해요. 대신 오늘 꼭 도라에몽 역할놀이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다음부터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 엄마는 니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니까. 학교 다녀와서 숙제 다 끝내고서 도라에몽 놀이하자.”


  그렇게 동동이는 웃으며 학교에 갔고, 다녀와서 바로 숙제를 해버렸다. 아.. 내가 뱉은 말 때문에 자기 직전까지 도라에몽, 진구, 이슬이, 비실이, 퉁퉁이의 목소리를 내며 도라에몽 친구들이 놀이공원에 간 설정의 놀이를 하고 나니 현타가 온다.(나는 내가 등장인물 여럿을 맡아야 하는 역할놀이가 너무 싫다.) 약속은 꼭 지키는 거라고 가르쳐 온 탓에 오늘도 당한 느낌이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최소한 동동이가 서운한 것만 잔뜩 생각나는 나와는 다르게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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