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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May 24. 2024

엄마는 도망가고 싶다

불편하게 미묘한 죄책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은 몸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몸이 으슬으슬했고, 몸살인지, 온몸이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빨리 일어나서 아이를 챙겨야 하는데.’ 생각만 굴뚝같고 몸은 침대에 딱 붙어서 도무지 일어나고 싶지를 않았다. 아침 6시. 요즘 동동이는 미라클모닝을 하고 있다. 학원에 다녀오면 밥 먹고 숙제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는 아이에게 일찍 일어나서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제안했고, 아침잠이 별로 없던 아이는 선뜻 수락하고 일찍 일어나 자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일찍 아이를 깨워야 했지만 정말이지 꼼짝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이런 날도 온전히 내 몸만 챙길 수는 없는 것이 엄마인가 보다. 차라리 혼자 아프면 아침은 건너뛰고 잠이나 실컷 잔 뒤에 죽집에서 배달이나 시켜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파서는 안 됐다.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물을 잔뜩 먹은 걸레처럼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와서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차렸다. 엄마가 아픈 줄 모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은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봐도 아직은 배려심이 부족한 아이인지라 평소처럼 밥도 느릿느릿 먹고 등교시간은 상관없다는 듯이 여유가 넘쳤다. 아픈 몸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화가 치밀었나 보다.


  “빨리빨리 안 해? 밥 먹을 땐 제발 밥만 먹어! 자꾸 그렇게 장난감 가지고 노니까 지금 50분 넘게 먹고 있는데도 다 못 먹잖아! 엄마가 아침이라고 밥도 적게 줬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먹을 거야. 어? 너 이래서 가방 언제 싸고 언제 씻고 옷 입고 학교 갈래! 왜 엄마가 매일 똑같은 소리를 하게 만드는 건데?!"


  잔소리가 폭발을 했다. 언성을 높여 내 남은 에너지를 전부 잔소리에 쏟아부었다. 아이는 그 사이에 멘털이 강해졌는지 눈치는 봐도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는다. 하필 오늘부터 아이 학교 독서주간이라 그림책 봉사동아리의 어머니들이 1학년 교실에서 한 주 동안 아침 독서 시간에 그림책을 읽어 주어야 했다. 오늘은 내 차례였는데 몸도 마음도 영 내키지가 않았다. 몸은 아프고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래도 당일에 약속을 취소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침 일찍 아이와 함께 학교에 등교했다. 아침 내내 동동이는 나한테 그렇게 혼이 났는데도 오늘 학교에 엄마가 온다고 좋아서 싱글벙글 웃으며 학교 가는 내내 내 팔짱을 끼고 걸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아파서 정신이 없기도 하고, 아직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해 주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아이의 반이 아닌 다른 반에서 책을 읽어줄 차례라 다른 반 앞 복도에 서서 기다리는데 아이가 슬쩍 화장실 가는 척 나와서는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묘한 죄책감을 억누르며 환하게 웃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고 누우니 괜히 마음이 누그러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더 친절하고 예쁜 말로 육아해야지.’하고 다짐하는 것도 잠시, 아이의 하교 이후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엄마! 오늘 벽산 아파트에 야시장이 열린대요! 오늘 친구랑 거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꼭 가야 돼요!"

몸이 아파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람이 북적이는 야시장이라니.

"오늘은 좀 집에 있으면 안 될까? 엄마가 감기에 걸렸나 봐."

아이는 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안 돼요! 오늘 꼭 친구 만나기로 했단 말이에요. 걔는 핸드폰도 없어서 연락도 못하고 계속 날 기다릴 거라구요.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아이가 간절해 보이고 약속을 했다고 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야시장에 갔다. 사람이 북적이고 차도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동동이는 신이 났는지 내 말도 듣지 않고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를 힘도 없는데 총 쏘는 게임을 시켜달라, 금붕어 잡기를 시켜달라, VR놀이기구를 태워달라, 풍선 터뜨리기를 시켜달라, 저 장난감을 사달라, 저 간식을 사달라, 뭐 하나 넘어가는 것 없이 떼쓰는 아이를 보니 또 짜증이 밀려왔다.      

"이제 이렇게 말 안 들을 거면 절대 다시 야시장에 안 올 거야! 여기 계속 차가 다니잖아!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니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는 없어. 이제 놀이기구는 그만이야!"


  아이는 금방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는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나도 기분 나빠요!”하고 소리치더니 금세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럴 거면 왜 야시장에 왔나 후회만 가득한 한숨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결국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이지도 못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옷을 갈아입게 하고, 씻게 하고, 밥을 먹게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 속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은 구차하고 사소해서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왜 이토록 전쟁인가. 오늘은 너무 힘들어 자기 전에 아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혹시나 또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오늘은 엄마가 너무 몸이 안 좋아. 목도 아파서 자기 전에 책을 못 읽어 줄 것 같은데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러자 아이는 웬일인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제가 말을 안 들어서 너무 죄송했어요. 책 안 읽어주셔도 돼요. 대신 안아 주세요.”


  사랑스러운 아이의 말에 아이에게 다가가 꽉 안아 주면서도 나는 미묘하고 불편한 죄책감을 느꼈다. 사람이 아프면 일상 루틴을 깰 수도 있고, 오늘 종일 아이 때문에 고생한 건 나인 것 같은데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정말 한없이 불편한 일이다. 이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아이이고, 아이가 아직은 미숙하다는 걸 아는 어른인 내가 좀 더 어른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인 걸까. 결국 아이는 오늘 숙제도 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내일 이틀 치 숙제를 시킬 걱정을 하며 침대에 무거운 몸을 누인 나는 글을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렇게 오늘의 생각들을 적고 있다.  

   

  왜 이렇게 시시때때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내일의 나는 좀 더 육아를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자신이 없다. 화내고 죄책감 느끼고 미안해하다가 또다시 육아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길 반복한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지만 또 그 자리에서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내가 엄마임을 실감한다. 육아휴직 중이지만 육아에서도 휴직하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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