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 안 사랑하죠?”
“자기 자식 안 사랑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당연히 사랑하지.”
요즘 아들이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작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휴직을 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채우면서, 아이에게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고,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예쁜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는 원대한 목표는 몇 개월 만에 사그라졌다. 지금은 하루에 딱 한 번만 화내자는 목표도 지키기 어려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꽤나 똘똘하고 바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유치원에서도 규칙을 잘 지킨다고 자주 칭찬을 듣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차차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처음 접하게 해 준 스마트폰 게임에 빠지더니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마인크래프트, 스키비디 토일렛, 무한의 계단, 노블럭스 등 게임들을 섭렵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그 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어울리는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았나. 내 아이에게도 비슷한 결이 있으니 어울렸겠지. 어쨌든 나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아이와 스마트폰 전쟁을 시작했다. 뭔가가 엇나가니 다른 습관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가 많아지고, 학습지 숙제를 미루고, 예쁘게 하던 말들도 어느 순간 가시 돋친 말로 변했다. 이제 겨우 1학년인데도 이러면 도대체 사춘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아 자괴감이 밀려온 한 해였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도 남학생보다는 여학생들과 더 잘 지낸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 반에 대략 27명 정도의 학생들 중에서 수업태도가 마음에 드는 남학생은 한 명이 있을까 말까다. 대부분 수업태도가 좋은 학생들은 여학생들인 경우가 많다. 교재와 필통을 가지고 와서 종이 치면 자리에 앉는 상식적인 일은 남학생들에게는 꽤나 어려운가 보다. 하루는 한 남학생이 필기를 안 하고 멀뚱멀뚱 앞을 보고 있길래,
“지금 이 부분은 필기하세요. 중요하니까. 자 펜 들고!”
라고 이야기하며 그 학생을 바라봤더니 민망해하며 책상 서랍에서 뒤적뒤적 펜 하나를 꺼내 필기를 시작했다. 컴퓨터용 사인펜이었다. 수능특강 교재에 두꺼운 사인펜으로 밑줄을 긋는 모습이 낯설었다.
“다른 펜은 없니? 샤프라도. 그걸로 밑줄 치니까 글씨가 가려지잖아.”
“네. 없어요. 이것밖에..”
“오늘은 내가 빌려줄 테니까 내일부터는 삼색 볼펜이라도 하나 사서 가지고 다니자.”
“네.”
그 밖에도 수행평가를 한 달 전부터 공지하고 교실 앞에 안내문을 붙였음에도 당일에 수행평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든지, 책을 아예 가지고 오지 않는다든지, 논술 평가에 도무지 발로 쓴 것 같은 글씨체로 나를 괴롭게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학생이었다. 물론 한번 집중해서 공부하면 무서운 성과를 내는 남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성취해 본 경험을 발표시키면 한 반에 이렇게 대답하는 남학생들이 반드시 있다.
“롤(게임) 티어 올린 거요!”
그놈의 롤. 어느 날은 남학생이 14명 있는 고등학교 2학년 반에 들어가서 롤 하는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했더니 여학생들은 거의 없고 남학생 12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이 정도면 롤을 안 하는 2명이 특이한 건가 하는 착각도 든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내 아이에게 겹쳐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겨우 1학년인데.. 앞으로 펼쳐질 게임 인생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착잡했다.
얼마 전에는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둑어둑한 놀이터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가방을 보았다. 나는 남편에게,
“아이고 오빠, 누가 책가방 놓고 갔나 보다.”
“그러게 저 부모도 속 꽤나 상하겠다. 없어지진 않겠지? 내일 학교에 가져가야 할 텐데..”
“그러니까 말이야. 노느라 정신없었나? 뭐.. 애들이니까.”
그리고 며칠 뒤 내 아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날 친한 친구와 술 약속이 있어 늦게 귀가해 곧바로 잠든 다음날, 아이 책가방을 챙겨주려다 가방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전날 아이를 봤던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후딱 놀이터에 나가 밖에서 야외취침을 한 가방을 데려왔을 때 도무지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아이를 따끔하게 혼냈다. 그리고 이후로도 3번이나 가방을 놀이터에 두고 왔다.
나와 나의 아이는 분명 다른 존재이지만 어릴 적 나를 생각하고 아이에게 다가가면 한없이 새로운 세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최민준의 아들TV를 구독하고 있다. 아들은 도무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어려워서 어떻게든 공부해서 그 희한한 뇌구조를 납득하고 싶다. 그래서 2024년의 내 과제는 아들놈 이해하기이다. 아들의 경쟁심리, 엄마의 말을 못 듣는 이유, 하지 말라는 행동을 꼭 한 번 더 하는 마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끝까지 말대꾸하겠다는 의지, 뭔가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모습들. 전부 아들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데 이해하고 공부해도 역시나 하루에 한 번만 화내기는 쉽지 않다.
이제 무서운 겨울방학의 시작이다. 62일 동안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니 가슴에 거대한 돌덩이가 얹힌 느낌이지만 나도 아이도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도를 닦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화내지 않고 하루하루 어른답게 아이를 키우는 과제를 풀다 보면 “엄마는 나 안 사랑하죠?”라는 마음 아픈 질문도 곧 사라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