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왜 이렇게 내게 육아가 특히 힘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연인이나 부부들이 항상 같은 것으로 싸우듯, 육아가 힘든 이유도 항상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 막 9살이 된 내 아들은 어릴 때부터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처음 모유를 먹일 때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일찌감치 분유를 혼합해 먹였는데 그마저도 잘 먹지 않아 1시간 넘게 안고 분유를 먹였었다. 나중에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는 한입을 넣으면 한입을 뱉어내는 바람에 직접 정성 들여 이유식을 만들다가 화병에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시판 이유식을 먹였다. 시판 이유식도 입에 잘 맞지 않는지 여러 회사의 이유식을 골고루 먹이느라 안 먹는 이유식을 중고거래로 내다 파는 것이 다반사였다. 밥을 먹게 되었을 때는 음식의 모양을 먼저 확인하고 먹는 아이 때문에 한 끼에 세 번 다른 메뉴를 요리한 적도 있다.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생긴 모습이 뭔가 마음에 안 들면 한 숟갈도 입에 넣지 않았다. 제발 맛이라도 보라고, 맛이 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어르고 달래고 굶기고 쌩 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밥 안 먹는 아이들을 둔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아이들이 무조건 잘 먹는다는 레시피를 섭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즈음 한 끼의 세 번째 요리를 해냈던 날을 기억한다. 두 번째 요리까지 입에 대지 않아 세 번째 요리만에 아이가 한 숟갈을 먹어주었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이 곧바로 뱉어내고 말았다. 실망스러웠지만 거기까지면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뱉자마자 양 손바닥으로 뱉은 음식을 흩어 놓는 것을 본 순간 분노가 치솟아 처음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린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어린아이의 등을 때렸다는 자괴감에 며칠간 괴로웠다.
지금도 그렇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식사시간 1시간은 기본이다. 밥 한 숟가락을 백 번은 씹는 것 같아 침이 나오지 않는 건지 목구멍이 작은 건지 궁금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밥을 씹는 건지 즙을 내는 건지 모르겠다. 영유아 검사 때마다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니 고기를 많이 먹이라는 의사의 말에 니가 먹여보라며 의사의 멱살을 잡는 상상도 많이 했다. 내가 키가 작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까 걱정돼서 잘 안 먹는 아이가 더 걱정이 됐다. 주위에선 굶기는 게 답이라기에 굶겨도 봤지만 아이는 세네 끼를 굶고도 거뜬히 버텼다. 이놈한테 음식이란 그냥 생명만 겨우 유지하게 하는 동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속이 타들어 가다가 펑 터지길 반복했다. 특히 유치원 때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이 특히 고됐다. 매일매일 “빨리 먹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도 아이는 늦어도 7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1시간 동안 먹어도 다 못 먹으면 남은 밥은 그냥 버린다. 씹지 않고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 볼때기와 턱을 내 손으로 모아 쥐고 악력으로 씹게 하고 싶어 져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내려놓자. 내려놓자.’ 밥을 치우고 나서 양치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이가 느릿느릿 욕실로 들어가는데(일부러 네 발로 기어가는 날도 많다) 한참이 지나도 양치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하나 빼꼼 들여다보면 거울을 보며 이상한 표정 짓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세상에..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너 이러다 지각한다! 빨리 양치하고 나와서 옷 입어야지!” 그제야 양치질 소리가 들린다. 옷을 꺼내라고 하면 역시 느릿느릿 꺼낸다. 날이 추운데도 자기가 멋있게 보이는 얇은 옷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한번 혼나고, 이제 막 뛰어가야 할 시간인데 갑자기 똥! 똥! 똥이 마렵단다. 안 그래도 충분히 분노가 빌드업된 상태였기에 그런 경우에 가끔 이성의 끈이 끊기는 경험을 한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똥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다는데.. 거기까지는 조금 더 참는다. 하지만 똥을 싸면서 여유롭게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게다가 자기 똥을 내게 자랑하고 싶어 죽겠는지 “엄마! 구렁이 같은 게 나왔어요! 엄청 많이요! 빨리 와서 보세요!”라고 신나 하는 순간 역시나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다. 전날 아무리 가방을 싸놓고 준비를 마쳐도 아침에 나가는 시간은 늘 똑같은 걸 보고 현관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남자아이들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다른 말이 안 들린다고 한다. 안 들리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안 들린다기에 숙제를 시켜야 할 때 아이 앞에 다가가 눈을 보고 말한다.
“이제 숙제해야 돼. 10분 뒤부터 할 거야.” 10분 뒤에 “시간이 다 됐어. 이제 숙제해.” 난 분명히 숙제를 예고했는데도 아이는 “쪼끔만 있다가요! 아 3분만! 제발! 제발!” 입이 아프다. 3분 뒤에 다시 말하면 “아~ 이것만 하구요. 1분 만이요! 1분만!”
이제는 ‘이따가’라는 소리만 나와도 머리가 아프다. 겨우겨우 책상에 앉혀놓고 거실에 나와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5분에 한 번씩 연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난다.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고 연필을 떨어뜨리나 싶어 몰래 방을 들여다보면 의자에 무릎을 꿇듯이 앉아 무릎을 살짝 들고 상체를 책상 쪽으로 기울여 플랭크 자세를 취한 채로 숙제를 하고 있다. 똑바로 앉으라고 잔소리를 하며 신이 있다면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속으로 조용히 빈다.
학교에서 올 시간인데 아이가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만 당연히 받지 않는다. 구글 패밀리 링크를 켜고 아이의 핸드폰에서 소리가 울리도록 설정하면 그때서야 전화를 받는다. 그럼 빨리 와서 저녁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그런 날엔 놀이터에 책가방을 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니까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우산에서부터 웃옷, 책가방까지 죄다 놓고 와서 맨몸으로 가뿐하게 현관문을 여는 아이를 보면 화가 치민다.
나는 간지럼을 많이 탄다. 그래서 누가 날 간지럽히면 너무 괴롭고 싫은데 이놈은 날 간지럽히지 못해 안달이다. 장난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 싫어서 몇 번이나 하지 말라고 얘길 했는데 항상 까먹는지 매일 간지럽히고 엉덩이를 때린다. 하루는 같이 아파트 산책을 했는데 평소처럼 나뭇가지를 주워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큰 나뭇가지는 위험해. 가지고 놀다가 다른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 얼른 버려.”
라고 말했는데 웃으면서 나한테 다가오는 것이다. 뭔가 싸한 느낌에,
“너 그거 가지고 엄마 치면 엄마 진짜 화낼 거야. 절대 하지 마.”
그래도 실실 웃으며 오길래 한번 더 말했다. “얼른 나뭇가지 내려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걸로 엄마 치면 혼날 줄 알아!”
그럼에도 와서 기어이 그 나뭇가지로 내 엉덩이를 때렸다. 왜? 그날 나는 아이에게 미친 듯이 화를 냈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후회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과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