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가다 May 26. 2024

아이들 관찰일기

아이 있는 집끼리 여행 가는 이유

  베트남 여행 멤버 네 가족이 다시 뭉쳐 평창에 1박으로 얼음낚시를 다녀왔다. 이 모임은 내겐 아주 소중한데 친한 중학교 동창 4명이 각각 결혼을 하고도 꾸준히 회비를 걷어 만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 4명만 따로 만나기도 하고, 가족끼리 일정이 맞으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재밌게 지내고 있다. 게다가 우연히 모두 외동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같이 어울리다 보면 서로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일찍 결혼한 친구의 아들, 중1. 공부하느라 바쁜 녀석은 특유의 시크함으로 우리와 어울리길 꺼려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 것. 얼음낚시를 시작하자 꼭 잡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결국 잡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내 친구를 꼭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 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자기 숙소로 건너가 밀린 숙제를 하다가 잠시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부모는 아이의 게임에 함부로 태클을 걸 수 없다. 바쁜 스케줄을 빼고 이곳에 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두뇌가 명석하고 과제집착력이 강한 아이의 멘털을 바로 잡아주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하느라 최선을 다하는 친구 부부를 보았다. 내 아이도 곧 그렇게 될까? 내 아들이 어렵다고 낑낑대는 마인크래프트 레고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조립해 주는 모습에 뭉클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키가 쑥 커온 녀석이 대견했다. 우리 아이들의 큰 형님으로 먼저 가파른 학업의 길을 오르는 중이다.

 

  결혼은 빨랐으나 아이가 늦었던 친구의 아들, 이제 막 6세. 11월 생이니 6세라고 하기에도 마냥 어리다. 같이 식당에 가도 점원이 아이를 보고 4세는 무료라고 할 정도니까. 가장 손이 많이 간다. 한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이는 게 가장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다. 내 아이를 형! 형! 하고 따라다니고 형이 하는 건 뭐든 따라 하며 만족해하는 녀석을 본다.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특징인데 아직 부모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는 눈치는 없다. 우리 아이 저맘 때는 어땠나 추억에 잠기다가 역시 3년 전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설프게 친구부부에게 지금이 제일 예쁠 때라고 말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착잡한 표정뿐이었다.      


‘그래. 참 힘들 때이기도 하지.’

     

  부모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즐거운 녀석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걸 보고 역시 아이는 귀엽다고 생각한다. 저 때 아이가 가장 예쁜 것을 부모만 모른다. 예전의 나처럼. 아이가 잘못을 해도 크게 혼내기 마음 쓰이는 나이. 부모는 육아로 늘 피곤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경험으로 즐거워하고 있으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기이다. 힘들지만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으로 됐다. 아직 체력이 약해 일정 중에 잠드는 경우가 많아 엄마 아빠가 돌아가면서 안아 재웠다. 

   

  몇 번의 유산을 겪은 친구 부부의 금쪽같은 딸, 8세. 올해 학교에 입학하는 딸내미는 핑크공주다. 우리 아이들 중 유일한 딸. 1박 2일을 지켜보는 동안 딸의 애교와, 아들과 다르게 부모를 절대 미치게 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했다. 일단 엄마 말을 잘 듣고 남자애들 보다는 정적이어서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다. 나를 이모라고 부르며 안긴다든지, 내 앞에 바싹 다가와 마주 보며 안아달라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는 표정을 보면 사랑해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막 공주 옷 집착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핑크사랑은 진행 중이라 핑크패딩, 핑크색 티셔츠, 핑크색 스키 바지를 입고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귀여운 아기 말투가 과하게 나올 때면 부모가 지체 없이 그렇게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자기를 지칭할 때 ‘나’라고 하지 않고 3인칭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지칭하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저녁에 소고기를 굽자 엄청나게 빠른 먹방을 보여주었는데 어른들이 칭찬하자 한 그릇을 비울 때마다 칭찬을 요구했다. 그렇게 세 그릇을 비웠다. 아침밥은 죽과 카레였는데 어제 소고기 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겨우겨우 먹는 모습을 보고 아직 일관된 식습관을 갖기에는 어린 나이임을 확인.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내가 딸을 키운다면 역시 공주공주 하며 아껴 키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들, 9세. 이제 학교물도 좀 먹었겠다 올해 입학하는 동생에게 학교생활은 이런 것이라며 엄청 오빠인 척 위세를 떠는 모습이 우습다.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은 형보다는 1살, 3살 차이 동생들과 어울리며 대장 노릇을 한다. 동생들을 부하처럼 부리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동생들에게 총싸움을 가르치다 내게 혼이 났다. 말하기를 좋아해서 입이 쉬지를 않지만 워낙 동생들을 좋아하고 챙기기에 동생들을 울릴 걱정은 없다. 다만 게임을 좋아해 핸드폰만 쥐어 주면 동생들의 존재를 쉽게 잊는다. 넷 중 가장 말대꾸를 많이 하며 여러 어른들 앞에서 자기 부모의 약점을 들춰내어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웃어주고 반응할수록 그 강도가 세지다가 결국 혼이 나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집에서는 밥을 더럽게 안 먹지만 자기가 형이고 오빠일 때는 조금 다르다. 소고기 먹방에서는 밀렸으나 자기 몫의 고기를 스스로 먹었고, 아침엔 동생보다 조금 빨리 먹고서는 역시 한 살 동생과 다름없이 칭찬을 요구했다. 


  육아는 힘들지만 다른 아이들과 섞어 놓으니 세상 편했다. 아이도 즐겁고 어른도 편한 여행이었다. 네 가족이 헤어질 때 가장 아쉬워한 녀석이 우리 아들인데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풀 죽은 목소리로 언제 또 형아 동생들을 만날 수 있냐고 묻는 통에 차 안에서 진땀을 뺐다. 

   


  

  왜 어린아이가 있는 집끼리 여행을 같이 다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끼리 잘 어울리면 어른은 너무나 편안하다. 네 집이 전부 외동을 키우느라 다른 아이를 자세히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관찰로 다양한 어린이들의 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다. 각각 다른 나이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이자 부모인 그들을 보고 위로하고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내가 거쳐 간 시간을 너도 거칠 것이기에 나는 너고, 너는 나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공감과 연민이 어린 날이었다.

이전 05화 엄마는 나 안 사랑하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