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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03. 2024

달고나가 부글부글

  나의 첫 요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들었던 달고나였다. 우리 동네에서는 뽑기라고 했는데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면 난 퐁퐁(트램펄린을 우리 동네에선 이렇게 불렀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방방이라고 부르더라.) 아저씨가 만들어주시던 뽑기를 떠올리며 그대로 따라 하곤 했다. 처음엔 숟가락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감질이 나서 도구를 국자로 바꾸었다. 국자에 하나 가득 설탕을 붓고 가스레인지 불 위에 올리면 달콤한 냄새가 올라오면서 진득하고 투명한 갈색 액체로 바뀌는데 그때 나무젓가락으로 소다를 콕 찍어 넣어주면 부드럽고 연한 믹스커피색이 나면서 맛있는 뽑기가 부풀어 올랐다.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꼭 과한 욕심이 화를 부른다. 국자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프라이팬 가득 봉지에 든 설탕을 들이붓고 가스 불을 올렸다. 엄청난 양의 설탕이 녹았고 거기에 소다를 손으로 쥐어 뿌리자 프라이팬 여기저기서 용암이 끌어 오르는 듯했다. “우와!”라는 탄성은 “어어?!”로 바뀌고 순식간에 뽑기가 폭포처럼 프라이팬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고급 뷔페에 있는 초콜릿 분수 같은 느낌이랄까. 잠깐 신기하고 설렜다가 금세 망한 느낌을 직감한 나는 결국 그날 엄마에게 사랑의 등짝 스매싱을 수차례 얻어맞았다. 엄마가 허공에다 욕을 하며 철수세미로 가스레인지를 청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리는 항상 양이 문제다. 요리 초보들은 대부분 양을 너무 많이 잡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찌개를 처음 만들 때에는 이상하게 물을 많이 넣게 된다. 그럼 재료를 더 넣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시 물이 적어져 물을 더 붓게 되고 그럼 싱거워져서 재료를 때려 넣는 악순환을 거쳐 처음 목표한 2인용 요리는 어느새 잔칫집 요리가 되고 만다. 나 역시 의도하지 않은 대용량 요리를 만들곤 했는데 마른미역을 불렸더니 냄비가 가득 찼던 일부터 순대볶음을 시도했다가 도저히 궁중팬을 저을 수 없을 만큼 양이 많아 볶아 낼 수 없었던 일까지 실패기가 수두룩하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요리에 그렇게 적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요리뿐만이 아니라 뭐든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아이에 대한 과한 걱정, 시끄러운 뉴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 어떤 일을 할 때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그렇다. 특히 육아에 쏟아붓는 감정이 늘 과한 느낌이다. 아이가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할 때는 지나치게 화가 나고, 화를 내고 나면 아이의 정서가 망가질까 지나치게 걱정한다. 아이가 수학 학습지를 제대로 못 해내면 저러다 곧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아이가 내 앞에서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면 아이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절망하는 식이다. 


  이제 요리는 꽤나 익숙해져서 청국장을 만들 때도 정확히 2인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양 조절에 능통했는데 아직 다른 것에서는 양 조절이 익숙하지가 않다. 요리가 연습이듯 육아든 일이든 과하지 않게 양 조절을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겠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양 조절을 못해 어딘가로부터 등짝 스매싱을 당할지 몰라 두려운 오늘을 살고 있지만 될 때까지 부단히 부딪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안다. 할 수는 있지만 참 하기 싫은 연습이다.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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