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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May 12. 2024

초보 학부모의 마음 수양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내가 휴직을 한 지도 2주가 되어간다. 학생들에게 3월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긴 시간일 것이다. 입학 하루 전날 잠들기 전, 아이는 나와 책을 읽고 침대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는 깜깜한 밤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어떤 친구들이 있을까? 몇 명이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는데 설레요.”

“그래. 엄마도 그렇네? 동동이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지, 어떤 친구들을 사귈지 정말 기대된다.”

“네 엄마. 계속 엄마랑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 얘기 더 하자. 그래도 너무 늦게까지는 안돼. 푹 자고 일어나야 내일 얼굴이 더 예쁠 거야.”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이를 등교시킨 후에 학교 마치는 시간에 데리러 가서 잠시 놀이터에서 놀리다가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간식을 준 뒤 학원을 보냈다. 그 뒤에 또 데리러 가서 다른 학원을 보냈다. 그 뒤에 집에 왔다가 학원 끝날 시간에 나가서 다시 데리고 왔다. 하루에 6번을 나간 적도 있었다. 휴직을 하면 편안할 거라는 내 기대를 비웃는 날들이었다.

  

  몸이 번거로운 것은 괜찮은데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도 많다. 학교 생활을 할 때는 친구가 전부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하굣길 놀이터에 또래 친구들이 모여 놀면 자기도 같이 논다고 할 때마다 그러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말을 잘 거는지, 무리 없이 어울리는지, 혹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늘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서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어쩌다 아이가 모르는 아이와 말을 하며 같이 놀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는지 엄마들끼리 지켜보다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렸다.


“안녕하세요~ 저 아이도 대선초 1학년인가 봐요~.”

“네~~ 안녕하세요. 맞아요~ 저희 아이는 1반인데 아이가 몇 반이에요?”

  하고 시작된 대화는 아이들이 첫 학교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하교 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를 묻고 답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하루는 동동이와 동동이의 미술학원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 이렇게 셋이 놀게 되었는데, 동동이만 빼놓고 두 친구가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갔다. 동동이는 혼자 잠시 떨어져 있다가 친구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친구들을 찾는 아이를 보니 괜히 마음이 헛헛했다. 그리고 이제 동동이도 스스로 인간관계를 시작해야 할 시점임을 실감했다. 두 아이가 돌아와 다른 의자에서 과자를 먹는 것을 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동동이에게도 과자를 같이 먹자고 말해줘. 제발 말해줘.’

  그때 과자를 사 온 친구의 엄마가 동동이에게 다가갔다. 나처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얘야~ 저기 친구들 과자 사 왔는데 같이 먹자~!”

  동동이는 조금 쭈뼛거리다가,

“어떤 과자 사 왔는데요?”

“응? 닭다리 너겟 과잔가 그거 사 온 것 같던데?”


  먼저 말을 걸어 준 그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던 그때, 아이가 마치 다른 과자라면 절대 그러지 않겠지만 닭다리 너겟 과자라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하며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 나 그 과자 진짜 좋아하는데 너네 닭다리 너겟 과자 샀어? 그거 진짜 맛있지? 나도 같이 먹어도 돼?”

그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간절히 소곤거렸다.

‘그래! 동동아 잘했어! 쿨하다! 잘 다가갔어. 이제 얘들아. 우리 동동이랑 과자 같이 먹자고 해줘. 같이 먹어줘..’

그때, 마치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같이 먹자~ 이리 와!”하고 우리 아이를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아이가 같이 둘러앉아 과자를 먹는 것을 본 후 나는 또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참 많이 싸웠다. 말로도 싸우고 몸으로도 싸워서 마음과 몸이 모두 다쳤었다. 지금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확신할 순 없어도 잘 지낼 것도 같은데 그때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이라 혼자 겪어 내야만 한다. 그렇게 무리 짓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정하고, 친구들 사이의 역할을 정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의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앞으로 동동이는 최소한 12년 동안은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즐겁고 화나고 슬프고 신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개입하지 못하고 그저 격려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 역시 그 일에 서툴렀던지라 괜한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동동이는 잘 해낼 것이라 믿고 싶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의 걱정보다 잘 적응하니까. 내가 잘 못했다고 해서 동동이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동동이는 내가 아니고 동동이니까 말이다. 지금 보니 걱정되는 것은 어쩌면 동동이가 아니라 지나치게 아이를 걱정하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나 잘 추슬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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