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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Jun 04. 2024

아이 친구, 그리고 그 엄마

  주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건 동동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우연히 같은 미술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학기 초엔 모든 아이들이 학교가 처음이라 학교를 갈 때도, 하교 후 학원에 갈 때도 보호자가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의 경우에는 할머니나 도우미분이 도와주시기도 하고, 부모 중 누군가가 휴직을 하고 아이를 적응시키기도 한다. 물론 휴직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면 등교와 하교는 혼자 하고 돌봄 교실에 있거나 근처의 학원을 다닐 수도 있다.


  나는 3월부터 휴직을 하고 입학하자마자 동동이를 적응시키고 있었다. 휴직은 했지만 그동안 맞벌이인 데다가 동동이가 6살 때 이 동네로 이사와 지인의 아이가 다니는 다른 동네의 유치원에 보냈으므로 이 동네에는 지인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면서 보는 아이 친구의 엄마나 아빠들이 유일한 동네의 얄팍한 지인이었다.     

  

  그때 만난 그 어머니는 자기도 맞벌이인데 아이를 적응시킬 5월 정도까지만 시간제 근무를 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12시까지 근무한 후 아이의 하교와 학원 스케줄을 돕고 있다고 했다.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역시 전업주부 엄마와 친해지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반가웠다.     

  

  차차 얼굴을 익혀갔던 나와 주니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뒤 남는 어정쩡한 시간을 학교, 학원과 가까운 우리 집에서 보냈다.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뒤로는 종종 그 시간에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이들을 우리 집에서 늦게까지 놀리고 저녁을 먹으며 거하게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알고 보니 나이도 나랑 비슷했고, 엄마 대 엄마로 만난 것 같지 않게 말이 잘 통해서 친구에게나 털어놓을 법한 이야기들도 오갔다. 오랜만에 친구랑 만나서 노는 기분이랄까.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아이 이야기, 직장의 재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식상하고 시시콜콜한 소재를 가지고도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고, 개그 코드도 맞아서 한동안은 정말 신나게 만났다. 아이 친구 엄마와도 이렇게 친구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니 신기했다.     

  

  그러다가 주니의 어머니가 주니의 모든 학원 시간을 동동이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자기는 곧 복직도 해야 하고, 아이도 혼자 다니는 걸 외로워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주니가 동동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다른 반이었던 동동이와 주니는 같이 다니는 영어 학원이 끝나면 같은 시간에 미술학원과 줄넘기 학원을 갔다. 그리고 수영도 시키고 싶다며 이미 동동이가 다니고 있는 수영 학원에 전화해 동동이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선생님 수업을 등록하는 데에 성공했다. 모든 일정이 같아지자 조금 걱정도 되었다. 어차피 나는 1년 동안 휴직할 거라 주 5일 중 4일을 중간중간 1시간씩 텀이 생기게 짜놔서 그때 집에서 간식도 먹고 쉴 수 있게 해 놨는데 주니의 어머니는 6월이 되면 풀근무를 해야 했으므로 그 시간에 주니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걱정했다. 학교의 돌봄 수업은 학원에 간다고 하교한 후엔 다시 들어오지 못했으므로 학원을 두 군데 가는 날에 학원과 학원 사이에 시간이 뜨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우려를 표했고, 주니의 어머니는 매일 가는 영어학원에 부탁해서 영어학원이 끝나고 다른 학원을 가기 전까지 영어학원에서 혼자 자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괜찮다고 했다.


  주니의 어머니는 주니가 말을 못되게 하고, 영어학원에서 무례한 태도를 지적받는 것에 대해 항상 많이 걱정했다. 그때마다 나는 교사라는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많은 조언을 했는데 어머니는 내 말을 잘 듣고 실행에 옮긴 뒤 아이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때마다 너무 뿌듯해하셨다. 그렇게 질문은 늘어나고 고민상담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학부모를 상담하는 기분이 들었다.     

“주니가 말을 너무 못되게 해서 걱정이에요. 집에서 학교 이야기나 학원 이야기도 잘 안 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왜 말을 저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질문해 보세요. 오늘 어땠어?라고 하지 말고, 오늘은 어떤 놀이가 재미있었어? 옆 짝꿍이랑 얘기를 해봤어? 같이요. 말을 못되게 하는 건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일 수 있으니 둘째가 있어서 힘드시겠지만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해 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니면 감정카드를 사서 상황에 대한 감정들을 공부하고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보세요. 저희 아이는 감정카드놀이를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오지랖은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동동이는 대부분의 아이와 잘 지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주니가 못된 말을 할 때마다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다그쳤고 주니의 어머니는 그것마저 너무 좋아하셨다.     

“친구가 직접 저렇게 말해주니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보다 훨씬 잘 듣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동동이가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스마트 폰에서 유튜브앱을 막아놨는데 어떻게 봤냐고 하니 주니가 카톡으로 링크를 보내줬는데 그걸 누르면 다 보인다고 했다. 진짜 그랬다. 앱 말고 인터넷을 통해 온갖 유튜브 영상이 다 열리는 거다. 난 이런 링크는 이제 보내지 않도록 친구에게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초1에겐 그런 의지는 없었다. 영상은 재밌고, 링크 보내는 건 쉬웠다. 나는 한 번만 더 링크가 오면 네 잘못이 아니더라도 카톡을 삭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아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울먹거렸다. 그리고 고민 끝에 주니의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주니가 동동이에게 유튜브 영상 링크를 공유하더라고요. 저는 아이가 유튜브를 안 봤으면 해서요. 주니가 동동이에게 계속 링크를 보내면 제가 카톡을 삭제한다고 했어요. 링크를 보내지 않게 부탁드려요”     

  어머니는 너무 미안해하며 주니 때문에 동동이가 카톡을 삭제당한다면 주니를 원망하며 사이가 틀어질까 봐 걱정된다며 바로 주니의 카톡 프로그램을 삭제하겠다고 하셨다. 유튜브는 어릴 때부터 봤던 거라 금지시킬 자신이 없지만 카톡은 지울 수 있다며 단박에 아들의 카톡을 삭제해 버린 어머니가 놀라웠다.     

  

  그 뒤 내가 초등학교에서 1학년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한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물으셨다.

“설마 어머니가 우리 주니네 반에도 들어가시나요?”

“네. 이게 일주일 동안 하는 건데 저는 처음이라서 4일만 들어가기로 하고 1,2,3,4반 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러자,

“어머! 안 돼요! 주니네 반 들어가시면 안 돼요!”

“네? 왜요? 저 동동이 반도 들어가고 다른 반도 들어가는데요. 벌써 정한 건데요?”

“주니가 너무 서운해할 것 같아요. 자기 엄마는 안 오고 동동이네 엄마는 온다고요.”

“아.. 그럼 어머니도 하실래요? 제가 학부모 봉사 동아리에 이야기해 볼게요.”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그날 제가 연차를 쓸게요.”

 이렇게 해서 결국 나도 그 어머니도 주니의 반에 각각 다른 날 들어가서 책을 읽어주었다.


이때부터 뭔가 싸했다.


  동동이는 주니랑 즐겁게 지내다가도, 주니가 자기에게 죽으라고 하는 등 못된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다는 말을 자주 했다. 게다가 주니에게 배웠다며 엄지만 들어 올려 목을 긋는 듯한 제스처를 해 보였을 때는 나까지 화가 났다. 나는 아주 좋지 않은 거라고 상대를 해치겠다는 뜻의 동작이라며 동동이를 혼냈다. 그러는 동안 주니의 엄마는 주니가 동동이와 항상 같이 다니고 있어서 주니가 동동이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 좋다고 하면서 2학년 때도 꼭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주니는 많은 걸 배우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동동이와의 다툼을 통해 성장하고, 어떤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지도 배웠다. 하지만 난 동동이 엄마였으므로, 왜 동동이가 그 아이에게 원치 않는 것을 배우고, 다퉈야 하며 상처받는 말을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왜 동동이를 통해 주니가 성장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다른 반이지만 같은 층이라 학교에서도 자주 보는데 모든 요일에 모든 학원에서까지 주니와만 붙어 다니는 상황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늘 경쟁을 싫어해서 왜 1등을 해야 하냐고 말해왔다는 주니는 이제는 동동이한테 이기고 싶다며 집에서 영어 공부를 했고, 동동이가 현장체험학습을 사용해서 해외에 놀러 갔다가 선물을 사 오면 자기도 똑같은 해외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주니의 어머니는 동동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고 싶어 했고, 같은 장소에 가려고 했으며 학교나 학원에 빠지는 날이나 학원 스케줄이 바뀌는 날, 또는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기 전 무엇을 할 건지 전부 미리 공유해 주길 원했다.     

  

  이쯤 되니 엄청 피곤해졌다. 아이를 전제로 만들어진 인연은 역시 아이를 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난 애초에 복직을 해야 하니 어머니들과 커뮤니티를 만들 생각도 없었고 육아휴직도 아이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아이 친구집에 신경을 써야 한다니.


  영어 학원에 혼자 있던 주니는 혼자 있기보다는 동동이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름이 되니 땡볕 아래에서 놀기가 어려워지자 동동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동이와 같이 들어온 주니를 반겨주며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주었는데 다른 간식이 없냐며 묻고 멋대로 우리 집 냉장고나 간식 서랍을 여는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훈육을 하자니 오해가 생길까 봐 쉽게 얘기하지도 못했다. 어느 날은 집에 와서 동동이가 아끼는 물건을 계속 달라고 해서 동동이가 난감해했다.     


“이거 나 주면 안 돼?”

“그건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거라 안되는데..”

“그럼 이건? 나 줘!”

“그건 일본 가서 산 거라 소중한 거야.”

“그럼 이거 줘.”

“이건 경주에서 사 온 거라서 다시 못 사니까 줄 수가 없어. 그럼 이건 어때?”

하고 보석돌을 내밀었다.

“그건 나한테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아이들의 대화에 굳이 끼고 싶지 않았음에도 촉을 세워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에 와서도 같은 걸 다시 달라는 주니에게 내가 물었다.     


“그거 동동이한테 소중한 물건이라고 설명했는데 왜 자꾸 달라고 해? 어떤 물건인지 너도 들었잖아.”

“혹시 동동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이후에 나는 시간이 뜰 때마다 우리 집에 오는 주니가 탐탁지 않았다. 나는 동동이에게,

“주니가 너무 자주 온다. 주니가 우리 집에 오면 주니 어머니가 걱정하셔. 영어학원에 있기로 약속했는데 계속 오면 안 된다고 니가 얘기해 줘”

“네. 알았어요.”     

그 이후에 집에 올 시간이 되자 동동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주니랑 같이 가도 돼요?”

“엄마가 전에 말했잖아. 주니는 영어학원에 있는 거야~”

“네, 아는데 주니가 영어학원에 있기 싫대요.”

“응 그래도 안돼. 영어 학원에 있으라고 해줄래?”     

그랬더니 이번엔 모르는 번호로 내게 전화가 왔다.

“저 주니인데요. 저 왜 가면 안 돼요?”

“응. 어머니랑 약속을 했거든. 영어 학원에 있어야 된대.”

“저 엄마가 동동이네 집 가도 된다고 허락했는데요?”

“어 아무튼 안된단다. 이따 줄넘기 학원에서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주니는 집에 오지 못하게 한 내게 화가 났는지 동동이에게,

“너네 엄마 나빠 악마야. 그리고 내가 전에 니네 집에서 왜 밥 잘 안 먹었는지 알아? 너네 엄마 음식이 맛없어서. 엄청 맛없었어”

  동동이는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럽고 속상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내게 말했다. 이쯤 되니 짜증이 났다. 물론 아직 어리니까 집에 못 오게 한 내게 서운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렇게 많이 엄마랑 같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먹고 놀고 했으면서 매일 오면 안 된다고 했다고 나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는 상황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왜 챙겨주고도 욕을 먹어야 하나. 정작 주니네 집에는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둘째가 있고 집이 깨끗하지 못해 초대를 못한다는 말에 이해를 해보려고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있고 아이들도 그 집에서 놀고 싶다고 떼를 썼는데도 한 번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은 게 내심 서운했다. 정확히는 그때는 이해해서 정말 괜찮았는데 지금은 싫어진 것이다. 내가 못 오게 해도 주니는 우리 집에 왔다. 그날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연락드려 주니가 왔다고 말씀드리자 우리 주니가 호강한다며 간식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만 돌아왔다. 그때 알았다. ‘아.. 내 메시지의 의도를 모르시는구나. 설마 이렇게 될 것까지 염두에 두신 건 아니겠지? 아니면 너무 우리 집에 많이 오시다 보니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주니는 동동이가 전화를 못 받았던 날, 우리 집에 직접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나 싶었는데 그동안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주니가 동동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직접 들어온 것이다. 선을 넘는 느낌이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났고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교사로서의 나는 아이들이 당연히 실수한다는 것을 안다. 아이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으므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발전하고 단단해진다. 친구와의 다툼에서 대인관계를 배우기도 하고 그 안에서 경쟁심을 느끼면 학업에 대한 동기도 형성된다. 부모가 공부해서 아이와 대화하고 오롯이 집중해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려주면 아이는 안정된다. 잘못된 행동은 단호하게 훈육하되 마음을 인정해 주면 억울한 마음이 줄어든다. 그러니 동동이를 통해 주니가 발전하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동동이의 엄마로서 나는 동동이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상대마다 다른 특징을 겪어봤으면 했다. 무례한 아이도 있겠지만 예절 바른 아이도 있을 것이고, 뭔가를 보고 배울 상대와도 같이 다녀봤으면 했다. 자꾸 누군가를 성장시키면서 겪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기를 원치 않았다. 유튜브 쇼츠를 아직 보지 않았으면 했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몸으로 놀면서 대인관계를 배웠으면 했다. 좋은 친구를 알아보는 눈을 키웠으면 했지만 아직은 그저 어렸다.


  나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괴로웠는데 가장 큰 이유는 주니와 그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이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도 말이다. 처음엔 동동이도 주니의 단점을 많이 이야기했었다. 그때마다 “그렇게 이야기한 건 주니의 진심이 아닐 거야.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으니 잘 찾아봐. 주니에게는 장점이 많잖니.”라고 얘기해 왔고 그게 어른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 앞에서 특정 친구와 놀지 말라거나 아이의 친구를 깎아내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니가 학원에 안 오면 자기도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동동이를 보기가 점점 괴로워졌다. 주니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그 아이의 단점을 발견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우리 집에 온다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오지 말라고 하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동동이가 주니와 나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모습도 싫었다. 무엇보다 이 괴로움을 그 어머니는 전혀 느끼지 않고 나만 혼자 느끼고 있는 것도 끔찍했다. 본인은 주니를 동동이에게 붙여 놓고 적응을 잘 시켰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이는 우리 집에 온 걸 엄마에게 아예 말하지 않는다니 모르는 게 약이라고 신경 쓰지 않을 걸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 아이와 그 어머니가 싫다’라는 감정과 내가 더 관대한 어른이 되면 된다는 감정이 치열하게 싸우느라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자, ‘그냥 될 대로 되어 버려라’하는 마음으로 다음날 주니의 어머니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카톡의 내용은 ‘주니가 계속 우리 집에 오고 있고, 영어 학원에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우리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직접 들어왔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아이는 내게 서운해하는 것 같으니 어머니께서 잘 얘기해 주셔라’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메시지를 받고 놀라셨는지 장문의 사과 답장을 보내셨다.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말라고 하셨단다. 그러고는 다음 날 바로 내게서 빌려갔던 그림책을 아이를 통해 돌려주셨다. 빌려준 지 오래돼서 그냥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황급히 돌려받으니 조금 기분이 오묘했다. 서둘러 뭔가를 정산한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며칠 동안 너무 기분이 나빴다. 차라리 일을 하고 있었으면 바빠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동동이는 여전히 주니를 좋아한다. 주니도 동동이를 좋아한다. 결국 내가 계속 우리 집에 오게 하고, 오면 잘해주고, 간식을 챙겨 줬으면 아이들을 편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또 괴로워진다. 내 아이와 단짝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괴롭고, 애초에 텀이 많은 시간에 애들 학원 시간을 다 맞춰 놓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염려했던 내 말과는 다르게 모든 스케줄을 똑같이 맞춰 놓은 어머니가 괜스레 미워지는 마음이 드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으나 좋은 사람이 아님을 증명한 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다.     



 

   이번 일을 통해 확실히 배운 것이 있다. 첫째는 아이 친구 엄마와는 절대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은 아이 친구 엄마는 아이 친구의 엄마이지 내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와의 사이가 틀어지거나 자기 아이가 손해를 본다는 느끼는 순간 손절 가능한 관계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아이의 친구는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사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가 소극적이라면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엄마의 절대적 노력으로 엄마들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아이들은 자기와 맞는 친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동동이는 결국 다양한 친구를 만날 거고, 그럼에도 동동이가 주니랑만 친하게 지낸다면 이건 결국 유유상종이라는 뜻일 것이다. 뭐라도 결이 맞으면 계속 친할 것이고 나중에라도 아니다 싶어 지면 다른 친구를 찾겠지. 내 아이의 친구 관계, 그리고 그 어머니와 나의 관계.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걸까. 좋은 어른하기 힘들다. 학부모 하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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